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상공인에 대한 선제적 채무 재조정이 시급하다

2024. 8. 9. 0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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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우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전 국회의원)
개인채무자보호법 제정·시행의 의미
채무자보호법에 따른 연체채권 관리체계의 변화. (금융위원회 제공)
최근 몇 년간 은행의 대출 취급액이 급격히 증가했다. 이에 따라 은행 순이익도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 국내 은행 이자 순이익은 34조원을 돌파했다. 2010년 이후 금리 상승기에 기록한 최대 규모다. 특히 가계대출이 늘어난 영향이 크다. 저금리 시대 코로나19 지원 금융 정책으로 자영업자 대출은 급격히 불어났다.

예상보다 길어진 고금리 장기화로 이자 부담이 높아지고 만기가 점차 다가오자, 은행권은 지난해 19조원 규모 코로나19 관련 정책금융자금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를 취했다. 중소기업·소상공인 만기 연장 대출 잔액 71조원과 원리금 상환 유예 5조2000억원 규모다. 코로나19 정책자금은 2020년부터 6차례에 걸쳐 만기가 연장됐다. 지난해 금융당국이 더 이상 만기 연장은 없다고 발표했지만, 어려운 자영업자 상황을 감안할 때 만기 연장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이 같은 만기 연장과 원리금 상환 유예 조치는 일시적 미봉책에 불과하다. 대출금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언젠가는 갚아야 하는 상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제는 국가가 나서 개인에 대한 채무 재조정을 적극적으로 고려해야 할 시점이다. 코로나19 정책지원 자금을 대출받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해 선제적 조치가 시급하다. 이는 우리 경제의 잠재적 위험을 대비하는 민생 경제대책이다.

물론 채무 재조정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반대 논리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는 성실히 원금과 이자를 납부한 사람이 오히려 역차별을 받게 돼 금융 질서를 해친다는 지적이다. 둘째는 은행이 배임죄로 형사 처벌될 수 있다는 우려다. 셋째는 은행이 순이익 조정으로 과세당국의 가산세 추징 대상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 반대 논리는 오는 10월부터 시행되는 ‘개인 금융채권의 관리 및 개인 금융채무자의 보호에 관한 법률(이하 개인채무자보호법)’이 통과되며 힘을 잃었다. 개인채무자보호법 통과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선제적 채무 재조정을 더욱 강력히 추진할 수 있게 됐다.

개인채무자보호법 통과는 몇 가지 측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첫째, 기업에 적용되는 사전적 채무 재조정 절차를 개인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데 의미가 있다. 경제위기 때마다 기업 구조조정이 진행된다. 이때 선제적인 조치가 바로 기업 재무 구조 개선 작업이다. 기업의 부채 부담 경감이 이 조치의 핵심이다. 대표적으로 금융기관이 대출채권을 주식으로 전환해 이자 부담을 경감하거나 부채 만기를 연장하고, 부채의 일부를 경감하는 조치가 있다. 반면 개인대출은 이런 과정이 없다. 개인 회생 절차는 이미 부실이 발생한 경우에만 인정되는 사후적인 조치다.

지난해 12월 본회의를 통과한 개인채무자보호법은 기업의 선제적 재무 구조 조정 절차를 개인에게도 적용할 수 있도록 한 법률이다. 개인채무자보호법에서는 채무자가 조만간 부실 발생 가능성이 있을 때, 은행 등 채권금융기관에 채무 재조정을 요구할 수 있다는 내용이 포함된다. 이는 미국 등 선진국에서 인정되는 채무자의 기본 권리다. 은행은 개인의 신용도 변화를 평가해 조정 여부를 결정한다. 금융당국의 개입 없이 은행의 자율적 판단에 의해 진행된다.

다만 이 조치는 도덕적 해이를 초래해 건전한 금융 질서를 해친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부채 탕감이 가능하고, 그 요청권이 채무자의 기본 권리라면 그것을 악용해 금융의 기본 질서가 작동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는 타당한 지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개인 회생 관련 법규에서 개인 회생 제도를 악용해 의도적으로 관련 자료를 은폐하거나 허위로 제출할 경우, 민·형사적 처벌과 함께 회생 자체를 중단하게 돼 있다. 따라서 도덕적 해이를 줄이기 위해서는 이런 조항을 더욱 강화해 제도 악용을 방지하는 보완책을 만들면 된다.

둘째, 개인채무자보호법이 통과되면서 은행 임직원의 배임으로 인한 형사 처벌 위험도 사라졌다. 채권금융기관이 선제적으로 자율적 채무 재조정을 할 경우, 이를 실시한 은행 임직원이 배임으로 형사 처벌 받을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문제는 금융감독원의 ‘대손충당금 적립 및 상각’ 규정에 선제적 채무재조정을 반영한 조항을 만들면 해결된다. 채권금융기관이 이사회를 통해 선제적 채무 재조정 과정과 요건을 만든다면, 배임 처벌 위험은 깨끗이 제거된다. 최근 금융위원회가 채권금융기관과 회의를 통해 시행령 마련과 각 금융사의 규정 정비를 점검한 이유다.

셋째, 개인채무자보호법 통과로 선제적 채무 재조정을 실시한 은행이 과세당국의 가산세 추징 대상이 아니라는 점이 명확해졌다. 과세당국 입장에서는 은행이 법인세를 줄이기 위해 인위적으로 이익 조정 행위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감독당국의 ‘대손충당금 적립 및 상각 규정’에 따라 이뤄진 조치라는 점에서 이를 이익조정행위로 보지 않는다. 개인채무자보호법 통과로 법적 근거가 마련된 셈이다.

선제적 채무 재조정은 거시경제 측면에서 갖는 의미도 크다. 가계부채 자체를 축소시키는 정책이라는 점에서다. 원리금 상환 유예, 만기 연장 등 현재 정부 정책은 부채 자체를 줄이지 못한다. 돈을 빌린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의 경영 상황이 개선되길 기대하는 일종의 ‘기우제’ 같은 정책이다. 이자 부담이 큰 글로벌 고금리 상황에서 소상공인과 자영업자 상황이 개선되길 기대하기는 어렵다. 이들의 부채 부담 자체를 줄여야 경영이 개선되고 경제의 활력을 가져올 수 있다.

금융위기와 경제위기는 늘 은행이 실제 평가한 자산과 재무상태표에 기록된 자산 가치의 괴리가 클 때 발생한다. 이 괴리를 알아야 위기에 맞는 정책으로 대비할 수 있다. 지금까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 대한 정책적 대출은 여섯 차례나 만기 연장이 됐다. 하지만 은행은 신용도 변화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해 자체 리스크에 대한 대응 능력을 떨어뜨리고 있다. 선제적 채무 재조정이 활성화되면 은행은 채무 재조정을 요구한 고객의 신용 상황을 재평가하고 어떤 수단을 사용해 채무 재조정을 할지 결정한다. 그 결과 은행이 갖고 있는 리스크를 스스로 파악하고 대응할 방안을 강구하는 효과를 일으킬 것이다.

개인채무자보호법은 10월 시행을 앞두고 있다. 신용 상황이 악화된 자영업자와 소상공인 등 개인채무자의 채무 조정권을 인정하고, 채무자의 도덕적 해이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한 규정 준비가 필요하다. 물론 적용 대상은 시행 후 새롭게 체결된 대출 계약이다.

부실화한 기업대출은 법원 회생 절차 전 워크아웃을 통해 출자 전환이나 만기 연장 등 금융기관이 적극적으로 지원한다. 하지만 개인대출에 대해서는 인색하다. 이 같은 관행을 바꿀 필요가 있다. 한계에 이른 자영업자가 신용 불량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경제 활동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민생 정책으로 선제적 채무 재조정을 시급히 고려할 시기다.

1964년생/ 서울대 경제학 학·석·박사/ 한국투자신탁운용 전무/ 한국투자금융지주 전무/ 카카오뱅크 대표/ 21대 국회의원/ 경제더하기연구소 대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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