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어때]스마트폰이 충전되면 아이의 뇌는 방전된다
놀이기반 성장하던 아이들…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 변화
자녀에 대한 과잉보호 의식…불안은 부모로부터 시작돼
‘웨이트 언틸 에이스(Wait Until 8th)’는 8학년(한국의 중학교 2학년)까지 자녀에게 스마트폰을 주지 않겠다고 서약한 미국 부모들의 모임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이 어린 자녀들에게 해악이라고 생각한다. ‘불안 세대(원제: The Anxious Generation)’의 저자 조너선 하이트 뉴욕대학교 스턴경영대학원 교수는 8학년도 이르다고 주장한다. 세계적 사회심리학자인 하이트 교수는 모임의 명칭을 ‘웨이트 언틸 나인스(Wait Until 9th)’, 즉 ‘9학년까지 기다리자’로 바꿔야 한다고 제안한다. 한국의 학제에 적용하면 적어도 자녀들이 고등학교에 입학한 뒤에 스마트폰을 쥐여주자는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준 뒤에도 2년 정도 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사용하지 못하도록 제약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이트 교수는 ‘불안 세대’에서 스마트폰과 SNS가 10대 청소년들에게 얼마나 정서적으로 나쁜 영향을 끼치는지 그 해악을 증명하고 정부, 학교, 부모 그리고 빅테크(대형 정보기술 기업)들이 청소년들의 올바른 정서 함양을 위해 함께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지 제안한다.
하이트 교수는 1996년 이후에 태어난 이른바 Z세대를 불안 세대라 칭한다. 불안의 원인은 스마트폰이다. 스마트폰은 10대 청소년들을 사회로부터 유리시켜 통과의례로 배워야 할 사회 규범들을 익힐 시간을 빼앗고 수면 시간을 줄여 정서적으로 예민하고 불안하며 나약한 존재로 성장하게 만든다. 일부 사회학자들은 2010년 무렵부터 태어난 아이들을 알파세대라 칭하며 Z세대와 구분한다. 하지만 하이트 교수는 2010년 이후 태어난 아이들도 스마트폰과 SNS의 해악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에 구분의 의미가 없다고 지적한다.
연구에 따르면 SNS의 사용이 가장 나쁜 영향을 끼치는 나이가 여자아이의 경우 11~13세, 남자아이는 14~15세인 것으로 확인됐다. 공교롭게도 Z세대가 딱 이 나이였을 무렵 스마트폰 업계에서는 큰 혁신이 일어났다. 2010년은 스마트폰에 전면 카메라 기능이 도입된 해다. 이 해 6월에 전면 카메라 기능이 장착된 최초의 아이폰인 아이폰4가 출시됐다. 삼성전자도 같은 달에 전면 카메라 기능을 탑재한 갤럭시S를 출시했다. 스마트폰 이용자들이 간단하게 사진과 영상을 찍어 스마트폰으로 소통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이다. 공교롭게도 인스타그램이 첫 서비스를 시작한 해가 2010년이었다. 이에 앞서 2009년 페이스북은 ‘좋아요’ 버튼을, 트위터는 ‘리트윗’ 버튼을 도입했다. 이는 특정 게시물이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는지, 다시 말해 게시물의 성공을 계량화했다. 바이럴 콘텐츠의 확산이 가능한 여건이 조성된 상황에서 사람들은 성공한 게시물을 만들기 위해 극단적이고, 한층 더 심한 분노와 혐오를 담은 표현을 사용했다. 페이스북은 알고리즘을 활용해 큐레이션한 뉴스 피드를 사용하기 시작했고 다른 플랫폼들도 콘텐츠를 큐레이션하는 경쟁에 뛰어들었다.
하이트 교수는 이러한 기술 환경의 변화를 배경으로 2010년 ‘아동기 대재편(Great Rewriting of Childhood)’이 시작됐다고 강조한다. 인류는 오랫동안 현실 세계의 소규모 공동체 속에서 상호 작용하며 진화했는데 Z세대는 스마트폰이 만든 가상의 세계에서 기성 세대와 전혀 다르게 성장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놀이 기반 아동기’에서 ‘스마트폰 기반 아동기’로의 전환을 하이트 교수는 ‘아동기 대재편’이라고 칭한다.
아동기 대재편의 원인은 단지 기술의 변화 때문만은 아니다. 하이트 교수는 1980년대부터 1990년대에 일어난 사회·경제·기술적 변화 탓에 1980년대부터 자녀에 대한 불안과 과잉보호 의식에 사로잡힌 부모가 등장했다고 지적한다. 케이블TV의 확산으로 부모를 불안하게 만드는 뉴스가 24시간 내내 방송됐고, 일하는 여성이 증가하면서 어린이집과 방과 후 프로그램이 늘고, 양육 전문가들의 영향력도 커졌는데 양육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 없이 부모들의 불안감을 증폭시켰다고 지적한다. 현실 세계에서 불안감이 커진 부모들은 자녀들을 집안에 붙들어둘 수 있는 스마트폰의 해악을 인지하지 못했다. 이에 따라 스마트폰 덕분에 아이들은 안전하다고 부모들은 믿었다. 결론적으로 하이트 교수는 Z세대의 불안은 현실 세계의 과잉보호와 가상 세계의 과소 보호가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라고 꼬집는다.
하이트 교수는 2010~2015년 사이에 10대 청소년들의 우울증과 불안감이 크게 높아졌음을 미국, 영국, 캐나다 등 여러 국가의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도표를 제시하며 증명한다. 또한 2010~2015년 불과 5년 동안에 청소년의 사회적 패턴과 롤 모델, 감정, 신체 활동, 심지어 수면 패턴까지 근본적으로 확 바뀌었다며 2013년 아이폰을 가진 13세 아이의 일상생활과 의식, 사회적 관계는 2007년에 플립폰을 가졌던 13세의 아이의 그것과 너무나도 달랐다고 설명한다.
하이트 교수는 10대 청소년들이 더 이상 불안해지지 않도록 당장 청소년들을 스마트폰과 SNS로부터 격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모두 12장으로 이뤄진 이 책의 마지막 4장에서 정부, 학교, 기업, 가정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조언한다. 그는 당장 모든 SNS 회사가 사용자의 나이 확인을 의무화하는 법을 만들고, 청소년들이 학교에 있는 동안 휴대폰을 로커에 넣어 보관하게 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불안세대 | 조너선 하이트 지음 | 이충호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528쪽 | 2만4800원
박병희 기자 nut@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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