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는 중도층이 쥐고 있다…한동훈의 고민 [신율의 정치 읽기]
이제 한동훈 대표는 어떤 방향으로 당을 이끌어야 할까?
한 대표는 진보와 보수 유권자 비율이 과거 2:3에서 지금은 3:2로 바뀌었다고 주장한다. 진보 우위 정치 지형이라는 의미다. 그래서 중도층 지지를 얻지 않고서는 모든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논지를 편다.
현재 우리나라 정치 지형은 정말 진보 우위 지형일까? 한국갤럽 여론조사를 토대로 살펴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이 있기 전에는 보수가 진보보다 우위였다. 그런데 박 전 대통령이 탄핵당하고 문재인 정권이 들어선 2017년 이후부터는 진보 우위 정치 지형이 형성됐다. 이런 추세는 2022년 1월부터 바뀌기 시작한다.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가 진보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보다 많아지기 시작한다. 이런 보수 우위 정치 지형은 지금까지 계속 유지되고 있다. 한국갤럽의 가장 최근 여론조사(7월 23일부터 25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1001명을 대상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3.1%포인트, 자세한 사항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보수가 31%, 진보가 27%였다. 이런 주관적 이념 지형은, 박 전 대통령 탄핵 이전인 2016년 1월과 비슷한 수준이다. 당시에도 보수 31%, 진보 25%였다. 현재는 탄핵 이전 정치적 이념 지형으로 어느 정도 복귀한 셈이다.
이념 지형이 복귀됐다고, 앞으로의 선거에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라고는 장담할 수 없다. 31% 정도 유권자가 보수 성향이라 해도, 이들만 갖고는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 투표율과 해당 선거에서 보수층이 어느 정도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인가에 의해서도 선거 승패는 갈린다.
예를 들어보자. 지난 대선에서 윤 대통령 득표율은 48.6%였고, 지난 총선 당시 지역구에서 얻은 국민의힘 후보 표의 합은 44.45%였다. 여기서 투표율을 고려하면, 윤 대통령을 찍은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투표하지 않은 유권자도 포함)의 37.47%였고, 지난 총선 당시 국민의힘 후보를 선택한 유권자는 전체 유권자 대비 29.78%였다. 20대 대통령 선거 직전 유권자 이념 지형은, 전체 유권자의 26%가 보수, 24%가 진보였다. 윤 대통령이 중도층 선택을 못 받았다면, 대통령에 당선될 수 없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22대 총선 직전인 2024년 3월의 이념 지형은 보수가 전체 유권자의 32%, 진보가 28%였다. 앞서 언급했듯, 총선 당시 국민의힘 지역구 출마자들이 받은 표의 합이 전체 유권자의 29.78%였으니, 보수층에서조차 국민의힘을 외면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볼 점은, 윤 대통령이 중도층 지지를 받고 있는가다. 위의 여론조사에서 윤 대통령은 28%의 지지율을 보여주는데, 이는 현재 보수 유권자 비율인 31%에 못 미친다. 한마디로, 보수층 일부마저도 윤 대통령 지지를 철회했다 볼 수 있다. 상황이 이러니 대통령 지지율과 여당 지지율 사이에 ‘디커플링’ 현상이 나타난다. 이는 앞으로 한동훈 대표의 국민의힘이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단면이다.
주목할 만한 또 다른 여론조사가 있다. 폴리뉴스가 한길리서치에 의뢰해 지난 8월 4일에 공개한 여론조사(7월 25일부터 27일까지 전국 18세 이상 2000명을 대상으로 조사,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 ±2.2%포인트, 무선 RDD 100% 전화 ARS 방식의 조사, 자세한 사항은 한길리서치 홈페이지 참조)를 보면, 한동훈 대표가 당대표직을 잘 수행할 것이라 보는 응답자가 42.4%에 달한다. 게다가 보수의 심장 대구·경북 지역에서 한 대표가 잘할 것이라고 응답한 비율은 48.9%다. 중도층, 즉 스윙보터가 많이 거주하는 서울과 수도권에서는 각각 40.8%, 39.4%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한 대표의 중요한 과제는 앞으로 수도권과 중도층 지지를 더 받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중도층 지지 확보가 앞으로의 선거 승패를 가를 관건인 셈이다.
이를 위해 한 대표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정책의 방향성을 떠나 ‘국민 눈높이’에 맞는 상황 대응에 전력을 다해야 한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윤 대통령 정치 행태를 보면, 국민과 눈높이를 잘 맞췄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윤 대통령과 대통령실의 가장 큰 문제는 여론에 신속하게 반응하지 못하는 점이다. 무슨 일이 터지면 해당 사안에 대한 국민적 시각이 어떤지 재빠르게 파악하고, 국민 눈높이에 맞춰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데, 자신들 입장을 국민에게 이해시키려는 모습만을 자주 보였다.
‘채 해병 특검’이 대표적인 사례다. 민주당이 특검을 들고나왔을 때 즉시 3자 추천 특검으로 맞받아쳤다면, 해당 사안의 정권에 대한 부정적 영향력이 지금처럼 커지지는 않았을 테다. 총선 직전에 있었던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의 호주 대사 임명도 마찬가지다. 이는 모두 여권 핵심부가 여론과 눈높이를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 대표가 이런 식으로 사안에 접근하는 대통령실과 ‘호흡’을 같이하다가는 국민의힘 지지율이 대통령 지지율에 수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 대표는 국민 상식과 여론에 잘 부합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이런 과정에서 대통령과 마찰이 빚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갈등이 무섭다고 정권 재창출 가능성을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현재 시점에서 보면, 한 대표는 가장 유력한 차기 대선 후보다. 현재 권력과 차기 대선 후보 사이에는 항상 갈등이 있어왔다. 김영삼 대통령은 노태우 대통령과 상당 수준의 갈등을 겪었고, 자신이 정권을 잡은 이후에는 이회창 총재와 갈등했다. 노무현 정권 시절 차기 대권 주자였던 정동영 의원은 노무현 당시 대통령과 갈등했고, 이명박 정권 시절 박근혜 당시 대표와 대통령의 갈등은 이미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겉으로 많이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이재명 후보와 문재인 대통령 사이도 원만했다고는 결코 볼 수 없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당시 권력과 차기 대선 후보들이 어떤 문제를 갖고 갈등했는가다. 국민 여론에 반응하는 문제를 두고 벌어진 갈등이라면, 이는 감내해야 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다.
또 한 가지 한 대표가 할 일은, 정치에서 ‘보여주기’가 중요하다는 차원에서 각계각층 국민과 ‘자주’ 만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사실이다.
현재 여권 입장에서는 현 정권의 성공을 통한 정권 재창출이 가장 좋은 선택지다. 반면 그게 힘들다고 판단되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무엇인가 고민해야 한다. 합리적 선택을 위한 시기와 방식도 중요하다는 것을 다수 당원과 보수층은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른다.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2호 (2024.08.14~2024.08.20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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