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전병선 2024. 8. 10.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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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선 미션영상부장


최근 베네수엘라가 부정 선거 논란으로 반정부 시위가 확산하는 등 큰 혼란에 빠졌다. 베네수엘라 선거관리위원회는 지난달 28일 열린 대통령 선거에서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이 승리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이를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은 것 같다. 일부 출구조사 및 여론조사에서도 야권 주자가 상당히 앞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국, 유럽연합은 물론 그동안 마두로 대통령에게 우호적이던 중남미 좌파 정부들도 개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우리나라보다 잘살던 나라였다. 2000년대 초만 해도 남미의 부국으로 불렸다. 원유 매장량이 전 세계 1위, 당시엔 석유 가격도 급등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하지만 정치 때문에, 특히 좌파의 포퓰리즘 정치 때문에 경제가 곤두박질했다. 1999년 집권한 좌파 대통령 우고 차베스와 후계자인 마두로는 대중의 인기를 바탕으로 정권을 유지하고자 포퓰리즘 정책을 폈다. 원유 산업에 너무 의존했고 극단적 사회주의 정책을 폈으며 재정을 방만하게 운용했다.

차베스는 석유 산업을 국유화해 확보한 재정을 국민에게 마구 뿌렸다. 무상 복지를 극대화했다. 무상 교육을 하고 식량, 의약품, 연료 등을 보조금 형태로 무상 제공했다. 저소득층에게 식료품을 무료 배급하고 저가 주택을 제공했다. 정부의 시장 개입으로 빈민율이 줄기도 했다. 이를 통해 높은 지지율을 확보했다. 마두로는 인플레이션과 지지율 하락으로 코너에 몰리자 경제를 통제할 초법적 권한을 위임받아 전자제품을 반값에 팔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그 영향으로 마두로가 이끄는 여당이 지방선거에서 승리했다.

그러다 국제 유가가 폭락하면서 경제가 나락으로 치달았다. 물가상승률이 해마다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2년 물가상승률이 6500%였다. 경제 대혼란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다. 국민이 길거리의 개와 비둘기를 잡아먹고 햄버거 1개가 20만원이라는 소식도 있다. 의료 서비스가 마비돼 아이들은 죽어가고 항암제는 암시장에서 고가에 거래되며 구급차 산소 탱크가 없어 환자가 사망하고 전기가 끊겨 엑스레이를 못 찍는 지경이다. 식량난에 허덕이다가 이웃집 소년을 살해해 인육을 먹었다, 젊은 여성들은 성매매에 내몰린다, 교사가 영양실조로 학교에서 쓰러져 죽었다는 등의 소식이 있다. 그런데도 아직 경제가 바닥을 찍은 게 아니라고 한다.

베네수엘라의 상황을 보면서 대한민국을 걱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우리는 세계 경제 규모 14위에 1인당 국민소득은 4만 달러를 바라보고 있다. 반도체, 자동차, IT산업 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스마트폰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으며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 시장에 킬러 콘텐츠를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잘사는 나라가 망하는 것도 한순간이다. 베네수엘라가 몰락하는 데 10년도 안 걸렸다. 대한민국 정치도 내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당장 눈앞의 이익과 인기만 생각하면 베네수엘라처럼 되지 말란 법이 없다. 여든 야든 집권하겠다는 일념으로 몰상식적인 정치를 한다면 이 나라의 미래는 없다.

특히 포퓰리즘을 경계해야 한다. 당장은 좋아 보이고 편해 보이지만 그것이 우리나라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따져봐야 한다. 그래서 공짜여도 거절해야 한다. 공짜로 주는 사탕이 맛있다고 계속 먹다 보면 이가 썩어 손해 보는 사람은 우리 자신이다. 그때 가서 사탕 준 놈 욕해봐야 헛수고다.

차베스가 극빈층에게 다양한 혜택을 줘서 형편이 나아지자 이들은 나중에 차베스의 민병대까지 자처했다고 한다. 이번 베네수엘라 대선 투표일을 7월 28일로 정했는데, 이날이 차베스의 생일이고 차베스의 정책과 노선을 지지하는 유권자를 겨냥했다는 분석이 있다. 포퓰리즘으로 무언가 얻은 이들도 있으리라. 하지만 나라가 몰락해 모두가 살 수 없는 지경이 되면 그게 무슨 소용인가. 우리 모두 분별력을 갖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자. 선진국 대한민국을 지켜내야 한다.

전병선 미션영상부장 junb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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