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국민:민주공화국의 공통 제작자

2024. 8. 9. 0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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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한국사회의 진영갈등이 위험한 변곡점을 넘고 있다. 한 조사에 따르면 ‘정치 성향’이 다르면 연애와 결혼이 불가능하다는 국민의 답변이 58%에 달한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사회통합 실태진단 및 대응방안(Ⅹ)-공정성과 갈등인식’). 공적 정치문제에 대한 판단과 인식이 사적 사랑과 결혼 문제를 결정한다는 답변이 절반을 넘는 것이다. 나라의 성격과 체제가 국민과 시민으로서의 삶을 좌우하는 차원을 넘어, 개별 정치성향이 사인과 개인으로서의 선택에도 결정적 영향을 끼치고 있는 것이다.

「 정치 성향이 연애·결혼까지 좌우
진영대결 및 갈등 악화 종식 절실
‘부실건물’ 된 헌정 체계 혁파해야
공통성 회복 및 국민 연대가 해법

같은 조사에서 가장 높은 응답을 보인 갈등영역은 정규직-비정규직, 세대, 빈부, 노사, 지역, 다문화, 젠더 갈등이 아니라 진보와 보수의 갈등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조사결과는 우리의 인식전환과 제도개혁을 통해 얼마든지 해소가 가능한 갈등이라는 점을 뜻한다. 불행하게도 그 반대도 진실이다. 즉 구조적 요인이 아닌데도 못 풀기 때문에 더 어렵다는 점이다. 사회적·경제적 요인이라기보다는 주로 정치적·정념적 요인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정책을 통해 해소 가능하나 후자는 그렇지 않다.

진보와 보수의 갈등은 주로 이념갈등·진영갈등·정치갈등을 말한다. 여러 조사를 보면 진보·중도·보수를 막론하고, 또 정권을 넘어, 주로 정치·사법·소통 영역, 즉 대통령(행정부)과 국회, 언론, 법조계가 갈등 유발과 해소 책임의 주요 주체들로 지목되는 데에서는 차이가 없다.

7월 25일 열린 국회 제1차 본회의에서 김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방송4법 심사 보고를 하자 추경호 국민의힘 대표가 우원식 국회의장에게 찾아가 항의하며 극명하게 엇갈린 여야 입장을 보여주었다. 뉴스1

최근 들어 극도로 심화하고 있는 행정권력(대통령)과 입법권력(야당) 사이의 대치 역시 갈등 해소보다는 악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하고 있다. 최근 국회에서 ‘소통’을 목표로 존재하는 방송을 다루는 위원회의 ‘불통’, ‘법제사법’을 다루는 위원회의 ‘소란’ 역시 상징적이다. 갈등 해결을 목표로 존재하는 정부와 국회의 일련의 장면들은 한국 사회의 대표체계와 제도가 대화와 타협을 통한 갈등 해결에 얼마나 무력하고 부정적인지를 잘 보여준다.

한국의 갈등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국제 비교 조사와 연구는 매우 많다. 그 조사들에서 한국사회 갈등 순위는 세계 최상위권이다. 그리고 그러한 갈등 유발 요인은 주로 정치와 제도 요인이다. 특히 국제비교에 따르면 한국은 선진민주국가 중에 가장 높은 수준의 권력·선거 불비례성을 보여준다. 그리고 이 불비례성은 대통령제와 대통령 선거 때문에 더욱 심각하다. 게다가 한국은 대통령제를 넘는 초과 대통령제다.

또한 유효 정당 수가 적을수록 선거 불비례성이 높아진다. 한국은 양당제다. 그러나 한국에서 거대 양당이 갈등 해소를 위해 타협의 정치를 시도할 것이라는 기대는 불가능하다. 그것은 자신들의 지지기반을 잃고, 상대를 도와주기 때문에 채택되지 않는다. 갈등 악화가 진영 동원에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승자독식 대통령제에 양당제 국가로서 선거 불비례성과 갈등 해소에 가장 부정적인 조합이다.

4월 10일 총선 출구조사 결과를 보고 있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왼쪽 사진 앞줄 왼쪽)와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오른쪽 사진 앞줄 왼쪽)의 모습. 연합뉴스

민주주의 지표와 갈등 해소는 물론 국민 삶의 문제에서 정치제도의 차이는 결정적이다. 대통령책임제-의회책임제(의원내각제), 단원제-양원제, 양당제-다당제, 다수대표제-비례대표제, 단방제-연방제에 대한 국제 비교지표가 많지만, 정치체제 요인 하나만 살펴보자. 1인당 GDP, 삶의 만족도, 민주주의 지수, 정부에 대한 신뢰, 지니계수, 성불평등 지수, 상위 10% 소득 점유율, GDP 대비 공공 사회 지출, 실업률, 정규직 고용율, 여성 정규직 고용율…. 이들 평균지표에서 대통령제가 앞선 부문은 없다. 차이가 커도 너무 크다. 고르게 잘사는 민주공화국은 대통령제가 아니라 내각제 국가인 것이다. 게다가 선진민주국가 중 대통령제 국가 자체가 아주 소수다. 후술하듯 부실건물이기 때문이다.

개인 인생의 사적 선택 문제까지 좌우하기에 다다른 악성 진영대결은 반드시 해소돼야 한다. 인류에게 인간과 국가의 자기보존에 대한 중심 이론을 제공한 한 철인의 지적을 들어보자. “공화국이 외부의 폭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부의 불화에 의해 해체되기에 이른 경우, 그 잘못은 공화국의 ‘재료’로서의 인간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공화국의 ‘제작자’와 ‘질서 부여자’로서의 인간에게 있다.” “그런 부실 건물은 그들 자신의 시대를 넘지 못하고 그들 후손의 머리 위에 무너져 내리고 만다.” 심각한 불화를 낳는 부실 건물은 끝내 무너진다.

국민은 공화국의 재료이자 제작자이다. 이제 제작자로서, 정치성향으로 인해 사적 인생마저 옥죄이는 이 결함투성이의 부실 건물을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된다. 관건은 우리가 진민(陣民)·당민(黨民)을 넘어 국민과 시민으로서 ‘공통의’ 제작자가 될 수 있느냐에 달려있다. 공통의 제작자가 되어 민주공화국으로서의 공통성을 구축하지 못한다면 끝내는 공통의 헌법도 애국심도 정체성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공통성을 통한 연결과 이음, 접착과 연대가 없는 공화국은 한낱 부실 건물이기 때문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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