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까지 민 유재명 "‘행복의 나라’ 전상두, 시대 야만성 압축"
'서울의 봄' 전두광 잇는 전상두
"그 시대 야만성 압축한 인물"
" "해도 손해, 안 해도 손해인 역할이었어요. ‘내가 전상두를 해서 뭘 얻으려고 했지?’란 생각이 들 만큼 어려웠지만 배우로서 한 번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 영화 ‘행복의 나라’(감독 추창민, 14일 개봉)에서 권력 실세 합수부장 ‘전상두’ 역을 맡은 유재명(51)의 말이다. 1979년 10‧26 대통령 암살사건 이후 재판과정을 그린 영화에서 전상두는 “그 시대의 야만성을 압축한 인물”(유재명)이다. 전두환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캐릭터는 올해만 두 번째다. 올 초 1312만 흥행을 거둔 ‘서울의 봄’(감독 김성수)에선 배우 황정민이 79년 12‧12군사반란을 이끄는 광기어린 ‘전두광’을 연기해 제60회 백상예술대상 영화 부문 대상‧작품상‧남자 최우수 연기상을 휩쓸었다.
머리 면도까지 "군부정권 간교함 상징"
'광해, 왕이 된 남자'에 이어 연출을 맡은 추창민 감독에 따르면 전상두는 “전두환이란 한 사람이 아니라, (당대 군부독재 정권의) 권력자의 간교한 뒷모습을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 극 중 그는 대통령 암살 재판정 뒤 도청실을 지키며 판사들을 입맛대로 주무른다. 중앙정보부장의 수행비서관으로 암살에 휘말린 박태주(이선균)의 변호사 정인후(조정석)에게 ”네가 무슨 짓을 하든 그놈은 죽는다“고 조소한다.
“전상두가 안개 속 인물처럼 파악하기 어려워 처음엔 거절했다가 잔상이 남아 출연하기로 했다”는 유재명을 8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났다. “‘행복의 나라’가 실제 역사에 연루된 한 개인의 삶과 죽음, 신념, 가족, 조국에 관한 딜레마를 다룬다면 전상두는 그를 더 큰 딜레마로 짓누르는 하나의 상징”이라고 설명한 그는 “강력한 이미지를 가진 (실존 모델이 있는) 인물을 극중 한정된 분량으로 표현하기에 저 자신이 역부족이었다. 작품을 하면서 감독님, 동료 배우들과 인물을 찾아갔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 제작 몰랐죠, 전상두에 집중"
비교 대상이 많다는 것도 부담 될 만한 지점이다. 역대 한국영화로 보면, 강풀 만화 원작의 ‘26년’(2012)에선 5‧18광주민주화운동을 유혈 진압한 ‘그 사람’(장광)이 있었다. ‘남산의 부장들’(2020)에선 10‧26 직후 대통령 집무실에서 금고 속 금괴‧현금을 훔쳐나오는 대통령 심복 전두혁(서현우)이 다소 코믹하게 그려졌다.
90년대 지상파 드라마에서 이 배역을 휩쓴 탤런트 박용식은 바로 그 닮은 외모 탓에 80년대 신군부 쿠데타 집권 직후 1년 가까이 방송 출연을 못 했다는 비화도 유명하다. ‘행복의 나라’ 캐스팅도 쉽지 않았다. 추 감독은 “지명도 없는 배우를 쓰면 힘이 없어지는 배역인데, 전두환을 하겠다는 배우가 많지 않았다”고 같은 날 인터뷰에서 털어놨다.
"악마화·단선적 평가보다 시대 자체 표현"
유재명은 왜 거절했던 전상두에게 돌아왔을까. 그는 “영화 ‘킹메이커’(2022)에서 김영삼 전 대통령(을 모델로 한 인물)도 연기했는데, 실존 인물은 그에 대한 선입견이 있어 부담이 없다면 거짓말”이라면서도 “맥락에 맞는 연기를 찾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이 제작 중인 걸 알았으면 더 혼란스러웠을 텐데, 몰랐기 때문에 전상두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면서다.
“추 감독에게 캐릭터를 같이 만들어가 달라고 솔직하게 부탁했다”고도 했다. OK컷도 다른 버전으로 연기하길 반복했다. 영화에 10분 가량 나오는 전상두의 골프장 장면은 사흘간 찍었다. “사람을 가만히 바라보는 눈, 삐딱한 고개, 국민을 개ㆍ돼지로 아는 세력들의 오만한 신념에 집중했다”고 유재명은 말했다.
“연극 할 때 원효대사도 한 적 있어서 삭발은 문제도 아니었다”며 “내 연기를 폭발적으로 드러내기보다 작품 전체 구조에서 어떤 걸 보여줘야 할지 배운 작품이었다”고 돌아봤다. “저라고 왜 정인후처럼 고함치고 싶지 않았겠습니까. 하지만, 전상두란 캐릭터는 적극적으로 표현할수록 지는 싸움 같았습니다. 감독님도 ‘악마화한 나쁜 놈’이라는 단선적 평가보다 그 시대 자체를 표현하길 요구했죠.”
1997년 연극 ‘서툰 사람들’로 데뷔해 연극은 150편, 영화·드라마는 조·단역까지 100여편에 출연한 그에게도 '행복의 나라'는 새삼 "공부하듯 연기한" 녹록지 않은 작품이었다.
조두순 연상 '노 웨이 아웃', "잃을 이미지 없죠, 최선 다해"
무대 연기로 출발한 유재명은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2015~2016)에서 “츄리닝 입고 엉덩춤을 추고 고스톱 치는 ‘학주’(학생주임)” 캐릭터로 급부상했다. 악역 계보의 대표작은 JTBC ‘이태원 클라쓰’(2020). 주인공 박새로이 아버지 역할이 들어온 걸 거절했다가, 뇌리에 남은 장가 회장 역을 제작진에 역제안 하며 ‘국민 욕받이’ 캐릭터를 탄생시켰다.
“장가 회장을 악인으로 생각하지 않고 연기한 게 신의 한 수였다”고 돌아본 유재명은 최근 디즈니+ 방영 중인 드라마 ‘노 웨이 아웃’에서 흉악범 조두순을 연상시키는 ‘김국호’ 역으로 돌아왔다. “온라인 댓글은 안 보는데, 동네 이웃마저 ‘너무 심한 악역을 하셨다’고 안타까워하더라”고 웃은 유재명은 “성범죄자를 연기한다고 저한테 잃어버릴 이미지도 없고 작품의 매력이 중요했다. 최선을 다해 악함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서울의 봄' '남산의 부장들'과 차별점은…
" “'서울의 봄'이 사건의 연대기, 강력한 호흡으로 시대를 정면 조망했다면 '남산의 부장들'은 인물들의 야욕과 관계의 카오스를 표현했죠. '행복의 나라'는 빛의 사각지대에 있었던 한 개인을 통해 어떤 시대의 야만성, 인간의 근본 가치가 아무렇지 않게 짓밟히는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마치 세 작품이 같은 세계관에 있는 듯한데 각 작품의 해석과 재미를 느끼시면서 그 시대를 조망하는 계기가 되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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