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비판이 유대인 혐오라는 거짓말 [독서일기]

장정일 2024. 8. 10. 0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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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질베르 아슈카르 지음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 옮김
리시올 펴냄

2023년 10월7일, ‘하마스’로 약칭되는 이슬람 저항 운동(Islamic Resistance Movement)이 알아크사 홍수 작전을 개시했다. 이스라엘은 이 사건에 이스라엘판 ‘진주만 기습(1941)’ 또는 ‘9·11(2001)’이라는 의미를 붙이고 팔레스타인인의 저항을 ‘전쟁범죄화’하는 선전전을 펼쳤다. 세 사례는 비슷해 보이지만, 군국주의 국가 일본과 이슬람 국제 무장세력 알카에다에 일격을 당했던 미국은, 팔레스타인인의 씨를 말리겠다는 이스라엘과 달리, 일본인이나 아랍계 무슬림을 지구상에서 말살하려 한 인종주의 국가가 아니었다. 질베르 아슈카르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리시올, 2024)에 쓴 것처럼, 알아크사 홍수 작전에 딱 들어맞는 역사적 사례는 바르샤바 게토 봉기(1943)다. 폴란드를 점령한 나치는 바르샤바에 유대인 강제수용 구역을 만들었고, 그곳에 갇힌 유대인은 생존의 수단으로 봉기를 선택했다.

알아크사 홍수 작전 직후, 서구의 여러 정부는 이스라엘에 아부했다. 베를린의 브란덴부르크 문, 런던의 의회, 파리의 에펠탑, 워싱턴 백악관에 이스라엘 국기가 내걸렸다. 세계 곳곳의 민중은 이스라엘의 선전전에 넘어가지 않았다. 2024년 1월13일 국제 행동의 날에 45개국 121개 도시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시위가 열렸고, 런던과 워싱턴에서는 각기 시민 50만명과 40만명이 모였다. 이때 이스라엘과 친이스라엘 서구 정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말살 정책을 비판하는 이들을 반유대주의로 몰았다. 이스라엘의 무차별 폭격이 시작되면서 이스라엘 규탄 성명을 낸 하버드 대학 학생들은 ‘유대인 혐오’라는 공격에 시달렸고, 서울에서 팔레스타인 연대 집회가 열리자 주한 이스라엘 대사관은 이를 유대인 혐오 집회라고 비난하는 성명을 냈다.

‘유대인 혐오’는 홀로코스트와 연동되기 때문에 이스라엘 정부는 ‘이스라엘 비판은 곧 유대인 혐오’라는 편리한 논리를 휘두른다. 하지만 나치에 살해당한 600만 홀로코스트 희생자와 지난 75년 동안 팔레스타인인을 체계적으로 인종 청소해온 이스라엘 국가는 같은 희생자가 아니다. 홀로코스트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에서 자행하고 있는 범죄를 용인해주는 면죄부가 되었다. 여기에 속지 마세요. 이스라엘의 건국이념인 시오니즘은 무엇보다도 유대인이 다른 인종과 공존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데, 이 신념은 역설적이게도 나치가 유대인을 말살하려 했던 이유와 통한다. 시오니스트는 나치다.

팔레스타인을 유대인에게 할양하자는 발상은 1917년, 당시의 영국 외무장관 아서 밸푸어의 구상에서 비롯되었다. 영국 제국주의자들은 유대인에게 온정적이어서라기보다는 자국에 대한 아랍인의 저항을 유대인에게 돌리기 위해 팔레스타인에 유대 국가를 설립하는 묘안을 냈다(유대 국가를 영국의 ‘경비견’으로 삼을 생각이었죠). 시오니스트들은 이 구상을 반겼으나 유럽 각지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으로의 귀향을 유배나 같이 여겼다. 상황이 바뀐 것은 1933년 독일에서 나치가 권력을 잡고 미국과 영국 등의 나라에 차별적인 이민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독일을 비롯한 이웃 나라의 유대인은 팔레스타인 말고는 갈 곳이 없었다.

가자는 이스라엘 영토인 적 없어

이스라엘은 홀로코스트라는 숭고한 희생 위에 건국되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야훼’도 구토를 일으킬 거짓말이다. 이스라엘은 1948년 5월14일 건국을 선포하고, 그 이튿날인 5월15일 팔레스타인에 살고 있던 아랍인 130만명 중 1만1000명 이상을 살해하고 75만명을 자신들이 정한 국경선 밖으로 추방했다(이들이 흩어져 모인 곳이 이집트 국경의 가자와 요르단 국경의 서안이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날을 ‘나크바(대재앙)’라고 불러요.

ⓒ이지영 그림

이스라엘 지지자들에 의해 ‘반유대주의 소설’로 낙인찍힌 아다니아 쉬블리의 〈사소한 일〉(강, 2023)에는 나크바 이듬해인 1949년, 이집트와 국경을 맞댄 라파(가자의 남쪽 끝)를 경계하는 임무를 맡은 이스라엘 군 장교가 나온다. 베두인 소녀를 강간하고 살해하기도 한 그는 부하들에게 이런 연설을 한다. “지금은 잠입자들과 한 줌의 베두인들, 낙타를 빼고는 아무것도 없어 황무지처럼 보이는 이 땅이 실은 우리 선조들이 수천 년 전에 지나갔던 곳이다. 그러니 그 누구도 이 지역에 대한 권리를 우리보다 더 가진 사람은 없다. 우리는 이 넓은 지역을 지금처럼 황폐한 무인 지역으로 놔두지 않고, 꽃이 피고 사람이 살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일에 온 힘을 쏟을 것이다.”

두 페이지가 넘는 장교의 연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도 안 맞는다. 팔레스타인은 어떤 국가의 주권도 미치지 않는 무주지(無主地)도, 사람도 식물도 살 수 없는 황무지도, 문화가 없는 땅도 아니었다. 게다가 저 장교는 가자가 자기 선조의 땅이었다고 말하는데, 그 근거는 이스라엘 극우 인사들(시오니스트)이 주워섬기는 ‘대(大)이스라엘’ 사관이다. 시오니스트들은 다윗왕이 다스렸던 이스라엘 왕국의 영역이 사우디아라비아 반도를 제외한 중동 전체였다고 주장한다(시오니스트의 영토 야욕은 당분간 그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가자는 한 번도 이스라엘 왕국에 속한 적이 없답니다.

라시드 할리디의 〈팔레스타인 100년 전쟁〉(열린책들, 2021)에서 유대인 정착자들이 팔레스타인으로 건너오기 시작하던 초창기부터 기록된 여러 자료는 시오니스트들이 만들어놓은 대중적 신화와 정면으로 충돌한다고 말한다. “대중적 신화는 팔레스타인인이 존재하지 않았거나 집단적 의식이 부재했다는 전제 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팔레스타인 정체성과 민족주의는 최근 들어 유대인의 민족자결에 대한 터무니없는 반대로 표현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시각이 팽배해 있다. 하지만 팔레스타인 정체성은 근대의 정치적 시온주의와 거의 정확히 동시에 나타났다. 반유대주의가 시온주의에 기름을 부은 것처럼, 시온주의의 위협 역시 이런 자극들 중 하나에 불과했다.” 1937년 10월부터 2년 동안, 영국군과 시오니스트 민병대가 힘을 합쳐 간신히 진압했던 팔레스타인인들의 무장봉기가 그것을 입증한다.

〈사소한 일〉에 나오는 유대인 기록보관소 담당자는 시오니스트의 거짓말로 유명한 또 하나의 신화를 되풀이한다. 건국 초기에 유대인 정착민들이 형편없는 무기와 병력으로 주변의 아랍인들과 싸웠다는 자랑이 그것이다. 앞서 나온 반란이 참패하면서 팔레스타인인은 약체가 된 반면 유대인 정착민은 정예 군인으로 재탄생했다. “팔레스타인 반란이 진행되는 동안 시온주의 운동은 영국의 봉기 진압을 도와준 대가로 대량의 무기와 광범위한 훈련을 받으면서 승승장구했다.” 시오니스트는 그 지역에서 가장 잘 훈련된 군대였다.

장정일 (소설가)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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