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없는 사람이라고? 감정 기복도 지나치면 병

김병수정신건강의학과 김병수 원장 2024. 8. 9. 07:1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병수의 우울증클리닉
클립아트코리아 제공
평소엔 유쾌하고 사교적인데 사소한 말 하나에 돌변해 분노를 폭발하는 사람들이 있다. 직장 동료들은 그(녀)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별것 아닌 일에 갑자기 짜증을 내. 차마 입에 담기 힘든 폭언을 퍼부은 적도 있어” 그 사람이 도대체 왜 그렇게 화를 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느끼는데 정작 화를 냈던 이는 “나는 뒤끝이 없는 사람이야”라며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려고 한다. 자신은 문제라고 느끼지 않아도 그들의 가족은 다르게 이야기한다. “갑자기 짜증을 냈다가 어느 순간 아무렇지 않다는 듯 친하게 굴어요” 감정이 예측 못하게 변해서 주변 사람들이 종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원래 변덕이 심한 사람, 성격이 예민하고 까칠한 사람’ 정도로 여기기도 한다. ‘성격이 급하고 화를 못 참는다’고 단순하게 여겨 감정 조절을 잘 못 하는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는 사례도 있다. 하지만 감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자신도 모르게 폭언을 내뱉었다가 직장에서 징계를 받거나 가족 간에 불화가 잦아진다. 뇌졸중이나 심근경색같은 질환이 생기지 않도록 혈압을 정상 범위 안에서 관리해야 하는 것처럼 정서 건강도 평소에 잘 돌봐야 한다.

자신의 감정을 관찰하는 습관을 기른다. “지금 내 마음이 ~구나. 기분 상태가 변했구나”하고 알아차리기만 해도 정서 조절이 용이해진다. 예민해졌다고 느끼면 ‘오늘 하루는 스트레스에 예민하게 반응할 수 있으니 조심하자’라고 미리 자신의 언행에 주의를 기울인다. 이럴 땐 스트레스를 이기려 들지 말고 피하는 게 낫다. 무리하지 말고 가능하면 평소보다 일을 줄인다. 껄끄러운 사람과 미팅 약속이 있다면 나중으로 미룬다. 괜한 다툼에 휘말릴 위험이 높기 때문이다.

피로가 풀리도록 쉬어준다. 산책이나 복식호흡처럼 심신을 이완시키는 활동을 한다. 기분을 급격하게 변화시킬 자극은 피한다. 빨리 귀가해서 따뜻한 물로 샤워하고 제때 자면 좋다. 감정 변화를 촉발시키는 술, 담배, 커피는 삼간다.

기분은 마음 먹은대로 변하지 않는다. 그보단 제 시간에 자고 일어나서, 움직이고, 밥 먹고, 사람을 만나 대화를 나누면서 저절로 조율된다. 생활 리듬이 뒤죽박죽이 되면 감정 기복이 병리적으로 바뀔 위험이 커진다. 잦은 해외 출장으로 생체 시계가 교란에 빠지면 감정 조절에 어려움을 겪게 될 수 있다. 시간에 쫓기고, 밤을 새우면 기분이 쉽게 나빠진다.

사회리듬치료(Social Rhythm Therapy)는 우울증과 양극성장애(조울증)의 비약물적 치료 기법이다. 건강한 생활습관이 일상의 루틴으로 정착되게 도와주는 것이 이 치료법의 목표다. 핵심은 규칙적인 생활 리듬을 일정하게 지키는 것이다. 같은 시간에 수면하고 기상한다. 시간에 맞춰 식사하는 습관을 기른다. 수면, 식사, 운동이 규치적으로 반복되면 기분 변동성이 줄어든다.

데일리로그(daily log)를 작성하면 좋다. 기상하고 잠자리에 들 때까지, 일상 활동을 관찰해서 기분과 함께 기록해 보는 것이다. 시간대별로 스트레스 사건, 복용하는 약, (여성의 경우) 생리 주기도 함께 적어오면 기분 변화의 패턴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런 걸 두고 기분일지(mood chart)라고 부른다. 정서 건강에 해가 될만한 것은 최대한 줄이고 건강한 환경에는 더 많이 노출될 수 있도록 일상을 구성하는 근거 자료를 수집하는 것이다. 일상 생활과 기분 변화의 관계를 확인하면 감정이 나빠지는 자극과 심신을 평온하게 조절할 수 있는 생활 습관을 찾을 수 있다. 이런 정보를 기록하는 스마트폰 앱도 많이 나와 있다.

자신을 혹사하지 않아야 한다. 완벽주의적인 성향은 감정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흑백논리, 이분법적인 판단은 분노를 부추긴다. 자신이 옳다고 믿는 것에 집착하는 것도 좋지 않다. 세상에는 다양한 가치관이 존재하고, 사람마다 다 다른 개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도록 노력한다. 유연한 사고 방식을 기르는 것이다. 옳고 그름을 따지기 보다는 ‘현실에서 실제로 도움이 되는 생각과 행동은 무엇인가?’에 초점을 맞추면 좋다. 자신을 자극하는 타인의 언행과 그 사람 자체는 분리해서 생각한다. 

타인의 행동에 대해 “그건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어떻게 나에게 그럴 수 있어!”라고 흥분하거나 ‘그 사람은 나에게 최소한 이 정도로 대우 해줘야 해!’라며 기대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기 마음을 돌아본다. 타인의 일시적인 언행이 내 기분을 망치긴 했지만 ‘그 사람이 나쁜 놈이라서 그런 거야. 나를 괴롭히려고 그런 거야’라는 식으로 생각하는 습관이 있는 건 아닌지 돌아본다. 자기 자신과 타인과의 관계에서 풀어야할 문제는 놔두고 특정 사람을 ‘용서할 수 없는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자신의 분노를 정당화하는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한다. 

감정 기복이 양극성장애 혹은 양극성장애와 관련된 기질 때문일 수도 있다. 중증은 아니지만 ‘경조증’ ‘순환성 기분장애’ ‘양극성 스펙트럼 장애’와 같은 기분 장애로 인해 감정 조절에 문제가 생긴 것일 수도 있다. 감정 조절이 되지 않아 직장 (혹은 학업) 및 대인관계에서 반복적인 문제가 생긴다면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와 상담해보는 게 좋다.

Copyright © 헬스조선.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