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 그들을 가사관리사로 부를 때
최근 필리핀 가사관리사 100명이 한국에 들어왔다. 서울시 시범사업에 따라 이들은 다음 달부터 6개월간 일반 가정에 파견돼 출퇴근 형식으로 일한다. “한국이 너무 좋아서 선택했습니다.” 한국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전하는 가사관리사 인터뷰를 보며 진한 씁쓸함을 느꼈다.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둘러싸고 한국에서 얼마나 많은 논란이 있었는지 이들은 상상이나 해봤을까.
필리핀 가사관리사들은 자국의 직업훈련원에서 780시간 이상 교육을 받은 전문 인력이다. 이들이 소지한 ‘Caregiving-NC Ⅱ’ 자격증은 영유아·어린이 돌봄뿐 아니라 환자와 노인 간병에 특화돼 있다. 한데 정부는 필리핀과의 업무협약서에 ‘아이의 동거가족을 위한 부수적이며 가벼운 가사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내용을 포함했다. 어른을 위한 가사업무까지 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가사서비스 시장은 청소 같은 집안일 영역과 돌봄 영역으로 나뉘어 발전하는 추세다. 정부가 지원하는 공공 아이돌보미 역시 ‘시간제 기본형’은 아이돌봄 서비스만, ‘시간제 종합형’은 돌봄에 더해 아동과 관련된 가사서비스만 제공한다. 정부는 두 서비스를 모호하게 결합시켜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집안일도 하고 아이도 돌보는’ 만능 직업으로 설정했다. 이처럼 업무 부담은 늘었는데 이미 최저임금인 임금을 더 낮춰야 한다는 논쟁이 여전하다. 한국에서 일하는 외국인 근로자는 92만명에 달하지만 최저임금 논란은 저출생 대책이라는 가사관리사에게만 지속적으로 따라붙는 이슈다.
정부는 외국인이 필요한 이유로 ‘아이 돌봄 수요는 많고 공급은 적다’는 논리를 내세운다. 내국인 가사관리사들이 고령화되고 종사자도 점점 줄고 있다는 것이다. 애초에 가사관리사는 왜 줄어들까. 저임금과 불안정한 고용 등 열악한 근로조건이 원인으로 꼽힌다. 사회적으로 대우받지 못한다는 인식의 문제도 크다.
근로기준법이 제정된 1953년 당시 가사노동자는 가정 내에서 숙식하며 가정일을 돌보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가정에서 개별 고용한 ‘가사사용인’은 근로기준법 적용을 받지 않는 예외 대상이다. 수십년이 지나 가사·돌봄 서비스가 산업으로 발전하고 전문성을 가진 종사자도 늘어났지만 낡은 법 규정은 그대로다. 그간 가사노동자들은 노동법 사각지대에서 직업인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파출부’ ‘가정부’ ‘이모님’ 등으로 불렸다. 2022년에는 정부 인증 기관에서 가사노동자를 근로자로서 정식 고용하도록 한 가사근로자법이 시행됐는데, 현재 인증 기관에 속한 가사노동자는 1600명 정도에 불과하다.
가사노동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시장 구조가 변하는 과도기인 셈이다. 하지만 정부는 이러한 내국인 가사관리사의 현실, 가사근로자법 취지와의 충돌, 외국인 도입으로 인한 현장의 혼란과 우려 등에 별다른 언급이 없다.
‘수요가 많다’는 주장도 자세히 들여다봐야 한다. 고소득층이 아닌 이상 하루 8시간 이상 아이를 맡기며 월 200만원 이상을 감당할 수 있는 가정은 많지 않다. 부모들이 주로 원하는 건 어린이집이나 학교가 끝난 뒤 부모의 퇴근 시간까지 공백을 메워줄 가정 돌봄이다. 특정 시간대에 짧게 이용하고 싶은 수요가 많으니 거기에 맞는 인력을 찾기 쉽지 않은 구조인 것이다.
그렇다면 ‘외국인’에 대한 수요는 어느 정도일까. 올해 6월 정부 인식조사를 보면 가정 방문 돌보미를 활용할 의향이 있는 부모 471명 중 외국인을 활용하겠다는 답변은 151명(32%)이었다. 활용하지 않겠다는 응답이 320명(68%)으로 절반을 훨씬 넘었다. 정부는 ‘아니요’에 대한 이유를 별도 조사하지 않았으나 ‘언어·문화적 차이로 아이를 믿고 맡기기 어렵다’는 우려가 가장 큰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정부는 시범사업을 시작하기도 전에 내년 외국인 가사관리사를 1200명 규모로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가사관리사 정책에 그나마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다면 이 직업에 이름이 생겼다는 것이다. 정부는 지난해 8월 업계와 전문가 의견을 수렴해 공식 명칭을 ‘가사관리사’로 정했다. 그동안 제대로 된 호칭이 없었던 가사노동자들이 자부심을 갖고 일할 수 있도록 새 용어를 발굴했다고 한다. 우리 사회가 당연하고 자연스럽게 그들을 가사관리사로 부를 때, 그 직업은 정말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존중받는 직업으로 바뀌어 있을까. 이번 외국인 가사관리사 시범사업을 지켜보는 모두가 반드시 고민해봐야 할 지점이다.
박상은 사회부 기자 pse021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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