급하게 날아온 파리, 짧았던 무대...이한빛 "아버지께 자부심될 올림픽" [2024 파리]
차승윤 2024. 8. 9. 20:56
"아버지께 자부심이 될 올림픽이라고 생각해요. '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아무래도 부담 주기 싫어서 그러셨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꿈꿔왔던 올림픽은 너무 짧았다. 추가 선발로 급하게 파리로 날아온 이한빛(30·완주군청)이 한 경기로 올림픽 무대를 마무리했다.
이한빛은 지난 1일 대한레슬링협회로부터 '올림픽에 나설 수 있느냐'고 연락 받았다. 북한 문현경이 대회 출전을 포기하면서 차순위로 이한빛에게 기회가 왔다. 5일, 급하게 파리행 비행기를 탔다.
비교적 낮은 랭킹, 급하게 준비한 대회에서 최선의 결과를 내기란 쉽지 않았다. 이한빛은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샹드마르스 경기장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레슬링 여자 자유형 62㎏급 16강전에 출전했으나 루이자 니메슈(독일)에게 0-3으로 패했다. 니메슈가 결승에 진출하면 패자부활 기회를 얻을 수 있었지만, 그가 탈락하면서 아쉬움을 남기고 이번 대회를 마감했다.
이곳까지 오는 길이 멀었다. 이한빛은 지난 4월 키르기스스탄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해 출전권을 얻지 못했다. 이후 몸 오른쪽이 마비되는 증상에 시달려 병원을 찾았으나 검사 결과는 정상이었다. 증상을 해결하지 못하면서 5월 튀르키예 올림픽 세계 쿼터대회에도 나서지 못했다. 추가 선발의 행운이 뒤늦게라도 찾아왔지만, 어려움이 더 컸다.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믹스트존)에서 만난 이한빛은 "충분히 이길 수 있었는데 너무 자신 없게 한 게 후회스럽다. 더 잘할 수 있었는데, 너무 자신이 없었던 게 패배 요인"이라며 "늦게나마 인생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메달 기회가 왔는데 그걸 놓쳐서 아쉽다"고 전했다.
다른 종목 선수들과 달리 이한빛은 대회에 컨디션을 맞추기 어려웠다. 이번 대회 대부분의 선수들은 퐁텐블로 등에 마련된 프랑스 사전 캠프에서 최적의 컨디션을 만들고 본 무대에 출전했다. 하지만 이한빛은 한동안 제대로 훈련할 수 없었다. 이후에도 국내 경기만 출전하다 뒤늦게 연락을 받고 와 현지 적응할 시간을 얻지 못했다.
이한빛은 핑계를 대지 않았다. 이한빛은 "여태까지 해온 게 있어서 급하면 잘될 것도 안 될 것 같아서 마음 편하게 이제까지 했던 걸 믿고 경기했다"고 했다. 그는 "루틴대로 거의 준비하지 못한 대회다. 너무 급하게 국내 대회를 마치고 넘어와서 몸 관리가 잘된 건 아니다. 그래도 잠은 잘 자서 시차는 큰 문제 없더라"고 전했다.
이한빛은 아버지에게 감사를 전했다. 어릴 적 어머니를 여읜 가운데 그의 아버지가 이한빛을 포함한 3남매를 키웠다. 이한빛은 "아버지께 자부심이 될 올림픽이라고 생각한다"면서 "평소 감정 표현이 없어서 처음 선발됐을 때도 '잘됐다. 마음 편하게 하고 와라. 뛰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하라'고만 말씀하셨다. 아무래도 부담 주기 싫어서 그러셨는지 모르겠다"고 웃었다.
파리(프랑스)=차승윤 기자 chasy99@edail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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