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의 ‘주술적 결단주의’, 그 말로는?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 이후 윤석열은 칩거 중이다. 검찰과 고위공직자수사처의 내란죄 수사 출석 요구에 불응했다. 탄핵심판 대리인단을 통한 입장 외에는 측근과의 소통 소식도 들리지 않는다. 탄핵소추안 가결 직후인 2024년 12월14일 담화에서 윤석열은 사과하지 않았다. “저는 지금 잠시 멈춰서지만 (···) 결코 포기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국회를 상대로는 “폭주와 대결의 정치에서 숙의와 배려의 정치로 바뀔 수 있도록” “당부”했다.
윤석열과 대다수 국민 사이에는 심연이 있다. 우선 현 상황에 대한 인식이 너무 다르다. 대통령이 극우 유튜브에 심취해 있다는 소문이 사실로 밝혀졌다. 윤석열 스스로 부정선거 음모론을 믿는다고 말했고, 이를 입증하기 위해 실제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 병력을 투입하기에 이르렀다. 헌법을 보는 관점도 차이가 크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에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고 주장한다. 12월12일 대국민 담화에서 윤석열은 자신이 “헌법의 틀 안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했다고 말했다. “비상 상황에서 나라를 지키기 위해 (···) 대통령의 법적 권한으로 행사한 비상계엄 조치는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판단”이라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헌법학자 대부분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윤석열이 예로 든 국회의 예산 삭감이나 공직자 탄핵 등은 비상계엄 사유가 못 된다. 판례도 윤석열 주장과 배치된다.
일각에서는 윤석열에게 ‘결단주의’적 관점이 보인다고 지적한다. 결단주의는 독일 법학자 카를 슈미트(1888~1985)의 헌법 이론이다. 슈미트는 ‘예외 상태’에서는 주권자가 헌법을 벗어난(혹은 초월하는) 결정을 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어떤 상황이 예외 상태인지 결정하고, 그에 적합한 초헌법적 권한을 휘두르는 ‘주권자’가 늘 다수 시민을 뜻하지는 않는다. ‘총통’이 될 수도 있다. 카를 슈미트는 나치를 정당화하는 법학 이론적 토대를 쌓았다고 평가받는다. 박정희 정권에서 국가재건비상조치법을 기초하고 유신헌법 제정에 참여한 한태연 전 서울대 교수 역시 슈미트의 결단주의 헌법 이론을 참고했다고 증언한 바 있다.
정치학자인 안병진 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는 2023년 논문 ‘검찰 통치와 포퓰리스트 헌정주의’에서 결단주의가 “헌정주의 및 민주주의와 상극”이라며, 이렇게 썼다. “윤석열 대통령은 갈등적 합의 과정보다는 역사적 소명에 따른 자신의 카리스마적 결단을 강조한다. (···) 역사적 결단을 강조하는 레토릭을 넘어 의회 내에서 초당적 기반을 형성하려는 치열한 노력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윤석열의 대중적 인기를 상징하는 발언은 “사람에게 충성하지 않는다”라는 말이다. 문재인 정권의 검찰 개혁과 대립하면서 그는, 사람에게는 충성하지 않더라도 검찰 조직의 이익만 추구하는 ‘검찰주의자’라고 비판받았다. 현시점 안병진 교수의 윤석열에 대한 평가는 이와도 조금 다르다. 검찰 조직이 아니라 “자신에게만 충성하는 자기애”가 그의 본질이라고 본다. 안 교수는 이렇게 말했다. “명태균씨가 윤석열을 ‘장님 무사’라고 평했다던데, 윤석열을 가장 잘 표현한 단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은 물론 자기를 파괴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뜻대로 칼을 휘두르는 게 결단주의다. ‘거래’를 우선시하고 잇속이 최우선인 도널드 트럼프와도 다르다. 뒤가 없다는 면에서 윤석열이 더 위험하다.” 정치적 손익과 성공 가능성을 따지는 일반인과 달리 계엄이라는 거대한 조치를 취하면서도, 자신의 결정을 믿는 결단주의자는 일단 “저지른다”는 것이다.
이해하기 어려운 자신감이다. 윤석열 정부는 일찌감치 대중의 신임을 잃었다. 한국갤럽 조사 기준, 취임 80일 만에 지지율이 20%대로 떨어졌다. 박근혜·문재인 전 대통령은 각각 임기 3년 차, 임기 4년 차에야 지지율이 20%대로 내려왔다. 제22대 총선에서 여당은 3연속으로 참패했다. 국민의힘은 108석을 얻는 데 그쳤고, 더불어민주당은 단독 과반을 확보했다. 이 상황에서 발휘된 윤석열의 초헌법적 결단은 심지어 결단주의와도 충돌한다. 카를 슈미트의 이론은 전제 군주를 옹호하는 왕권신수설과 거리가 멀다. 그는 ‘독재’를 긍정하고 의회민주주의를 평가절하했으나, 어디까지나 정치 권력의 정당성은 국민에게서 나온다고 주장했다. 슈미트가 국민 지지를 상징하는 요소라고 본 게 ‘갈채(Akklamation)’다. ‘나치 법학’마저, 열광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권력자가 헌법을 벗어난 결단을 할 수 있다고는 보지 않았던 셈이다.
평범한 권력자는 지지를 회복하기 위해 국정 운영 방향을 바꾼다. 현실에 눈감은 윤석열은 제 생각에 맞춰 자신만의 대안 세계를 재구성했다. 기록적 총선 패배 엿새 뒤인 2024년 4월16일 국무회의에서 윤석열은 “올바른 국정의 방향을 잡고 이를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음에도, 국민들께서 체감하실 만큼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데 모자랐다”라고 말했다. 이후에는 “수출이 되살아나” “산업 경쟁력을 높였습니다” “사교육 카르텔을 혁파” 등 뜻밖의 자화자찬을 늘어놓았다.
손익 고려 않고 일단 저지르는 권력
내심은 더 노골적이었다. 윤석열은 총선 결과가 ‘오염된 과정’ 탓이라고 의심했다. 수년 전부터 윤석열이 부정선거론에 젖어 있었다는 정황이 곳곳에서 발굴된다. 2022년 3월4일 경북 경주 유세 당시 윤석열 대선후보는 “재작년 4·15 총선 때 국민의힘이 제대로 성적을 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사전선거에 부정 의혹이 있지 않은지 걱정을 많이 하고 계시는 걸 알고 있다. 그러나 이번에는 우리가 철저하게 감시하겠다”라고 말했다. 이틀 뒤 경기 의정부 유세에서는 “투표 관리는 상당히 문제가 심각하다. (···) 지금 선관위가 정상적 선관위가 맞나? 나라가 곪아 터지고 멍들어도 정도가 너무 심하다. 아무리 썩어도 사법부, 언론, 선관위는 중립 지키고 살아 있어야 되는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2024년 12월13일 〈주간조선〉은 김규현 전 국가정보원장의 21대 총선 관련 보안 점검 보고를 들은 뒤 윤석열이 “내 선거(대선)도 이상하지 않나? 10~15%포인트 이상 이겼어야 하는데 0.73%포인트 차이로밖에 못 이긴 것은 이상하지 않나?”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대통령의 자기 확신에 ‘검찰 출신’이나 ‘유튜브 시청’ 외에 더 근본적 요인이 있다고 보는 이들도 있다. 윤석열·김건희 부부가 초자연적 계시를 진지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의혹 하나하나는 사소하거나 우연의 일치처럼 보일 수 있지만 한데 모아보면 의미심장하다. 역술인 천공과의 관계는 지난 대선 기간부터 제기된 대표적 이슈다. 천공 본인이 2021년 3월 공개적으로 “윤석열을 도와주고 있다”라고 밝혔다. 10월 당내 대선 경선 토론회에서는 천공 문제를 제기한 유승민 당시 후보에게 “정법 유튜브(천공의 유튜브 채널)를 보라. 정법에게 미신이라고 하면 명예훼손이 될 수 있다”라고 말하며 마찰하는 일도 있었다. 3차, 4차, 5차 경선 토론회에서 윤석열 후보 손바닥에는 임금 왕(王)자가 새겨져 있었다. 윤 후보 캠프 관계자는 “동네 지지자가 써줬다”라고 주장했다. 3차 토론회는 2021년 9월26일, 5차 토론회는 10월1일로, 닷새간 새기고 있었거나 매번 새로 적었다는 말이 된다.
계엄 관련자 중 한 사람으로 의심받아 내란 혐의로 구속된 노상원 전 정보사령관은 2018년 성추행 혐의로 불명예 전역한 후 역술인으로 일했다. 2024년 12월23일 〈조선일보〉는 경찰 조사에서 노 전 사령관이 “계엄 두세 달 전쯤 김용현 당시 국방부 장관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올해 운이 트이니 이 시기를 놓치면 안 된다’고 조언했다”라고 말했다고 보도했다. 반면 김 전 장관 측 변호인은 12월26일 기자회견에서 “노 전 사령관은 비상계엄이나 윤석열 대통령과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라고 주장했다. 명태균씨는 김건희의 꿈 이야기를 듣고 “권성동, 장제원, 윤한홍이 총장님을 펄펄 끓는 솥에 삶아 먹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명태균 게이트’의 또 다른 관련자는 ‘건진법사’ 전성배씨다. 청와대 이전을 앞두고는 풍수가 백재권씨가 윤한홍 국민의힘 의원과 김용현 당시 경호처장과 함께 용산 대통령 관저 후보지에 방문했다.
미신과 결합한 결단주의형 리더
고독한 결단을 즐기는 결단주의형 리더가 미신과 결합할 때에는 공동체에 특히 위협적이다. 미신은 그의 미심쩍은 결단에 정당성을 부여하고, ‘적’을 식별해내고 궤멸할 명분을 제공한다. ‘독실한 종교인은 좋은 정치지도자가 될 수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정치종교사회학 연구자인 정태식 경북대 교수(사회학)는 종교와 주술의 차이가 ‘보편성’에 있다고 말했다. “종교는 신의 뜻에 따라 삶을 살도록 한다.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다. 여기에서 이타심이 도출된다. 반면 주술은 신을 ‘이용해서’ 자기 이익을 구하는 게 속성이다. 본래 이기적이다.”
종교와 주술 모두 이 신념체계 바깥의 사람에게는 비합리의 영역이다. 그러나 후자에 빠진 이는 더 적대적이고, 예측하기 어렵다. 정 교수의 말이다. “(외부에서 볼 때) 종교의 목적 자체는 비합리적이다. ‘구원’이나 ‘해탈’을 이성으로 알 수 없다. 반면 수단은 합리적이다. 타인과 나누고, 사랑하는 행동이 그렇다. 주술은 목적이 합리적이다. 돈 많이 벌고 권력을 잡으려는 건 합리적이다. 그러나 수단은? 굉장히 비합리적이다. 목적 달성을 위해 어떤 일을 할지 예측하기 어렵다.” 전광훈 목사를 비롯한 몇몇 ‘보수’ 개신교 목회자들이 윤석열의 역성을 드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라고 정 교수는 말했다. “한국의 보수 개신교는 원리주의와는 다르다. 오랜 기간 정치와 영합해 ‘주술화’되어 있는 종교인들이 윤석열을 옹호하는 것이다.”
2024년 12월18일 천공이 본인 유튜브 영상에서 한 말은 윤석열의 ‘주술적 결단주의’의 맥락을 짐작하게 한다. 탄핵소추안 가결 이튿날 녹화된 이 영상에서 윤석열 탄핵에 대한 질문을 받은 천공은 이렇게 말했다. “하느님이 내는 대통령이 있다. 당에서, 조직에서 힘으로 만든 건 하느님이 낸 대통령이 아니다. 하느님이 낸 대통령은 조직 없이 나온 대통령이고, 국민이 받든다. (···) 이게 누구냐? 윤석열 대통령이다. 시국이 어려울 때 박정희 대통령이 그렇게 나왔다. 불의를 보고 앞장서준 것만 해도 고맙다. 이걸 감당할 수 없어도 목숨 걸고 풀어보겠노라고 노력하는 (윤석열) 대통령이다. 희생되더라도 나와서 국민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윤석열을 대권 후보로 올린 권력기관 검찰의 역할은 축소되고, 대신 “국민”과 “하느님”의 점지로 둔갑한다. 대권에 대한 야욕과 무모한 계엄 선포, 시민들의 반발과 탄핵은 대통령의 숭고한 “희생”이 된다. 천공은 영상 끝에 “동지 안팎으로 상황은 정리되고 내년 설 안에 윤석열은 앞으로 나아갈 힘을 받을 것”이라며 낙관했다. ‘윤석열이 대통령 취임 후 몇몇 의사결정을 천공 말에 따라 했다’는 일각의 의심은 아직 증명되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주의적 헌법 이론으로는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윤석열의 계엄령과 그에 대한 자기변호가, 천공의 요설에 따르자면 쉽게 풀이되는 면이 있다.
12월14일, 탄핵 가결 후 대국민 담화문에서 윤석열은 “정치 참여를 선언했던 2021년 6월29일이 떠올랐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그의 임기 전반에 걸쳐 꾸준히 벌어진 일련의 사건들은 2022년 5월10일 대통령 취임사를 떠올리게 만든다. 지나치게 ‘자유’만 반복했다며 비판받은 이 연설에는 이런 구절이 있었다. 돌아보면 윤석열 자신에게 결여된 덕목이 여럿 적혀 있다. “정치는 이른바 민주주의의 위기로 인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바로 반지성주의입니다. 견해가 다른 사람들이 서로의 입장을 조정하고 타협하기 위해서는 과학과 진실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합리주의와 지성주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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