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소, 좌천, 죽음... 윤석열 정부 공무원 수난 시대

박성우 2024. 8. 9.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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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 맡은 바 최선 다했을 뿐인데 돌아온 건 불이익... 이런 정부에서 누가 사회 위해 일하겠나

[박성우 기자]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이 7월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 발의 요청 국민동의 청원 청문회에서 증인선서를 마친 뒤 정청래 위원장에게 선서문을 전달하고 제자리로 향하고 있다.
ⓒ 유성호
윤석열 정부가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들에게 상을 주기는커녕 오히려 핍박하는 모양새다.

먼저 전 해병대 수사단장인 박정훈 대령. 박 대령은 수해 실종자 수색작업 중 채 상병이 급류에 휩쓸려 숨진 데에 임성근 당시 해병대 제1사단장에게 과실치사 혐의가 있다고 보고 사건을 경찰에 이첩했다가 보직 해임을 당하고 '항명 수괴' 혐의로 입건됐다.

박 대령에게 죄가 있다면 "사고 원인을 철저히 조사해서 이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를 충실히 이행한 것 뿐이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후배 장병의 죽음이 헛되지 않도록 그 죽음의 진상과 책임을 밝히려고 노력했을 뿐이다. 그런 박 대령은 지난해 10월부터 현재까지 군사법원에서 재판을 받고 있다.

반면 지난해 8월, "책임을 통감하고 사단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지겠다"던 임 전 사단장은 여전히 건재하다. 최근에는 윤 대통령의 배우자 김건희씨의 도이치모터스 주가 금융 계좌를 관리한 인물이 임 전 사단장 구명 로비를 했다는 의혹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마약 밀반입 수사하다가 외압, 결국 좌천
 백해룡 전 영등포경찰서 형사과장이 7월 29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조지호 경찰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증인으로 출석해 의원 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유성호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하다가 좌천된 인물도 있다. 바로 백해룡 경정이다. 백 경정은 246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인 74kg의 마약 밀반입을 적발한 뒤 마약 밀반입과 세관 직원들이 연루된 정황을 발견했고, 이를 밝히려 하자 직속상관인 김찬수 당시 영등포경찰서장이 "용산에서 지켜보고 있다"며 "세관 연루 내용은 빼라"고 지시했다고 주장했다.

용산을 언급하며 수사 외압을 행사한 의혹을 받는 김찬수 전 영등포경찰서장은 현재 대통령실 자치행정비서관실에서 근무하고 있고 관세청은 "용산 대통령실에 협조를 요청한 적도 없고 일체의 지시를 받은 적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한편 마약 밀반입을 적발하고 수사한 백 경정은 지구대장으로 좌천됐다. 단일 마약 적발로는 역대 두 번째 규모의 마약 밀반입을 적발했고 밀반입 과정에서의 수상한 정황을 포착해 엄정하게 수사에 임한 결과였다. 지난해 4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며 "마약 범죄는 반드시 처벌된다는 각오로 강력하게 수사·단속해달라"고 지시한 사람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관련기사] 전 형사과장의 폭로, 수사외압 논란 마약사건 전말(https://omn.kr/29mpl)

목숨까지 잃은 이도 있다. 지난 8일 김아무개 국민권익위원회 부패방지국장 직무대리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고인은 지난 6월, 권익위가 김건희씨의 명품 가방 수수 사건에 대해 '위반 사항 없음'으로 종결 처리한 것과 관련해 '양심에 반하는 일을 해 괴롭다'는 취지로 하소연해 왔다고 한다.

8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고인과 자주 연락해왔다는 지인은 <한겨레>에 "지난 6월 27일, 고인이 술자리에서 전화를 걸어와 '권익위 수뇌부에서 김 여사 명품 가방 사건을 종결하도록 밀어붙였다'는 취지로 괴로움을 토로했다. '내 생각은 달랐지만 반대할 수 없었다. 힘들다'고 털어놓았다"고 밝혔다.

영부인의 부적절한 물품 수수와 관련해 '청렴하고 공정한 대한민국, 국민에게 힘이 되는 권익위'라는 일터의 좌우명을 꼿꼿이 지키려 한 인물은 결국 양심의 가책을 느끼며 세상을 떠났을 가능성이 크다.
 정부세종청사 국민권익위원회에 관계자들이 출입하고 있다. 2016. 7. 27
ⓒ 연합뉴스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라'는 독립지사들의 신념, 그러나...

'물지 않을 거면 짖지도 말라'. 조선은 일본으로부터 결코 해방될 수 없다고 본 친일파 윤치호의 말이다. 윤치호처럼 식민 시기 지식인 상당수가 권력에 굴종하며 친일로 선회했다. 그리고 그것을 현실이라는 미명으로 선전하며 조선인들의 저항정신을 꺾으려 들었다. 일제가 원하는 바였다.

반면 누구보다 최전선에서 현실과 마주한 독립지사들은 오히려 끝까지 일제라는 권력과 투쟁해 조선인들의 저항 정신을 일깨웠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그들이 불굴의 의지를 가질 수 있었던 까닭은 그들이 가는 길이 조국을 위해 옳은 일이라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제가 총탄과 폭탄보다 두려워 한 바는 바로 이 꺾이지 않는 저항 정신이었다.

이처럼 '불의한 권력에 저항하라'는 독립지사들의 신념은 4·19 혁명과 5·18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을 거치며 우리 사회에 이어져 왔다. 그리고 지금도 각자의 자리에서 불의에 저항하며 사회를 위해 일하는 수많은 이들이 묵묵히 그들의 정신을 잇고 있고 그것이야말로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원동력이다.
▲ 윤석열 대통령 광복 78주년 경축사 2023년 8월 15일 오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대 대강당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제78주년 광복절 경축식에서 경축사를 하고 있다.
ⓒ 뉴시스
그런데 광복 80년이 되어가는 2024년의 대한민국을 보라. 기소와 좌천 그리고 죽음. 이것이 독립지사들의 신념을 잊지 않고 우리 사회의 공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자 애쓴 공무원들의 말로다. 타의 모범이 되었다고 상찬하기는커녕 목숨까지 잃게 만드는 것이 작금의 정부다.

이런 정부에서 어느 공무원이, 더 나아가 그 누가 불의에 맞서 공공을 위해, 사회정의를 위해 일하려고 하겠는가.

이쯤되면 과거 친일파들이 해온 행태와 윤석열 정부의 행태가 대체 무엇이 다르다고 말할 수 있겠나. 이러고도 윤석열 대통령은 주권국의 당당한 시민을 꿈꿨던 애국 선열을 후일 뵐 낯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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