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측 불허 음악가가 건네는 일리노이주 안내서
[염동교 기자]
2017년 영화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에 실린 'Mystery of Love'로 인해 종종 신진 음악가로 오인하나 미시간주 디트로이트 출신 수프얀 스티븐스의 경력은 사반세기전 2000년 데뷔작 < A Sun Came >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 2005년 작 < Illinois > |
ⓒ 벅스뮤직 |
일리노이주 대표도시 시카고를 다룬 타이틀 곡 'Chicago'는 < Illinoise >의 요약본과도 같다. 웅장한 관현악 도입부로 바로크 팝의 기법을 활용한 이 곡은 블링블링한 키보드 리프와 배경으로 깔리는 코러스가 사랑스럽다. 디트로이트 출신인 그가 대도시 시카고에서 경험한 다채로운 영적 그리고 예술적 경험을 담은 이 곡은 그의 삶과 예술의 살갗을 가장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멀티트랙 기법 여과없이 발휘
< Michigan >처럼 < Illionoise >도 구성미가 특출나다. 수프얀 스티븐스의 장기이자 여러 가지 음향 소스를 중첩해 혼자서도 밴드와 같은 풍성한 음향을 연출하는 멀티트랙(Multitrack) 기법을 여과 없이 발휘했다. 컨트리풍 기타에 소편성 관현악을 도입한 'Jacksonville'이 팝과 락에 오케스트라 적 특성을 부여한 챔버 팝의 전형을 보여주고, 목가적 분위기의 'Casimir Pulaski Day'도 곡 구조적 다층성을 확보했다.
최근 신보 < 김수철 45주년 기념 앨범 너는 어디에 >를 발매한 김수철이나 Produced, Arranged, Composed and Performed by Prince (프린스가 프로듀스와 작·편곡, 연주했습니다)라는 크레디트 문구로 유명한 프린스처럼 음악적 전권을 표출하고 있다.
모든 일을 수프얀 홀로 해낸 건 아니다. 도전적 프로젝트의 성취에는 많은 조력자가 있었다. 뉴욕시의 클래시컬 뮤직 앙상블 와이뮤직(yMusic)의 설립자이자 멀티 인스트루멘털리스트 롭 무스가 'Chicago'와 재즈가 스며든 일렉트로니카 미니멀리즘 'They are night zombies! They are neighbors!'의 편곡에 큰 비중을 차지했다. 무스는 "수프얀은 진지하고 호기심 넘쳤으며, 통제력이 있었지만, 때론 무계획적이었다"라며 음악만큼이나 다변적인 성향을 회고했다. 드러머 제임스 맥알리스터는 "수프얀이 선명한 계획을 제시하지 않았기에 음악적으로 매우 도전적인 녹음 과정이었다"라며 무스의 증언을 떠받쳤다.
2000년대 중반을 대표하는 컨셉트 앨범의 독보적 서사는 앨라니스 모리셋의 1995년 메가 히트작 < Jagged Little Pill >이나 스무 돌을 맞은 팝펑크 대들보 그린데이의 < American Idiot >(2004)처럼 뮤지컬 제작으로 이어졌다. 2023년 저스틴 펙과 재키 시블리스 드루리가 연출한 뮤지컬 < Illinoise >는 전문가들의 우호적 평과 더불어 브로드웨이에 진출하는 데 성공했고, 토니상 4개 부문 후보, 1개 수상의 영광을 안았다. 원작 음반의 웅대한 상상력과 재능 넘치는 안무가 저스틴 펙의 시각적 표현력이 조화한 이 작품은 무대본과 무언(無言)으로 화제 모았다. 대신 따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의 싱어들이 < Illinoise > 트랙들을 소화했다.
수프얀 스티븐스는 2023년 10월 열 번째 스튜디오 앨범 < Javelin >을 내놓았다. 특유의 개인주의적이고 내밀한 사운드를 담은 이 작품이 젊음과 연륜이 교차하는 마흔아홉 나이 포크 뮤직 작가의 독자성을 입증했다.
고전적인 악기 질료와 풍성한 소리 층위로 시공간을 넘나드는 사운드스케이프는 전위성을 부각하는 퍼퓸 지니어스와 전자음악에 비중을 둔 제임스 블레이크처럼 대중음악과 작가주의의 동시 포획이다. 내년 2025년에 20주년을 맞는 < Illinoise >는 이 예측 불가 예술가가 건네는 사랑스러운 슈도(pseudo) 역사서이자 오디오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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