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아이] 큰 강을 파고, 서둘러 양식을 쌓고, 왕위를 기다린다

신경진 2024. 8. 9. 0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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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경진 베이징총국장

주목했던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마무리됐다. 폐막 다음 날 당 중앙이 주최한 개혁판공실·재경판공실·전인대·교육부·정책연구실 책임자 기자회견에 갔다. ‘결정’의 요지를 공식 발표에 앞서 들을 수 있었다.

지난달 31일에는 국무원 신문판공실 초청으로 주요 외신 설명회에 참석했다. 랴오민(廖敏) 재정부 부부장이 심리학자 칼 융을 인용해 “모든 것은 사물 자체가 아니라 우리가 사물을 보는 방식에 달려 있다”라고 한 영어 발언이 인상에 남았다.

3중전회 이후 중국 민간에서 “큰 강을 파고, 서둘러 양식을 쌓고, 왕위를 기다린다(大挖河 猛積糧 等稱王)”는 아홉 글자가 퍼진다며 대만 언론이 주목했다.

지난 7월 19일 베이징 중국공산당 중앙선전부 청사에서 전날 폐막한 전체 회의 요지를 설명하는 기자회견이 열렸다. 신경진 기자

이인자였던 린뱌오(林彪)의 반란 미수, 중소 분쟁, 경제 붕괴를 타개하기 위한 마오쩌둥의 1972년 책략이 진일보했다. 마오는 당시 “굴을 깊이 파고, 식량을 널리 쌓고, 패권을 노리지 말라(深挖洞 廣積糧 不稱霸·심알동 광적량 불칭패)”고 했다. 명 주원장(朱元璋)의 책사 주승(朱升)의 “성벽을 높이 쌓고, 곡식을 널리 비축하며, 왕은 천천히 칭하라(高築墻 廣積糧 緩稱王)”는 계책을 참고했다.

먼저 “큰 강을 파라”는 최근 중국 곳곳에서 포착되는 대운하 건설 움직임을 말한다. 경항(京杭)대운하를 능가하는 저장·장시·광둥을 잇는 저간웨(浙贛粵) 운하가 물밑에서 준비 중이다. 중원의 허난성은 47개 물길 프로젝트를 준비한다. 창장이 흐르는 후난성은 남쪽으로 운하를 추진한다. 토목공사에 능한 중국이 도로와 철도를 끝내고 운하에 손대기 시작했다.

둘째 “빠르게 물자를 쌓으라”는 현재 진행형이다. 올 상반기 중국의 밀 수입량은 928만 t, 지난해 한 해 수입량 1210만 t보다 속도가 빨라졌다. 올 초에는 황금을 대량 구매했다. 러시아를 통한 석유 비축도 서두른다. ‘결정’ 12조는 “국가 비축 시스템 개선을 서두르라”고 했다.

셋째는 “왕위를 기다리라”다. 왕난썬(王南森) 상하이 환태평양 국제전략 연구센터 부이사장이 지난 29일 러시아 싱크탱크 ‘발다이 클럽’에 보낸 기고문에 속내가 담겼다. 그는 “세계는 다시 한번 중요한 갈림길에 섰다”며 “대국과 강국은 책임감을 갖고 세계가 나아갈 방향을 지적하고 결정해야 한다”고 했다. 대국은 중국, 강국은 러시아를 말한다. 이들이 ‘글로벌 사우스’와 손잡고 국제 질서를 다시 만들겠다는 포부다.

3중전회 이후 중국의 행보가 빠르다. 미국 대선만큼 중요한 대외환경의 변화다. 치밀한 관찰이 필요하다.

신경진 베이징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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