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시간에 8200원' 폭염에 배달해보니 "말도 안 된다"
국회의원 유일의 비정규직 여성노동자, 진보당 정혜경입니다. 노동자의 삶과 현장에 밀착한 의정활동, 특히 특수고용자 노동자, 플랫폼 노동자 현장에 가까이 하려고 합니다. 첫 번째는 배달노동자 체험입니다. 비록 짧은 현장경험이지만 과정에 느낀 소감을 나누고 싶어 글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노동자 국회의원답게 더 많은 현장을 찾겠습니다. <기자말>
[정혜경 기자]
▲ 정혜경 국회의원 배달노동자 체험 배달 노동을 하다가 거리에 앉아서 쉬는 중 |
ⓒ 정혜경의원실 |
여의도 길바닥에 앉아서 두 번째 배달을 마치고 세 번째 배달을 기다리고 있었다. 너무 뜨겁고 습한 더위에 숨도 차고 머리가 핑 돌았다. 평소 잘 마시지도 않던 이온 음료수 500ml 한 통을 한 번에 다 마셨다. 옆에 있던 배달노동자에게 "이거 한 통 마시면 배달해서 번 돈이 다 나가겠는데요"라고 말하니 "그럼요. 그래서 아무리 더워도 편의점에서 물 사 마실 생각은 못하죠"라며 웃는다. 배달노동자들이 더운 여름에 힘들게 일할 것이라 짐작은 했지만 직접 경험한 현실은 역시 상상 이상이었다.
지난 5일 배달플랫폼노동조합과 함께 배달노동을 체험했다. 체험을 위해 미리 '배민커넥트' 앱에도 가입했다. 국회 앞에서 첫 배달을 기다리는데 도통 배달이 잡히질 않았다. 앱에서 '평소 주문이 많은 곳'을 알려주는 붉은 원을 찾아서 여의도 공원을 지나 여의도역과 샛강역 인근까지 향했다. 그렇게 30여 분이 지나 드디어 첫 배달이 잡혔다. 다급한 마음에 얼른 수락하고 배달을 시작하려는데 옆의 배달노동자가 물어본다. "얼마예요?"
지급받을 배달료는 4200원이었다. 주변의 배달노동자들이 "와~ 의원님 운 좋네요!"라고 말한다. 보통 이 정도 거리의 배달은 2000~3000원 내외를 받는다고. "오늘 많이 덥고 습해서 프로모션이 붙은 것 같다"는 설명이 뒤따랐다.
▲ 이 음식이 내가 픽업해야 하는 음식이 맞는지 확인하는 것은 필수 |
ⓒ 정혜경의원실 |
"햄버거는 가방에 넣어야 합니다. 그래야 따뜻해요."
▲ 양손에는 커피를 들고 배달 주소지를 찾는다 |
ⓒ 정혜경의원실 |
조금 헤매는 사이에 몇 분이 더 지나서 얼음이 녹을까 걱정이 됐다. 원래 음료수도 보냉 가방에 넣어서 배달하는 것이 좋은데, 가방에 넣으면 아무리 포장을 잘해도 음료수가 쏟아지는 경우가 많아 그렇게 하기 힘들다고 한다. 대신 발걸음을 서두른다. 예상 시간보다 더 걸린 것 같아 "늦어서 죄송합니다"라고 인사하니 괜찮다고 웃으며 받아주신다.
나는 다행히도 고객의 '컴플레인'은 경험해보지 못했다. 음식을 만들어 배달시켜야 하는 사람의 마음, 배달하는 사람의 마음, 배달을 기다리는 사람의 마음을 두루 생각해 보게 되는 체험이다.
▲ 배달을 기다리며 앉아서 쉬는 중. 휴대폰을 계속 들여다보며 다음 배달을 찾는다 |
ⓒ 정혜경의원실 |
"얼마 버셨어요?" 배달체험을 했다고 하니 다들 묻는 말이다.
▲ ▲ 이날 2시간, 2건의 배달노동을 하고 번 돈. 그나마 폭염 '프로모션' 덕분에 높은 금액의 배달료라고 한다 |
ⓒ 정혜경의원실 |
체험을 마치고 배달노동자들과 유튜브 라이브 방송도 하고, 배달플랫폼노동조합 노동자들과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직접 배달을 했다고 하니 "1시간에 몇 번이나 하셨냐", "7kg짜리 수박 배달 한번 해보셨어야 하는데"라는 댓글도 올라온다. 여름에 오토바이를 한참 타면 엉덩이 쪽에 땀띠가 나서 고생이라는 이야기, 음식점에 도착했는데 조리가 안 되어 10분, 20분 기다리다보면 초조해진다는 이야기, 화장실에 가고 싶은데 음식점 눈치보여서 가기도 힘들다는 이야기, 점심시간에는 밥 먹어본 적 없다는 이야기까지 고충이 이어졌다.
플랫폼에서는 마치 남는 시간을 활용하면 쉽게 돈을 잘 벌 수 있는 것처럼 광고하지만, 실제 배달노동자들은 매 시간 최저임금도 안 되는 돈을 받으며 일하거나, 밥도 휴식도 없이 일하거나, 아니면 '프로모션' 받아 금액 높은 배달을 위해 비 오고 눈 오는 날 위험을 감수하며 거리로 나서야 한다.
지난 6월 '플랫폼, 특수고용노동자 최저임금 보장'을 위한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당시 기자회견에 함께 한 배달노동자들은 한 번 배달료가 2000원대라며 '이딸라'로 불린다고 자조했다.
소비자도, 노동자도, 소상공인도 어려운데... 돈은 누가 벌지?
배달을 시키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2000원이 적지 않지만, 배달노동자의 노동 가치에 비해서는 적은 돈이다. 상인들도 배달료 외에도 각종 수수료와 광고료를 내야 한다고 울상이다. 그런데 플랫폼 배달 시장은 갈수록 커진다. 도대체 누가 돈을 벌고 있는 걸까? 플랫폼 노동에 대해, 우리가 꼭 물어보고 따져봐야 하는 점이다. 지난해, 배달업계 1위인 배달의 민족은 7000억 원 가까운 영업이익을 올렸고, 독일 모기업은 4000억 원 넘는 배당금을 가져갔다.
배달노동시장에서 기업은 철저히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사업 덩치를 불리고 시장을 선점하려고 한다. 직고용은 없애고, 임금노동자 대신 '플랫폼 노동자'를 늘리고, 그마저도 하청 플랫폼을 두려고 한다. '유상운송보험' 의무가입을 시행하다가, 경쟁사에 밀리는 것 같으니 의무화 조항을 없애버린다. 사고가 난다면 고스란히 노동자 개인의 삶에 책임이 돌아간다. 이렇게 플랫폼 배달 노동자들은 저임금 고강도 노동으로 내몰린다.
▲ 배달노동을 체험하고, 노조법 2,3조 개정안 표결을 위해 국회로 다시 돌아가는 길의 기분이 남달랐다 |
ⓒ 정혜경의원실 |
노조법을 비롯한 각종 법안 필리버스터가 이어지던 어느 날, 국회 앞에서 1인시위를 하던 한 노동자가 그런 말을 했었다.
"국회 본회의장은 시원하죠? 그러니까 다들 양복 입고 필리버스터를 하지. 거기 에어컨이 다 꺼져봐야 이렇게 노조법 막겠다고 필리버스터를 안 할 텐데!"
더운 여름, 비록 짧은 시간의 배달체험이었지만 소중한 경험이었다. 나의 초심, 노동자들의 땀을 잊지 않아야겠다고 노동자 국회의원으로서의 마음을 다져본다.
▲ ▲ 배달노동자들에게도 최저임금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더 확고해진 체험이었다 |
ⓒ 정혜경의원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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