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보도의 수준... 대통령님이 믿을까 걱정됩니다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이봉렬 2024. 8. 9. 0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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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공영방송 KBS와 자칭 '1등 신문' < 조선일보>의 오류

[이봉렬 기자]

[기사 수정 : 8월 19일 오전 10시 50분]

<대통령을 위한 반도체 특별과외> 연재를 시작한 지도 벌써 2년이 지났고, 횟수로도 이 글이 서른여덟 번째가 됩니다. 그동안 기사를 쓰면서 대통령님 입장에서 듣기 싫을 만한 이야기도 많이 했지만, 그 모든 게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대해 제대로 이해해서 우리 반도체 산업 관련 정책을 올바로 세워주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반도체에 대한 잘못된 정보를 내놓는 매체들이 있어서 그간 대통령님과 함께해 온 반도체 과외 공부에 찬물을 끼얹고 있습니다. 그런 보도가 공영방송 KBS나 자칭 '1등 신문'이라는< 조선일보> 같은 매체에서 나와 사태가 좀 더 심각합니다. 날이 갈수록 격화되는 국가 간 반도체 경쟁 가운데 대통령님의 눈을 어지럽히는 잘못된 보도는 국익을 위해서라도 바로 잡아야 할 겁니다.

시작하기 전에 지금껏 해 왔던 반도체 특별과외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용어 몇 개를 복습하겠습니다. 웨이퍼(Wafer)는 반도체 집적회로 여러 개를 한 번에 제작하기 위한 실리콘 소재의 원판입니다. 대통령님도 몇 번 만져 봤으니 익숙하죠?

그 웨이퍼 위에 그려져 있는 집적회로 하나하나를 제조 과정에서는 다이(Die)라고 부르고, 그게 완성되어 낱개로 잘라내면 칩(Chip)이라고 부릅니다. 다이와 칩은 따로 구분하지 않고 섞어 쓰기도 합니다. 너무 쉬운 거 아니냐고요? 이것을 간과하고 반도체 관련 기사를 쓰는 기자들이 있어서 제가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겁니다.

실리콘으로 만들던 반도체를 유리기판으로 만들 거라는 KBS
 KBS 2TV 경제콘서트 보도 장면.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반도체 웨이퍼를 들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 KBS 보도화면
지난 7월 8일, KBS2TV <경제콘서트>는 "삼성·SK 반도체 전쟁, '유리 기판'서도 계속"이라는 제목의 리포트를 방영했습니다. 첫 대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자, 이 사진 기억하십니까. 미국 반도체 '부흥'을 외치며 바이든 대통령이 반도체 기판을 들고 흔들던 모습. 이게 벌써 3년 전인데요. 반도체 혁명은 참 끝이 없습니다. 이 기판도 기술 혁명이 코 앞에 와 있다고 합니다. 반도체 기판은 그림으로 치면 스케치북 같은 겁니다. 얇고 평평한 기판 위에 반도체 회로를 그려 넣으면, 작업 시작! 그런데, 이 기판은 뭐로 만들까요. 지금은 실리콘이 대세입니다."

바이든 대통령이 들고 있던 건 반도체 칩 제조의 기본 소재가 되는 웨이퍼이며, 실리콘으로 만든 게 맞습니다. 문제는 진행자의 다음 발언입니다.

"실리콘보다 몇 수 위가 바로 '유리'입니다. 지금 보시는 게 시범 생산 중인 '유리 기판'입니다. 실제 훨씬 투명한 모습이죠? 표면이 매끄러워서 더 미세한 회로를 그릴 수 있고, 무엇보다 전기를 덜 쓰면서 속도는 빠릅니다."

반도체 칩을 만드는 실리콘 웨이퍼 이야기를 하다가 실리콘 보다 더 발전된 소재가 유리라며 느닷없이 '유리기판' 이야기로 건너뛰는 바람에 깜짝 놀랐습니다.

현재 주목 받고 있는 '유리기판'은 기존의 실리콘 소재를 대신해서 반도체 칩을 만드는 데 쓰는 게 아닙니다. 실리콘 웨이퍼로 만든 칩을 그 위에 올려서 다른 칩과 신호를 주고받기 위해 만든 판을 유리로 만든다는 이야기인 거죠.

웨이퍼의 소재는 지금도 실리콘이 대세이며, 실리콘카바이드 같은 혼합물 반도체 소재가 전력반도체 등 특수 목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중입니다.

반면에 반도체 칩 조립을 위한 기판은 에폭시 수지 등 유기화합물 기판을 많이 쓰고, 고성능 칩을 만들 때는 실리콘을 쓰기도 하는데, 이걸 유리로 대체하려고 많은 투자가 이어지는 중입니다.

결론적으로 KBS는 반도체 칩을 만드는 실리콘 웨이퍼와 그 칩 조립에 사용되는 기판 조차 구분하지 않고, 반도체 소재의 미래에 관해 이야기한 겁니다.
 KBS 2TV 경제콘서트 보도 장면 중 앱솔릭스에서 만드는 유리기판의 모습. 이 유리기판은 실리콘 웨이퍼를 대신해서 반도체 칩을 만드는 게 아니라 반도체 칩 조립용 기판입니다.
ⓒ KBS 보도화면
반도체 칩을 실리콘 조각으로 단순화시킨 조선일보

이번에는 8월 초에 나온 <조선일보>의 반도체 관련 기사를 하나 볼까요? <엔비디아 '블랙웰', 설계 결함으로 생산 지연>이라는 제목의 기사 본문 중에 결함을 설명하는 대목입니다.

<2일 IT전문매체 디인포메이션은 소식통을 인용해 엔비디아의 차기 AI반도체 '블랙웰' 제품이 설계상의 결함으로 생산 일정이 3개월가량 늦어지게 됐다고 보도했다. 디인포메이션은 "B(블랙웰)200 칩이 두 개 탑재돼 있는 수퍼칩 'GB200′에서 B200 두 개를 연결하는 실리콘 조각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고 전했다.>

낯선 용어들이 많아서 한 번에 이해가 되지 않죠? 하나씩 설명하겠습니다. 우선 블랙웰은 엔비디아의 GPU 아키텍처의 이름입니다. 아키텍처란 칩 내부의 물리적 배치와 칩 구동을 위한 명령어 같은 걸 정리한 종합 설계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아키텍처를 바탕으로 여러 가지 칩을 만들어 냅니다. 블랙웰 이전의 아키텍처는 호퍼였고, 호퍼를 이용한 H100과 H200이 지금 가장 널리 쓰이는 AI칩입니다.

블랙웰 아키텍처를 기반으로 만든 그래픽 칩 이름은 블랙웰의 B를 따서 B100와 B200입니다. H100에서 집적도를 높여 H200이라고 불렀던 호퍼 때와는 달리 블랙웰은 동일한 사양의 칩에 전력 제한을 달리해 B100과 B200으로 나눴습니다. SK하이닉스가 공급하는 메모리인 HBM이 여기에 사용됩니다.
 엔비디아가 블랙웰 아키텍처로 만든 B200칩과 GB200 AI가속기의 모습. 2024년 하반기에 출시 예정인 최신 제품입니다.
ⓒ 엔비디아
그럼, GB200은 또 뭘까요? 블랙웰 기반의 그래픽 칩 B200 두 개와 엔비디아의 그레이스 CPU 하나를 하나의 기판 위에 이어 붙어 만든 AI가속기 이름이 바로 GB200입니다. 그레이스 CPU의 G, 블랙웰 GPU의 B를 붙여서 이름을 지었네요. <디인포메이션>은 엔비디아의 칩을 제조하는 대만의 TSMC가 GB200 제조 과정에서 설계 결함을 발견했고, 그로 인해 생산 일정이 늦춰질 거라고 보도한 겁니다.

설명을 들으니까 어느 정도 이해가 되나요? 그럼, 이제 <조선일보>의 보도 내용을 다시 보겠습니다.

<디인포메이션은 "B(블랙웰)200 칩이 두개 탑재돼 있는 수퍼칩 'GB200′에서 B200 두개를 연결하는 실리콘 조각 부분에 문제가 생겼다"고 전했다.>

엔비디아 AI칩의 결함을 전하는 기사에서 원인을 이야기하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반도체 쪽 일만 30년 넘게 일한 저는 <조선일보>가 말하는 저 "실리콘 조각"이 뭔지 도무지 모르겠습니다. AI가속기 안에 실리콘 조각이 떨어져 합선이라도 유발했다는 말인지 궁금했습니다. 대당 가격이 1억 원 가까이하는 GB200 안에서 결함을 유발한 그 정체 모를 "실리콘 조각"의 실체를 알기 위해 디인포메이션의 기사를 찾아봤습니다.
 IT 매체 <디인포매이션>에서 엔비디아의 새로운 AI칩에 결함이 발견되어 출시가 늦어질 거라고 보도했습니다.
ⓒ 디인포메이션 보도화면
"The problem involved a processor die—a piece of silicon that holds circuits for a chip—that connected the two Blackwell GPUs."

"두 개의 블랙웰 GPU를 연결하는 프로세서 다이(칩 회로가 새겨져 있는 실리콘 조각)에 문제가 생겼다." 정도로 옮길 수 있을 겁니다.

그러니까 <디인포메이션>의 기사에 따르면 블랙웰 GPU를 연결할 때 쓰이는 프로세서 다이에서 문제가 발견됐다는 거고, 전문적인 용어인 "프로세서 다이"를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칩 회로가 새겨져 있는 실리콘 조각"이라고 설명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조선일보>는 기사를 번역하면서 반도체 칩인 '프로세서 다이'를 단순한 '실리콘 조각'으로 대체해 버린 겁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제대로 된 정보, 깊이 있는 정보를 취사선택 하는 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대통령님이 왜곡된 정보를 여과 없이 그대로 믿고 뭔가를 결정한다면 큰일이니까요. 반도체 칩 만드는데 유리기판이 대세란 소리에 유리 수급을 챙기라고 지시하는 일이 생길까 걱정되는 겁니다. 더욱이 이런 내용이 대통령님이 즐겨볼 것으로 예상되는 두 매체의 보도라 더 걱정되고요. 대통령님이 반도체에 진심이라면 이런 보도를 멀리하기를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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