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날의 검’ 한동훈 팬덤
“한동훈 대표님이 처음 시사 토크쇼에 출연하십니다. 높은 시청률로 위상을 세워드립시다!” “‘한동훈 특검법’ 반대 청원은 대표님을 지켜드리는 방법이니 꼭 동참 부탁드립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와 관련된 정치 현안이 있을 때마다 팬카페 ‘위드후니’에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이런 글이 올라온다. 한 대표가 4·10 총선 참패 후 7·23 전당대회를 거쳐 당 사령탑에 오르고 당직 인선을 하는 과정에서 위드후니는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냈다.
위드후니는 기존 정치인 지지 모임과 달리 아이돌 팬덤의 특징을 강하게 띠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내가 좋아하는 아이돌을 ‘지키고 돌보며 키운다’는 마음이 지지층을 움직이는 동력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 정치권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든 이례적인 팬덤이다.
이러한 현상은 국민의힘에 양날의 검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당 지지율을 끌어올리는 지렛대가 될 수 있지만 당내 분열과 갈등을 불러와 야당에 공격 빌미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재명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개혁의 딸)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는 과격한 행동을 한 지지자가 당원으로 확인될 경우 징계하는 등의 조치를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위드후니는 2020년 7월 결성됐다. 한 대표가 검사 시절 법무연수원 연구위원으로 좌천돼 속칭 유배 생활을 하던 때다. 한 대표 지지자 40명이 페이스북에 그룹을 개설한 게 시작이었다. 그로부터 4년이 지난 지금은 회원이 9만3000여명으로 늘었다.
전문가들은 한동훈 팬덤은 인물 중심의 호감, 중년 여성 위주의 지지, 현장성이라는 세 가지 특징을 띠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 친한계 인사는 9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한 대표 지지자들은 정치적이나 정책적 측면에서 접근하기보다 한동훈이라는 사람의 인간적인 행보, 검사로서 보여왔던 절제되고 스마트한 모습을 좋아하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위드후니의 한 회원도 “법무부 장관이었을 때는 물론이고 검사 시절부터 할 말 하는 모습이 인상 깊어 한동훈에 ‘입덕’하게 됐다”고 말했다. 정치에 관심이 없었지만 한 대표를 지지하면서 처음 전당대회에 관심을 갖게 됐다고 말하는 회원도 많다.
중년 여성들의 지지가 두드러진다는 점도 특징이다. 또 다른 친한계 인사는 위드후니 회원 구성과 관련해 “여성과 남성 비율이 8대 2 정도 되고 여성 지지층은 대부분 4050세대인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이 같은 인적 구성이 아이돌 팬덤화에 기여한다는 분석이 나온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아이돌 팬덤을 관통하는 키워드 중 하나가 ‘모성본능’인데 이것이 여성 위주의 한 대표 팬덤에도 작용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73년생 한동훈’ 저자 심규진 스페인 IE대 교수도 “한동훈 팬덤의 주류가 중년 여성이고 한동훈은 보수의 유력 정치인 중 드물게 젊은 편이기 때문에 아들을 대하는 마음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 같다”며 “한 대표가 당 안팎에서 공격받을수록 그에 대한 지지는 더욱 강해지는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오프라인 모임이 활발하다는 점도 아이돌 팬덤과 유사하다. 팬클럽 회원들이 자체적으로 모임을 갖고 정보를 공유하면서 세를 불리고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한 대표 지지자들은 정당 조직에 의지해 모이는 게 아니라 개인 팬들이 자발적으로 현장에서 만나 친분을 쌓는 경향을 보인다”고 전했다.
실제로 전당대회 합동연설회 행사장에선 한 대표 지지자들이 손수 만든 응원 도구와 파프리카, 오이 등 싸온 간식을 다른 지지자들과 함께 나누는 모습이 여러 번 포착됐다. 현장에서 만났던 한 지지자는 “오늘 처음 보는 사람들이지만 순수한 팬심으로 함께 응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당대회 이후에도 지지자들은 지역별 ‘정모’(정기모임)를 통해 결속력을 다지고 있다.
문제는 팬덤이 공고해질수록 맹목적 지지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곽 교수는 “자기편을 보호해야 한다는 심리가 ‘한 대표 비판 세력은 모두 다 틀렸다’는 적대감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과 교수도 “SNS 소통 등을 통해 정치인과 지지자 간 주관적인 친밀감이 강화되면 ‘내가 좋아하는 사람을 건들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마음이 생기고 정치가 선과 악의 구도로 변질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친윤(친윤석열)계 정점식 의원은 최근 정책위의장직에서 물러나기 전 한 대표 지지자들로부터 사퇴를 압박하는 욕설 섞인 문자 폭탄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SNS 계정은 댓글 테러 탓에 비공개로 전환한 상태다. 김민전 최고위원도 한 대표가 제시한 ‘제3자 채상병 특검법’에 대해 “채상병 특검법은 원내 전략이다. 대표가 이래라저래라할 얘기가 아니다”고 언급했다가 문자·전화 폭탄을 받았다고 밝혔다.
당내에서는 과거와 다른 양상의 팬덤에 대한 우려 목소리가 작지 않다. 원내 핵심 관계자는 “과격한 행동을 한 지지자들이 당원으로 확인될 경우 징계 등의 방법으로 적극 대응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개딸 정당’이 되는 건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문자 폭탄, SNS 댓글 테러 등을 방치하면 일부 과격 지지층이 당의 의사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중진 의원은 “박근혜 전 대통령 때도 팬덤은 있었지만 이런 식은 아니었다”며 “이런 모습이 우리 당에 플러스 요인이 될지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팬덤의 강성화는 진영을 가리지 않고 더 확산될 것이라는 진단도 나온다. 신 교수는 “이재명 팬덤이 강하니까 대항마 격인 한동훈 팬덤도 강해지는 것”이라며 “과거 노무현 팬덤인 ‘노사모’의 경우 한·미 FTA나 이라크 파병 등 이념 지향이 다른 이슈에 비판을 가했지만, 현재 이재명 전 대표 팬덤은 이 전 대표의 어떤 정책에도 반대하지 않는다. 한 대표 팬덤도 비슷한 양상으로 흘러갈 가능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이준한 인천대 정외과 교수는 “한 대표 팬덤은 지지층이 제한적이기 때문에 개딸처럼 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이강민 기자 rive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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