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정완의 시선] ‘다주택자=죄인’ 편견을 버리자

주정완 2024. 8. 9. 00:18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주정완 논설위원

이 세상에서 다주택자가 완전히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혹시 이런 상상을 해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물론 일부 공산국가를 제외한 자유시장 경제에선 실현 불가능한 얘기다. 그렇더라도 이 말을 꺼낸 이유가 있다. 아직도 ‘다주택자=죄인’이란 편견을 가진 사람이 적지 않아 보여서다.

다주택자가 소멸한다는 건 다시 말해 이 세상에 1주택자와 무주택자만 남는다는 뜻이다. 그러면 모든 사람이 주거 걱정 없이 행복하게 살 수 있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무주택자는 도대체 어디서 전세나 월세를 얻을 수 있을까. 간혹 예외가 있긴 하다. 1주택자면서 현재 사는 집을 임대로 내놓고 다른 집을 임대로 알아보는 경우다. 이 정도 물량으로는 임대 시장에서 대규모 수요를 감당하지 못한다.

「 모든 사람이 ‘내 집’서 살 순 없어
‘임대주택 공급’ 순기능 인정하고
종부세 등 실용적으로 개편해야

2017년 8월 3일 기자간담회에 나선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모습. 청와대사진기자단


결국 누군가는 현재 사는 집과 별개로 임대 주택을 공급하는 역할을 해줘야 한다. 그게 바로 다주택자다. 지난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 설계자였던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는 자신의 책(『부동산과 정치』)에서 “모두가 내 집에 살 수는 없다”며 “민간에서 임대주택을 제공하는 사람들을 다르게 부르면 다주택자”라고 적었다. 좌우의 이념을 떠나 부동산 시장의 당연한 상식이다.

물론 집값 상승기에는 다주택자를 향한 사회적 질시와 비난이 커질 수 있다. 다주택자가 가져가는 시세 차익을 기분 나쁘게 보는 사람들이 많아져서다. 그렇다고 정부나 국회가 감정적으로 대응해선 안 된다. 다주택자의 역기능도 있지만 임대 주택 공급자로서 순기능도 인정해야 한다. ‘이념의 색안경’을 끼고 다주택자를 죄인으로 몰아붙이면 잠시 대중의 박수를 받을진 몰라도 장기적으로 부작용이 더 크다. 바로 문재인 정부가 이렇게 했다가 집값도 못 잡고 전셋값도 대폭 올리는 실책을 저질렀다.

“다주택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으로 전·월세 주택의 공급물량이 줄어든 것이 안타깝다. (전·월세가 상승은) 임대공급은 줄고 수요가 늘었기 때문에 나타난 불가피한 현상이라 하루아침에 해소하기는 쉽지 않다. 과거 주택가격이 많이 올랐을 때 도입한 다주택자에 대한 징벌적 과세를 완화해 임대주택 공급 여력을 확충하는 게 필요하다.”

2011년 7월 11일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이 여의도 63시티에서 한국방송기자클럽이 주최한 TV토론회에서 물가안정과 내수확충 방안 등 경제현안에 대한 토론 참가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연합뉴스

얼핏 보면 최근 상황에 대한 진단으로 들린다. 사실은 13년 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 사령탑이었던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의 말이다. 2011년 7월 방송기자클럽 토론회에서 박 장관은 다주택자 중과세 완화를 주장했다. 다주택자가 좋아서가 아니라 전·월세가 상승으로 고민하는 무주택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기 위해서였다.

최근 종합부동산세를 둘러싼 정치권의 논의를 살펴보자. 다주택자에 대한 편견이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일단 야당에서 종부세 개편 논의에 앞장선 점은 환영할 만하다. 다만 한계도 분명했다. 더불어민주당 대표 경선에 나선 이재명 후보는 지난달 30일 JTBC 토론회에서 “세금이 개인 제재 수단으로 가면 저항이 격화된다. 여기에 교조적으로 매달려서 국민에게 고통을 줘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는 “1가구 1주택에 대해 저항을 감수하면서까지 그렇게 할 필요가 있겠느냐”며 1주택자 종부세 완화를 주장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다주택자 종부세는 완화하지 않겠다는 뜻으로도 읽힌다.

윤석열 정부는 2년 전 다주택자 종부세 중과 폐지를 추진했던 적이 있다. 하지만 야당의 반대에 막혀 충분히 뜻을 이루지 못했다. 예컨대 ‘똘똘한 한 채’로 불리는 고급 아파트를 소유한 1주택자와 상대적으로 저렴한 빌라 여러 채를 소유한 다주택자를 가정해 보자. 이때 단순히 보유 주택 수가 많다는 이유로 무거운 세금을 물리는 게 합리적일까. 2022년 7월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서 정부는 그런 식의 세금은 불합리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국회 법안 심의 과정에선 3주택 이상 종부세 중과를 유지하기로 야당과 타협했었다.

정부는 2022년 다주택 중과세율 폐지를 검토했지만 결국 2주택자에 대한 중과세율만 폐지됐고, 현재 3주택자부터는 최고 5.0%인 중과세율이 적용되고 있다. 사진은 남산에서 바라본 아파트 단지의 모습. 연합뉴스


현재 정부는 종부세 개편 논의에 소극적인 모습이다. 지난달 25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세제 개편안에선 종부세 관련 내용이 아예 빠졌다. 그렇다고 정부·여당이 현행 종부세를 유지하자는 입장도 아니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시급한 논의가 필요한 민생 과제에 종부세 개편을 포함했다. 다만 구체적인 내용은 언급하지 않았다. 지금으로선 정부·여당이 원하는 종부세 개편안이 무엇인지 모르겠다.

다음 달 정기국회가 열리면 종부세 개편 논의의 2라운드가 펼쳐질 전망이다. 2년 만에 다시 찾아온 기회다. 모쪼록 이념 대립보다는 실용적 해법을 꼭 찾아내길 바란다. 다주택자보다도 무주택 서민의 주거 안정을 지원하기 위해서다.

주정완 논설위원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