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경기도청은 왜 광화문에 있었을까
현재 우리가 발을 딛고 살며,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지명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그 범위는 서울이 중심이 될 것이며 또 서울의 해당 지명에 조응하는 전국의 지명들을 함께 비교 검토할 것이다. 단순히 지명 유래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일어났던 역사적 사건 등을 함께 이야기 하며 그 곳에서 벌어진 우리의 역사를 상상할 수 있는 단초를 제공하고자 한다. <한양도성 걸어서 한바퀴>, <서촌을 걷는다> 등 서울의 도시 탐방에 관한 책을 쓴 바 있다. <기자말>
[유영호 기자]
▲ 법정동으로서의 종로구 '세종로' |
ⓒ 유영호 |
참고로 일제강점기 '세종로 1번지'는 조선총독부가 위치한 곳이었으며, 해방 후에는 그 공간을 차지한 중앙청이 이어받았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1번지는 청와대로 바뀌었고, 또 1995년 옛 총독부건물조차 철거했지만 세종로 1번지는 경복궁에게 돌아간 것이 아니라 여전히 청와대 자리에 부여되어 지금껏 이어지고 있다.
▲ 1968년 주민등록번호를 최초로 도입할 당시 주민번호의 기입체계, 당시에는 앞번호 6자리가 생년월일이 아니라 거주지역을 표시했다. |
ⓒ 유영호 |
'세종'과 관련된 전국 지명들.
▷ 경기도 여주군 세종대왕면 : 세종대왕을 모신 영릉의 서쪽에 위치한다 하여 본래 능서면(陵西面)이라 하던 것을 2021년 12월 세종대왕면으로 개칭하였다.
▷ 세종특별자치시 세종동 : 인구가 증가하면서 2023년 3월 새롬동에서 분리 신설되었으며, 세종시이기에 세종동이라 작명 되었을 뿐 세종대왕과 특별한 인연은 알려진 바 없다.
▲ 시대별로 본 종로구 세종로의 변천과정 |
ⓒ 유영호 |
▷ 기로소(耆老所)
쉬운 말로 표현하면 나이 먹어(51세) 퇴임한 고위관료들을 위한 국립경로당에 해당한다. 뿐만 아니라 1765년(영조41)부터 국왕도 참여하면서 관부서열 1위로 법제화되었다.
▲ 1902년 고종이 왕이 된지 40년을 기념하여 제작된 ‘서울 고종 어극 40년 칭경기념비’가 모셔진 '기념비전' '도로원표'도 1935년 이곳에 옮겨져 있다. |
ⓒ 유영호 |
유교사회에서는 건축물도 각 기능과 역할에 따라 건물명칭 뒤에 전당합각제헌루정(殿堂閤閣齋軒樓亭) 가운데 한 글자를 따서 붙이는데 그 중 '전(殿)'은 임금이나 왕비와 관련된 건물에 붙는 명칭이다. 한편 1902년은 고종 역시 51세가 되어 '기로소'에 들어가게 된 것도 함께 기념하고 있다.
▷ 도로원표(道路元標)
▲ 도로원표에 대한 남북 각각의 모습. 사진 속 평양의 '나라길시작점' 바로 위가 김일성광장의 주석단이며, 서울의 도로원표는 현재 광화문네거리 세종로파출소 앞에 설치되어 있다. |
ⓒ 유영호 |
▲ 1930년대 경기도청의 모습|서울역사박물관 제공, 일본지리풍속대계-조선편, 신광사, 1930 |
ⓒ 서울역사박물관 |
그후 갑오개혁을 거치며 1896년 경기도 수원으로 이전했다가 14년 뒤 서울로, 그것도 가장 핵심인 경복궁 바로 앞으로 온 것이다. 그리고 해방이 되자 1946년 서울은 서울특별시가 되고 경기도와 분리되었지만 경기도청은 계속 광화문에 위치하였다가 1967년 6월에야 경기도 수원으로 이전하였다.
▷ 경성법학전문대학
1895년 최초의 국립법학교육기관으로 '법관양성소'란 이름으로 설립되었으며, 1903년 위 그림 속에 위치한 광화문 육조거리 가운데 호조 건물로 이전하였다. 경술국치 후 여러 번화를 겪다 1922년 관립 경성법학전문학교로 승격되면서 3년제 전문학교로 개교하였고, 1937년 청량리로 이전하였다. 해방 후에는 미군정의 국립 서울대학교 설립안(국대안)에 따라 6년 과정의 경성제국대학 법문학부와 함께 지금의 서울대 법대를 이루게 되었다.
▲ 1972년 12월 3일자 한국일보. 이렇게 전소된 서울시민회관 자리에 지금의 세종문화회관이 건설된 것이다. |
ⓒ 한국일보 |
▲ 1962년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무식에서 연설하는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의 모습. 당시 최고회의가 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 입주해 있었다. |
ⓒ 대통령기록관 |
그 후 이 건물은 경제기획원, 재무부 등 여러 행정기관들이 사용하였고, 맨 마지막 사용한 주체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유인촌)가 사용했으며, 해당 장관들이 박정희의 방을 이어받아 사용했다.
Copyright ©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단독] 한동훈 공격 '70억 여론조사'...실제 지출 내역 따져보니
- "가자 지구 360일은 360년... FREE 팔레스타인"
- 초등학생의 문화유산 해설... 사투리에 무릎을 쳤다
- "물건이 없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와 싸우는 마지막 해녀들
- 과음으로 독일 국민에게 못 볼 꼴... 이번엔 혼돈의 도가니
- "최대 피해자는 재판받는 국민" 이탄희 말 되새기는 이유
- '더 나은 제목' 고민한다면, 분명 도움 될 겁니다
- 문상철 결승 투런포... kt, 준PO 1차전에서 LG 꺾고 첫 승 선점
- 바이든 "이스라엘, 이란 유전 공습 말고 대안 찾아야"
- "KBS 풀어주고 이재명 쪽으로" 위증교사 마지막 재판의 녹음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