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라드 칼럼] 이일규 전 쿠바 주재 북한 참사의 놀라운 증언
북한 내부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엿볼 수 있는 순간이 종종 있다. 지난해 11월 탈북한 이일규(사진) 쿠바 주재 북한 대사관 참사의 최근 언론 인터뷰가 그런 사례다. 북한의 어려운 경제 사정은 말할 것도 없고 김정은의 통일 정책 폐기 선언이 얼마나 큰 원망을 일으켰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다음 몇 가지 측면에서 특히 놀라웠다.
먼저 이 참사는 김정은을 일곱 차례 대면해 그의 건강이 얼마나 좋지 않은지 확인할 수 있었다고 했다. 김정은은 늘 가쁜 숨소리를 내고 술에 취한 듯 항상 붉은 얼굴이었다고 회상했다. 최근 한국 국가정보원은 김정은의 몸무게가 140㎏으로 초고도 비만이라고 분석했다.더 주목할 점은 이 참사가 밝힌 열 한 살 딸 김주애 관련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계속해서 공식 석상에 등장하는 김주애가 후계자 수업을 받는 것 아닌지 추측해 왔다. 그러나 이 참사의 생각은 달랐다. 그저 딸에 푹 빠진 아빠로 김주애를 “공주님”으로 부른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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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도비만 김정은, 건강 좋지 않아
경제난에도 딸만 챙긴다는 인식
트럼프와 북핵 협상 내심 기대해
」
만약 김주애에 대한 전문가들의 분석이 맞는다면 그래도 김정은이 북한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있고 ‘김씨 왕조’ 유지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얘기가 된다. 그러나 단순히 ‘딸 바보’여서 김주애를 데리고 다니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라면 그의 행동은 사실 정상이 아니다. 더군다나 이는 북한 고위급 간부들이 보기에도 김정은이 북한의 심각한 상황보다 그저 자기 가족만 챙기는 모습으로 비칠 것이다. 비극적 최후를 맞이한 러시아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의 모습이 겹쳐진다. 니콜라이 2세는 연전연패한 러시아 군대 상황은 안중에도 없이 애견을 더 아낀 것으로 전해진다.
이 참사가 밝힌 북한의 대외 전략도 주목한다. 필자는 이전 칼럼에서 러시아가 북한의 무기 공급이 필요하지 않게 되면 북·러 관계는 곧 힘을 잃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렇게 되면 러시아의 지원도 끊기고 북한은 심각한 경제 상황 극복을 위한 대안이 필요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 참사의 인터뷰를 보면 김정은도 그런 결론에 도달한 것으로 보인다.
이 참사에 따르면 흥미롭게도 북한은 중국의 원조 확대를 고려하지 않아 보인다. 그 대신 북한이 원하는 것은 북·미 관계 정상화이고, 이것이 ‘유일한 생존의 길’이라고 주장했다.
지난 7월 북한은 미국 대선에서 누가 당선되든 상관없다는 입장을 냈다. 그러나 이 참사는 북한은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승리를 반길 것으로 봤다. 그 이유는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기존 친분을 기반으로 핵 협상이 가능할 거로 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의 관계를 이용해 뭔가 협상 타결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면 또 다른 북·미 정상회담을 꿈꾸고 있다는 말이다. 문제는 트럼프 입장에서 3차 북·미 정상회담을 과연 원할 것이냐다. 더는 새로울 것도 없고 트럼프가 원하는 스포트라이트를 받을 만한 요소가 없다. 설령 정상회담이 열려도 김정은이 원하는 대로 핵 협상이 타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
게다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오는 11월 대선에서 승리하면 북한은 어떻게 할 것인가. 해리스가 정상회담을 제안할 까닭도 없겠지만, 제안해도 성차별이 심한 북한 정서상 김정은이 과연 흑인 여성 대통령과 나란히 앉는 정상회담에 나설지 의문이다.
이 참사는 인터뷰에서 “북한에서 정권과 김정은에 대한 진정한 충성심은 없다”고 증언했다. 이런 현상은 갑자기 늘어난 탈북자 수와 맞물린다. 지난해 북한 고위 당국자의 탈북 사례가 20여 건이라는 보도가 있었지만, 국정원은 부인하지 않았다.
북한 정권이 대한민국의 문화 확산에 대한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고 있으며 심지어 남한 말이나 표현 사용도 금지하고 있지만, 단속이 잘 먹히지 않는다고 이 참사는 말했다.
이제 북한 주민은 두 개의 언어를 쓰게 됐다. 믿을 수 있는 지인이나 가족과는 한국말을, 신고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과는 평양말을 쓴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제 북한 주민은 사적인 삶과 공적인 삶, 즉 두 개의 삶을 갖게 된 셈이다. 한국말 사용을 불법화해서 이제 북한 주민은 정권에 대한 불만을 표출할 때는 한국말 억양과 표현을 쓰게 될 것이다. 한국말이 ‘저항의 언어’가 된 것이다. 이는 과연 북한 정권이 원하는 결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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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에버라드 전 평양 주재 영국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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