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차적응도 못 하고 뛴 올림픽, 핑계 모르는 이한빛..."자신 없었던 게 문제, 다른 건 없다" [파리 인터뷰]
(엑스포츠뉴스 프랑스 파리, 김지수 기자) 한국 여자 레슬링 자유형 62kg급의 간판 이한빛(30·완주군청)이 극적으로 밟은 올림픽 무대 첫 경기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선수 스스로도 "후회가 많이 남는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감추지 못했다.
이한빛은 9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아레나 샹 드 마르스에서 열린 2024 파리 올림픽 여자 레슬링 자유형 62kg급 16강에서 독일의 루이사 니메쉬에 0-3으로 졌다.
이한빛은 초반 니메쉬에와 힘대힘으로 대등하게 맞섰다. 하지만 기술 점수 2점을 뺏기면서 0-2 열세 속에 16강전을 시작했다. 적극적으로 반격에 나섰지만 외려 한 점을 더 내주면서 0-3으로 상황이 악화됐고 그대로 경기가 종료됐다.
이한빛은 16강전 종료 후 진행된 믹스트존(공동 취재 구역) 인터뷰에서 "충분히 할 수 있었는데 너무 자신 없게 플레이한 것 같아 후회스럽다"며 "사실 국내대회를 마치고 급하게 파리로 넘어왔기 때문에 사실 몸 관리가 잘 된 상태는 아니었다. 그래도 오늘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것 같은데 너무 자신 없이 붙었던 게 패인이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이한빛은 당초 2024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하지 못한 상태였다. 지난 4월 키르기스스탄 비슈케크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아시아쿼터 대회 준결승에서 몽골의 푸레우도르징 어르헝에게 0-4로 패하면서 이번 대회 출전이 무산됐었다.
비슈케크 파리 올림픽 아시아쿼터 대회에는 각 체급별로 2장씩의 올림픽 출전권이 걸려있었다. 이한빛의 체급은 자유형 62kg급에서는 결승에 진출한 어르헝과 북한의 문현경이 파리 올림픽 티켓을 손에 넣었다.
이한빛은 비슈케크 아시아쿼터 대회가 끝난 뒤 극심한 스트레스 속에 몸 상태까지 악화됐다. 지난 5월 튀르키예 이스탄불에서 열린 파리 올림픽 세계 쿼터대회 직전 몸 오른쪽이 마비되는 증상을 겪었다. 결국 세계 쿼터대회를 뛰지 못했고 그대로 올림픽 출전이 좌절되는 듯했다.
이한빛에게 기회가 찾아온 건 파리 올림픽이 한창 진행 중이던 지난 1일이었다. 대한레슬링협회는 이한빛에게 대회 출전 자격을 얻게된 사실을 알렸다. 이한빛은 곧바로 여자 자유형 유배희 감독과 짐을 싸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이한빛은 비슈케크 대회에서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획득했던 북한 문현경이 출전을 포기하면서 차순위로 이번 대회를 뛸 수 있게 됐다. 2012 런던 대회 김형주(48kg급)와 엄지은(55kg급) 이후 12년 만에 올림픽 무대를 밟은 한국 여자 레슬링 선수가 됐다.
이한빛은 지난 2018년과 2021년 아시아선수권대회 여자 자유형 65kg급 동메달을 따낸 이 체급 간판 선수다. 지난해 열린 2022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는 1라운드 탈락하며 아쉬움을 남겼지만 아시아권에서는 최정상급 선수로 인정받고 있다.
이한빛은 지난 5일에야 파리에 입성한 뒤 시차적응도 마치기 전에 이날 16강전을 준비했다. 선수는 "원래 잠을 잘 자는 편이라 시차적응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최상의 컨디션 속에 게임을 치르지 못한 것도 사실이었다.
이한빛은 "내가 태클에 자신이 있는 편인데 오늘은 제대로 하지 못했다. 게임 운영을 못한 것 같다. 약간 머뭇거리다가 기회를 놓쳤다"며 "뒤늦게 파리 올림픽 출전권을 얻기는 했지만 메달은 인생에서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기회다. 이 기회를 놓친 것 같아 아쉽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래도 올림픽 무대에 서봤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기도 했다. 경기 직전에는 조금 흥분됐다"며 "다시 기회가 온다면 후회 없는 경기, 이기는 경기를 하고 싶다. 이겨서 메달을 따고 싶다"는 바람을 나타냈다.
이한빛은 우여곡절 끝에 파리 올림픽에 나서게 된 부분은 자신의 이날 경기력과는 무관하다는 것도 강조했다. 예상치 못한 행운 속에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과정에서 어려운 부분은 있었지만 이 또한 실력이라고 보고 있다.
이한빛은 "다른 선수들처럼 (대회 일정에 맞춰 준비했다면) 더 잘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레슬링을 14년 넘게 해왔다. 평소에도 이렇게 운동하고 했기 때문에 이번에 짧은 기간 준비했다고 해서 후회가 들거나 그러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올림픽 출전 직전 아버지와 나눴던 대화를 통해 큰 힘을 얻었던 일화도 공개했다. 무뚝뚝한 한 마디였지만 이한빛은 기분 좋게 파리행 비행기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이한빛은 "아버지께서 워낙 평소에 감정 표현이 없으신 편이다. 처음에 파리 올림픽에 가게 됐을 때도 '그래 잘 됐다' 정도만 말씀하셨다"며 "부담주기 싫으셨는지는 모르겠지만 출국 직전에도 '마음 편하게 하고 와라. 네가 올림픽에 뛰게 된 것만으로도 고맙다'고 말씀해 주셔서 너무 감사했다"고 수줍게 말했다.
한국 레슬링은 이한빛의 탈락으로 2024 파리 올림픽을 '노메달'로 마치게 됐다. 2020 도쿄 대회(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1년 개최)에서도 단 한 명의 메달리스트도 배출하지 못했던 가운데 2대회 연속 누구도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다.
대표적인 올림픽 '효자 종목'이었던 레슬링은 최근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파리에서도 남자 그레코로만형 130kg급 이승찬과 97kg급 김승준이 모두 대회 시작과 동시에 탈락하면서 아쉬움을 삼켰다.
사진=프랑스 파리, 김지수 기자/대한레슬링협회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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