대통령 한 마디에 언론들이 앞다퉈 내놓은 기사 [커피로 맛보는 역사, 역사로 배우는 커피]
[이길상 기자]
▲ 2021년 3월 20일(현지시간) 프랑스 파리의 번화가인 샹젤리제 거리가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한 야간통행금지령이 내려진 이후 인적이 끊긴 채 한산한 모습이다. |
ⓒ 연합뉴스 |
런던대화재를 경험한 윌리엄은 야간 중 일정 시간에 조명, 난방, 조리 등 어떤 목적으로도 불 피우는 것과 외출을 금지하였다. 야간통행금지를 의미하는 단어 '커퓨(curfew)'가 프랑스어로 'couvre-feu' 즉 '불을 덮다'에서 유래한 것은 이런 역사를 반영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말 몽골 지배하에서 야간통행을 금지한 사례가 있다. 조선 시대에는 주로 한양 도성 내에서 인정(밤 10시 30분)과 파루(새벽 4시 30분) 사이에 통행이 금지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해가 진 직후인 1경(7시-9시)에 여성들은 통행을 허용하고 남성들은 통행을 금지시켰다는 점이다. 종일 집안에 갇혀 지내던 여성들이 저녁 준비를 위해 외출해야 하는 시간에 남성들이 나돌아다니는 것을 금지한 것이다.
이런 야간통행금지 조치는 근대 이후에도 이어졌다. 최근 사례로는 코로나 팬데믹 하에서 이탈리아, 프랑스, 인디아 등에서 실시한 야간통행금지, 2020년 미국의 미네소타 미네아폴리스에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후 벌어진 폭력 사태의 확산을 막기 위해 실시했던 야간통행금지 등이 있다. 샌디에이고와 댈러스 등 미국의 일부 지역에서는 청소년 범죄 예방을 위해 일정 청소년들의 심야 통행을 금지한다.
이렇듯 대부분의 야간통행금지는 일정한 시간, 일정한 지역, 그리고 일정한 연령대를 지정해서 실시하는 것이 보통이다.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거의 모든 지역에서 야간 통행을 금지시키는 사례가 많지는 않다.
야간통행금지 해제가 가져온 변화
그런데 우리나라는 해방 직후 미군정의 시작과 함께 시작된 야간통행금지 조치가 6.25 전쟁 이후에도 지속되었다. 1954년 4월 1일 '경범죄처벌법'을 제정하여 야간 통행을 전면 금지하였다.
1957년부터 대통령 이승만 탄신일인 3월 26일에는 통금이 해제되었고, 5.16 쿠데타 1주년 기념으로 1962년 5월에 2주일 간 해제되는 등 일시적인 해제 조치는 있었지만 37년간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시민의 시간이 아니었다. 11시가 넘으면 대부분의 업소가 문을 닫았고, 귀가를 위해 택시 합승 전쟁을 벌였다.
▲ 1982년 11월 16일 자 <경향신문> 기사 "강남 새 풍속도 (12) 유흥업소 [12] 사양길 다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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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0월 말 당시 강남 일대의 다방은 모두 299개로, 1982년에 새로 문을 연 다방이 51개, 폐업한 곳이 18개였다. 1980년 말의 211개에 비해 2년 동안 겨우 88개가 증가한 셈이다. 2년 사이에 다방은 40% 증가한 반면 다른 유흥업소들은 2.5배 증가하였다. 1982년 10월 말 기준으로 서울 전역의 다방 수 5857개의 5%만이 강남 지역에 있는 셈이었다.
새로 등장한 아파트의 신식 주방 시설 덕분에 집에서 손쉽게 커피를 끓여 마실 수 있게 된 것도 하나의 배경이었다. 만남의 장소로 비즈니스맨은 호텔 커피숍을, 아베크족은 카페나 레스토랑을 택하게 된 것도 또 다른 배경이었다. 특히 강남 지역에서 다방은 약속 장소로서의 의미를 급격하게 상실하고 있었다.
올림픽 앞두고 쏟아진 커피 보도의 이상한 제목들
다방 문화의 퇴조, 커피 소비의 둔화를 초래하는 데 정부의 적극적인 국산차 보급정책도 일조했다. 1981년 9월 서울이 하계올림픽 개최지로 결정된 것이 큰 계기였다. 올림픽이라는 큰 국제 행사를 통해 우리 고유의 차 문화를 세계인들에게 홍보하자는 정치권의 주문에 언론이 호응했다. 커피에 대한 부정적 여론을 조성하는 것, 국산차의 장점을 홍보하고 국산차를 권장하는 일에 언론이 앞장섰다.
언론들은 커피의 부작용을 알리는 데 앞장섰다. <조선일보>는 1982년 1월 29일 자에서 '커피 하루 넉 잔 씩 마시면 조산'이라는 보도를 하였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팀의 연구 결과를 인용한 보도였다. 기사에 소개된 하버드 의대 연구 결과는 기사 제목과는 상이했다. 임산부의 조산 경향은 커피 때문이 아니라 커피를 많이 마시는 사람의 과도한 흡연 때문이라는 것이 연구 결과의 핵심이었다. 임산부나 그 가족이 커피를 기피하게 만드는 기사 제목을 의도적으로 선택하였던 것이다.
<동아일보>와 <경향신문>은 같은 해 3월 15일 자 기사에서 임신부가 마시는 커피 속 카페인이 불구아 출산 위험을 높인다는 경고성 기사를 실었다. <동아일보>의 기사 제목은 '임신부 카페인 위험, 불구아 출산 가능성 높아'였고, <경향신문>의 기사 제목 또한 '카페인 대량 섭취 불구아 낳을 수도'였다.
보스턴의과대학의 의사들이 쥐를 대상으로 실시한 실험 결과를 소개하는 기사였다. 쥐에게 하루 커피 24잔 이상에 들어있는 양의 카페인을 섭취하게 할 경우 기형동물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는 것.그러나 이같은 동물 실험결과를 사람에게도 적용할 수 있는지는 불확실하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었다. 역시 제목만 본다면 임신부에게 커피는 매우 위험한 음료로 보여 기피하게 만들 수 있는 보도였다.
<조선일보>와 <경향신문>은 커피 안 마시는 미국인이 증가하고 있다는 보도를 하여 관심을 끌었다. <조선일보>는 같은 해 9월 26일 자에서 매일 커피를 마시는 미국인이 20년 전보다 18% 정도 하락하였다고 보도하였다. 즉 1962년에 매일 커피를 마시는 미국인이 74.7%였으나 1981년에는 56.4%로 떨어졌다는 미국의 한 주간지 <뉴욕>(필자: 뉴요커의 오기)의 보도를 인용하였다. 1인당 커피 마시는 양도 4.17잔에서 3.41잔으로 줄었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제목만 보면 미국인들이 건강을 우려하여 커피를 기피하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당시 미국의 커피 소비 축소는 몇 가지 원인이 작용하여 생긴 일시적 현상이었다. 1975년과 1976년에 있었던 브라질의 커피 흉작에 따른 커피 가격 급등, 미국 남부 지역으로의 인구 이동에 따른 차가운 청량음료 소비 증가, 그리고 커피가 췌장암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을 둘러싼 논쟁 등이었다. 역시 제목만 보면 미국인들조차 소비를 줄이고 있는 커피를 우리가 마시는 것은 문명 사회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으로 보인다. <경향신문>은 같은 내용을 보도하면서 "커피의 시대가 점차 끝나가고 있음을 틀림없는 사실이다"라고 단정하였다.
'미국에 번지는 커피 안 먹기'는 <조선일보>의 이해 12월 4일 자 사회면 머리기사 제목이다. 부제는 '신경질-가슴앓이의 원인'이었다. 이 신문은 카페인 중독에 따른 신체 변화로 불면, 두통, 전율, 신경질, 불안, 우울, 호흡이상, 설사, 위경련, 근육이상, 가슴앓이, 잦은 소변 등을 상세하게 소개한 후 카페인 중독을 피하기 위한 여러 대책을 소개하였다. 비카페인커피도 대책의 하나로 권장하였다. 요즘 많이 즐기는 디카페인커피를 말한다.
다방의 위기
서울시는 1982년 12월부터 모든 다방에서 9가지 이상의 국산차를 의무적으로 취급할 것과 찻값을 커피와 동일하게 3백원 선으로 내려받도록 하였다. 올림픽을 앞두고 한국 고유의 우수한 차를 보급하고, 커피 수입에 따른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한 조치였다.
정부 각 부처 국장급 이상의 사무실에서 근무하는 여직원 5백 명을 대상으로 전통 다도 실습교육 제1기 과정이 1982년 11월 15일부터 중앙청 후생관에서 실시되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에 대서특필되었다.
문교부도 나섰다. 초중고교에서 전통차 및 전통다도 교육을 실시하기로 하고, 실천 계획을 각 시도교육위원회에 내려보냈다. 이런 시대적 분위기에 맞추어 동서식품에서 탈(디)카페인커피 '상카'의 시판을 시작한 것이 1982년 2월이었다. 야간통행금지로 유흥업소가 번창하고, 정부의 커피 소비 억제정책으로 다방의 위기가 서서히 시작되었다. 시사주간지 <타임>은 1982년 올해의 인물로 컴퓨터를 선정하면서 컴퓨터가 인간을 지배하기 시작했음을 알렸다.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의 저자, 교육학교수)
덧붙이는 글 | 참고문헌 <동아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매일경제> 1982년 기사 일체. 이길상(2021). <커피세계사+한국가배사>(푸른역사) 이길상(2023). <커피가 묻고 역사가 답하다>(역사비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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