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지속가능한 에너지 정책이 필요하다
원전 수출 국가 신뢰도와 밀접
정권따라 바뀌는 정책 성찰을
지난달 17일 오랜만에 국가적인 경사가 들려왔다. 체코 신규 원전건설 우선협상 대상자로 우리나라의 한국수력원자력이 선정됐다는 것이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 이후 15년 동안 원전 수출에 목말라했던 우리에게 그야말로 가뭄에 단비가 내리는 순간이었다.
우선협상대상자 선정에 대해 발표하며 정부는 "원전사업은 세대를 건너뛰는 것"이라고 말했다. 체코의 경우 2016년 입찰예비문서 제출, 2022년 본격 입찰 개시를 거쳐 1호기 상업운전이 2036년이니 약 20년의 시간 동안 소통해 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의 에너지정책이 정권에 따라 손바닥 뒤집듯 엎어지는 것에 발주국은 물론 글로벌 원전 시장에서 우려가 있었다. 정부는 이번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과정에서 이 부분에 대한 체코의 이해를 돕고자 큰 노력을 기울였다고 한다.
유럽연합(EU)의 기후·에너지 정책을 살펴보면, 재생에너지 확대와 온실가스 배출 감축이라는 변하지 않는 큰 틀을 갖추고 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세부 에너지 믹스(조합) 결정은 각 회원국에 맡겨져 있다. EU는 2008년 2020 기후·에너지 패키지 채택을 통해 탄소중립을 위한 공동 대응을 시작했다. 이 패키지는 2020년까지 1990년 대비 온실가스 배출량 20% 감축, 재생에너지 비중 20% 확대, 에너지 효율 20% 증대를 목표로 하고 있다. 이후 EU는 2014년 EU 2030 기후·에너지 정책 프레임워크 패키지, 2021년 EU 핏 포 55, 2023년 EU 재생에너지 지침 등을 통해 지속해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와 재생에너지 사용 비중 확대 정책을 유지해왔다.
최근에는 EU 내에서 에너지 안보 위기와 재생에너지 기반의 탄소중립 달성에 대한 불안감이 커지면서 원전에 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20년 EU 친환경 녹색분류체계(텍소노미)에서 원자력과 천연가스를 제한적으로 포함한 데 이어, 지난해 EU 재생에너지 지침에서는 원자력을 통한 저탄소 수소 생산을 재생에너지에 포함했다. 이는 재생에너지의 현실적인 제약을 인정하고 탄소중립이라는 공동 목표를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대표적인 탈원전 국가인 이탈리아가 35년 만에 소형모듈원자로(SMR) 도입을 시도하고 있다는 보도는 이러한 변화를 잘 보여준다.
EU의 탈원전과 친원전 국가 간 내부 갈등은 여전하지만, EU의 에너지 정책과 탈원전과 친원전 국가의 변화를 자세히 분석한다면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 수립에 중요한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
우리나라 에너지 정책은 최근 급격한 변화를 겪었으며, 그 과정에서 사회적 갈등과 비용을 초래했다. 이제는 EU 회원국들의 경험을 토대로 탈원전과 친원전을 결정하는 이분법적 사고에서 벗어나 우리나라의 자연적·지리적 제약조건 및 기술적 조건을 고려한 일관된 정책 방향을 고민해야 한다. 급격한 에너지 정책 변화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사회적 갈등을 줄이기 위한 장기적이고 통합된 에너지 정책 수립에 대한 논의가 절실하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중립은 피할 수 없는 과제다. 에너지는 안보 차원에서 논의되고 있으며 국가경쟁력을 좌우하는 중요한 이슈다. 따라서 정권 변화와 관계없이 탄소중립 달성이라는 목표하에 장기적이고 안정적인 에너지 수급이 이뤄질 수 있도록 큰 틀의 정책 일관성을 유지해야 하며, 기술 혁신에 따른 정책의 유연성도 발휘해야 한다.
이번 체코의 사례에서 볼 수 있듯 우리의 에너지정책은 수출, 나아가 국가의 신뢰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 흔들림 없는 정책이 상대 국가로 하여금 세대를 뛰어넘어 협력할 수 있다는 믿음을 줄 것이다. 이제는 그간 일관되지 않은 정책에 대한 성찰과 주요국의 교훈을 바탕으로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최종민 계명대 행정학과 교수
세종=주상돈 기자 don@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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