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기영 기자의 안녕, 나사로] 승부 넘어 상대 위로한 선수들 공감 능력·품격도 ‘금메달’

최기영 2024. 8. 10. 0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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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올림픽
대한민국 탁구 국가대표 선수 신유빈이 3일(현지시간) 프랑스 사우스 파리 아레나4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탁구 여자 단식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한 뒤 승자인 일본 하야타 히나와 포옹하고 있다. 뉴시스


‘한여름 밤의 꿈’처럼 기적 같은 순간들을 선사했던 2024 파리올림픽이 서서히 막을 내리고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불과 20여일 전만 해도 올림픽을 바라보는 대중의 시선은 ‘세계인의 스포츠 축제’보다는 ‘그들만의 스포츠 축제’에 가까웠다는 점이다.

지난달 파리로 출국하는 선수단에게선 위축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럴 만했다. 축구 농구 배구 등 단체 구기 종목의 출전이 불발되면서 선수단 파견 규모(144명)는 1976년 몬트리올 올림픽(50명) 이후 역대 최소 수준에 그쳤다. 소위 인기 종목, 스타 선수들의 활약을 볼 수 없게 된 올림픽과 선수단을 향한 관심은 바닥을 쳤고 올림픽 특수를 누리기 힘들 것이란 전망과 함께 치킨 주류 방송 업계 주가가 하락하는 현상까지 보였다.

하지만 올림픽 개막과 함께 역대급 반전 드라마가 펼쳐졌다. 대회 전 금메달 5개, 종합 순위 15위를 목표로 걸었던 것이 무색하게 태극 전사들의 금빛 질주는 놀라웠다. 5개가 걸린 금메달을 싹쓸이한 양궁을 비롯해 사격과 펜싱에서 연일 시상대 위 태극기를 휘날리며, 국가별 순위표에서 대한민국의 이름을 상위로 끌어올렸다. 온라인상에선 ‘그 어느 때보다 폐막을 늦추고 싶은 올림픽’이란 반응이 줄을 이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명승부가 꿈같은 기적을 보여줬다면, 승부를 넘어선 선수들 간의 교감은 꿀처럼 달달한 감동을 전했다. 승자 하야타 히나는 울었고, 패자 신유빈은 미소를 띠며 상대를 안았다. 자국 선수가 득점할 때마다 환호하던 일본 감독은 신유빈이 다가가 축하를 건네자 90도로 허리를 숙였다. 1점만 얻으면 승자가 되는 매치포인트에서 자신에게 칼끝을 겨누던 상대 선수가 넘어지자 손을 건네 일으키는 오상욱의 모습에 관중석에선 기립 박수가 터져 나왔다. 호쾌한 허리후리기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따낸 프랑스의 유도 영웅 테디 리네르는 경쟁자 김민종 선수의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며 위로했다. 배드민턴 은메달리스트 중국의 허빙자오는 준결승전에서 자신과 경기를 치르다 부상을 당해 기권한 스페인 선수의 회복을 기원하며 시상식 내내 스페인 팀의 배지를 손에 들었다.

끝없는 경쟁을 이겨내고 극한의 훈련과 노력 끝에 얻는 성과에만 집중한다면 기대하기 힘든 모습이다. 올림픽 무대에 서기까지 감내해온 눈물겨운 고난들이 비단 자신뿐 아니라 상대 선수도 동일하게 걸어온 길이라는 공감으로 향했을 때 비로소 나타날 수 있는 행동이다.

파리와의 7시간 시차를 딛고 경기를 응원하느라 평소 취침시간을 훌쩍 넘겨서도 TV 시청이 허용된 우리집 ‘초딩 남매’에게도 올림픽은 꿀 같은 시간이었다. 승패가 엇갈리는 긴장된 순간보다 유독 감동적인 장면에 시선을 떼지 못하던 아들은 취재진과 만난 신유빈의 인터뷰를 보며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실력과 정신력, 체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을지 잘 알기 때문에 이를 인정하고 배워야 할 건 배우고 다음 도전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신유빈)

잠자리에 들기 전 침대에 나란히 누운 아들에게 어떤 마음이 올림픽의 감동적인 장면들을 만들었을지 물었다. 잠시 호흡을 고르던 아들이 말했다. “아빠. 이런 거 아닐까요. ‘나만 힘든 줄 알았는데 아니구나. 너도 많이 힘들었겠구나’하는 마음.”

근대 올림픽의 창시자 피에르 드 쿠베르탱(1863~1937)은 “가장 중요한 것은 이기는 게 아니라 참가하는 것이며, 성공하는 게 아니라 노력하는 것”이라고 했다. 파리 올림픽의 슬로건은 ‘함께 나누자’였다. 세계인이 스포츠 축제를 보며 진짜 나눠야 할 것은 승리를 통한 환희가 아니라 화합을 통한 감격임을 올림픽 정신이 보여주는 대목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마음이 상한 자에게 가까이하시고, 우리를 위로하신다’(시 34:18)고 말한다. 더불어 ‘하나님께서 당신과 함께하시며 당신을 굳세게 할 테니 두려워하지 말라’(사 41:10)고 격려한다.

환경과 경계를 넘어선 우정의 바탕은 결국 공감으로부터 나온다. 공감은 승리에 도취돼 있을 때가 아니라 패배로 위축된 마음을 위로할 때 빛난다. 그렇게 빚은 우정은 ‘유아독존’이 아니라 ‘동반성장’의 밑거름이 된다. ‘뛰어난 능력은 경쟁자를 만들고 훌륭한 인성은 조력자를 만든다’는 진리를 되새기게 한 무대가 패럴림픽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해본다.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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