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사-여행업계 책임공방 번진 티메프 사태…소비자 손실분담론도[Why&Next]
'티메프'(티몬·위메프) 정산금 지연 사태 발발 이후 일반상품에 대한 환불 절차는 속도가 붙고 있는 가운데, 여행·상품권 환불 이슈는 업계 간 공방으로까지 번지며 해결에 난항을 겪고 있다. 단순히 소비자 보호라는 명분으로 티메프가 아닌 민간기업에 부담을 지우는 건 부당하다는 지적도 제기되면서, 불가피하게 소비자들도 일정 부분 손실을 부담해야 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9일 금융권에 따르면 티메프 소비자들의 결제취소·환불을 처리 중인 카드·PG(결제대행업체)사들은 지난달 23일 이후 이달 6일까지 총 3만여건·40억원 규모를 소비자에게 환불했지만, 여행상품과 상품권은 대부분 절차가 보류 중이다. 정부는 지난 7일 경제관계장관회의를 통해 관계부처 합동으로 여행상품과 상품권에 대해 업계들과의 협조로 환불 절차 혹은 정상 사용을 지원하겠다는 대응 방안을 내놨으나 아직 방식은 불투명한 상황이다.
여행업계 vs PG업계, 책임 공방 격화
티몬·위메프에서 결제한 여행 관련 상품 환불에 대해서는 한국소비자원이 9일 오후 11시59분까지 집단분쟁조정 신청자 모집을 받고 있다. 소비자원에 따르면 이날 오전 9시 기준 신청 건수는 7687건으로 집계됐다. 집단분쟁조정 제도는 다수의 소비자에게 같거나 비슷한 유형의 피해가 발생한 경우 일괄적으로 분쟁을 해결하는 제도로, 이번 사태의 규모와 심각성을 고려할 때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아울러 정부는 최근 관계부처 합동으로 내놓은 대응 방안에서 카드사·PG사·발행사·여행사와 협조해 환불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으나, 이는 각 업계에 상당한 부담이 되기 때문에 업계 간 갈등으로까지 번지고 있다. 이미 환불금 부담을 둘러싸고 PG사들과 한국여행업협회가 각각 입장을 공표하는 등 공방이 이어졌다. 여행업협회는 지난 6일 입장문을 통해 "여행사는 여행상품 판매대금을 전혀 수수하지 못한 상황에서 여행계약 이행 책임만 떠안고 있다"며 "여행사에서 피해액 규모가 커지는 사항을 알면서도 계약이행 강행 또는 취소환불 책임부담을 하는 사항은 배임행위에 해당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한 여행사 관계자는 "오죽하면 협회에서 입장문을 냈을까 싶다"며 "일차적으로 결제 취소에 대한 건 PG사들의 문제인데, PG사들이 점점 더 목소리를 키우며 여행업계에 책임을 전가하려고 하니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한 "얼마 전 문화체육관광부와 공정거래위원회가 여행사들과 열었던 간담회에서도 국장급 관계자들이 여행업계 피해 현황과 구조적 문제를 듣고 '다른 부처들과 협의해 지원할 수 있도록 노력해보겠다'고 하고 갔다"며 여행사들도 피해자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에 이튿날 KG이니시스, KG모빌리언스, NHN KCP 등 PG업체들은 공동으로 보도자료를 내고 "여행사들이 PG사의 결제 취소에 편승해 손해를 전가하려는 행위를 지속한다면 법적 조치를 준비하겠다"며 경고했다. 더불어 이들은 “일부 여행사가 손실 부담을 회피하기 위해 소비자에게 결제 취소 후 재결제를 유도하고 있다”며 “전자상거래법의 서비스 이행 의무를 위반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여행사들은 재결제 유도가 아니라 소비자들의 예약 전환을 도운 거라고 설명하고 있다.
손실 분담에 관련해 손사래를 치고 있는 건 카드사도 마찬가지다. 한 카드사 관계자는 "여신전문금융업법상 하위 가맹점 취소에 응해야 할 곳은 PG사고, 카드사는 PG사 승인 없이는 직권취소가 불가하다"며 "받아야 할 돈을 받지 않으면 주주 이익에 반하는 것이기 때문에 배임 이슈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렇게 업계 간 공방으로 이어지다 보니 정부 차원에서도 아직 어떤 방식으로 협조를 할지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부와 업계는 한국소비자원의 집단분쟁조정 결과를 기다리고 있으나, 통상 반년가량 걸리는 절차인 데다 법적인 구속력이 없어 실효성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고 있다.
상품권 환불 '산 넘어 산'그나마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앞둔 여행상품과 달리 상품권 환불은 좀 더 지연될 전망이다. 현재 상품권을 규제하는 법이 없는 상황에서 이를 실질적으로 중재할 주무부처마저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티몬과 위메프가 대표적으로 팔았던 해피머니의 경우, 발행사인 해피머니아이엔씨는 자본잠식 상태인 데다 정산대금을 받지 못해 도산 위기에 놓여 있어 자체 보상 가능성 자체가 없다시피 하다.
일각에서는 상품권의 핀(PIN)번호 발송 여부에 따라 환불 대상 여부가 달라진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이는 상품권의 특성상 구매 후 즉시 사용이 가능한 핀번호가 발송되면, 이를 실제 사용했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비롯된 것이다. 한 PG사 관계자는 "상품권은 고객이 받았는지, 받았다면 썼는지 PG사가 알 수 없다"며 "이런 경우엔 티메프에 구상권을 청구해도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 환불을 보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는 상품권 환불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정 거래에 대한 우려를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티몬·위메프 피해자 소송을 대리하는 심규덕 변호사(법무법인 심)는 "소비자가 상품권을 환불한 뒤 저장해 둔 핀번호를 사용할 수 있다는 위협이 있기 때문에 티몬·위메프 상품권은 환불 처리가 안 된다는 주장이 나오는데, 지금은 그 핀번호를 사용할 수 있는 곳이 없지 않나"라며 "해피머니처럼 사용처가 막힌 상황이라면 핀번호는 효용이 없고 그렇다면 환불을 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핀번호 수령 이후 환불은 불가능하다는 약관에 동의했어도 어디까지나 핀번호가 효용가치가 있을 때나 통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지용 상명대 경영학과 교수는 현재 상황이 민간 기업들에 부당한 부담을 지우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소비자 보호나 시장 질서 측면에서 누군가 대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취지는 이해하겠지만, 어느 특정 기업에 그 고통을 대신 분담하라고 권유하는 게 과연 맞는지 모르겠다"며 "굳이 한다고 하면 이 사태를 처음부터 막지 못한 정부가 우선 소비자들한테 변상하고 그에 대한 구상권 청구를 티메프에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꼬집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책임을 전적으로 안고 있는 티메프가 환불해줄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원칙적으로 봤을 때는 소비자들도 손실을 분담할 수밖에 없는 구조"이라며 "특히 상품권은 구매 즉시 사용하지 않으면 그 가치가 불확실해질 수 있는데 이러한 리스크를 감수하고 구매한 셈"이라고 말했다.
한국소비자원의 주무부처인 공정위 관계자는 "상품권에 관한 상담 접수 건수도 꽤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일정 수준 이상을 넘어가면 소비자원에서 집단분쟁조정 절차를 고려해 볼 수 있겠다"고 말했다.
박유진 기자 genie@asiae.co.kr
전영주 기자 ang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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