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두나! 원작자가 19금 이성애 웹툰으로 직진한 까닭은
민송아의 만화는 ‘여성향’과 ‘남성향’을 가르는 장르의 고전적인 문법과 묘사가 혼재돼 있다는 점에서 특별하다. 2013년, 전통적인 순정만화 잡지를 통해 데뷔했지만, 민송아가 그린 여성 캐릭터들은 순정만화의 여주인공보다 〈두근두근 오렌지로드〉나 〈아이즈 I’s〉같이 한 시대를 풍미했던 일본 남성향 로맨스 만화 속의 ‘여주’를 닮았다. 예쁘고 귀여운 것을 넘어 ‘야시시하게’ 묘사되는 여주인공의 옆에 상대적으로 평범한 ‘남주’가 등장한다는 점 또한 소년들을 위한 러브 코미디물의 전형적인 문법을 따른다. 넷플릭스 시리즈로 제작된 〈이두나!〉에서 이두나 역할을 맡은 배우 수지가 카메라 앵글에 담기던 방식과 두나와 ‘남주’ 원준(양세종)의 관계도, 그리고 K드라마로는 드물게 주인공들 사이에 존재했던 묘한 성적 긴장감을 떠올리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서 반전이 등장한다. 민송아의 여주인공들은 유약해 보이지만 결코 호락호락하지 않다. 상대 남성보다 자신의 욕망과 성취가 먼저 존재하며, 그런 욕심을 굳이 감추지도 않는다. 민송아의 첫 19금 도전작인 〈앞집나리〉는 2022년 10월 네이버 웹툰에 연재를 시작했다. 작은 체구에 글래머인 미소녀가 어느 날 ‘앞집’에 등장해 사랑을 고백하며 저돌적으로 돌진하는 〈앞집나리〉의 설정은 언뜻 봤을 때는 전형적인 남성 판타지의 집약체다. 수위 높게 묘사되는 섹스 신에서 나리가 내뱉는 대사나 반응 또한 익숙한 일본발 야동 대사와 크게 구분되지 않으며, 남성을 겨냥한 성인용 잡지 화보 모델 같은 포즈의 소위 ‘서비스 컷’도 많다. 그럼에도 〈앞집나리〉는 연재 내내 여성 독자에게 높은 호응을 얻었다. ‘19세 이하 관람 불가’라는 제약에도 네이버 목요 웹툰 여성 독자 인기 순위 2위를 유지했으며, 〈이두나!〉와 비슷하게 남녀 독자의 비율이 거의 균일했다. 이는 여성향과 남성향으로 쉽게 구분되던 장르 문법이 어떻게 뒤틀어질 수 있는지, 시장에서는 BL로 향하는 듯하던 여성 독자들의 성적 욕망이 특정 연출과 묘사의 작동법에 따라 이성애 웹툰으로 포섭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좋은 예다. 그렇다면 이런 〈앞집나리〉에 반응하는 여성인 내 욕망은 어떻게 분류될 수 있을까? 〈앞집나리〉의 세계에 대해 민송아 작가와 나눈 5문 5답.
19금 이성애 로맨스물에 도전한 이유
〈이두나!〉에서 두나와 원준 사이의 긴장감을 내내 그려내며 여기에서 더 참지 않고 한발 더 나아가보고 싶다, 작가로서 제대로 묘사해 보고 싶다는 욕망이 누적됐습니다. 곧바로 〈앞집나리〉 연재를 결심했죠. 당연히 ‘돈이 되겠다’는 상업적인 판단도 있었습니다. 나리는 체구가 작고, 가슴은 크고, 순종적이고, 아동형 얼굴을 가진 캐릭터예요. 이야기가 전개되며 나리가 가진 사랑스러움이 드러나겠지만, 아무래도 외형 자체는 남성 판타지의 집약체다 보니 ‘여성 독자들이 이 인물을 좋아할까?’라는 의구심이 있었어요. 19금 웹툰인 만큼 당연히 남성 독자들의 수요가 월등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연재를 시작하니 그렇지 않았죠. 그렇다면 내가 더 이입을 잘할 수 있는 방향으로 그려보자는 판단이 서더라고요. 웹툰 연재는 기간이 길기 때문에 작가가 그리고 싶은 걸 하지 않으면 힘들거든요. 〈앞집나리〉는 정말 제가 좋아하는 것만 그렸습니다.
여성향과 남성향 창작물의 구분점은
누구의 판타지를 충족시키느냐죠. 남자 주인공 우찬이의 내레이션과 시점에서 진행되지만 〈앞집나리〉가 여성 독자들의 사랑을 받은 가장 큰 이유는 우찬이가 ‘괜찮은 남자’이기 때문인 것처럼요. 우찬이는 키도 크고, 외모도 준수하고, 19금답게 ‘성기가 크다’는 설정까지 판타지를 은연중에 계속 채워줍니다. 알바와 학업에 집중하는 대학생이지만 사실 만화에서 우찬이의 ‘학과’는 등장조차 하지 않아요. 반면 나리가 지금 무엇을 공부하는지, 얼마만큼 지적 능력과 꿈을 갖고 있는지를 계속 보여주죠. 경제력도 월등하고요. 〈이두나!〉의 원준도 마찬가지예요. 열심히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고 취업 준비 과정을 거쳐 대기업에 입사하죠. 왜 이런 남자 캐릭터를 그렸는지 생각해 보면 일도 연애도 열심인 인물을 좋아하기도 하지만, 제가 소위 ‘팀장님 판타지’를 이해하지 못해요. 나보다 직책이나 여러 면에서 월등한 남자가 들이대거나 관심을 빌미로 괴롭힌다면 너무 공포스러울 것 같거든요. 진로와 생계, 집안 문제에 대한 고민도 하되 외모와 생각이 반듯한 것. 그게 제가 그릴 수 있고, 그리고 싶은 궁극의 남성성 판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자고로 남자는 반듯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상화된 여체에 대한 애착에 대한 기원
어릴 때부터 남동생과 함께 순정만화를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만화를 보고 자랐고 미소녀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도 접했습니다. 특히 〈카드캡터 체리〉를 좋아했는데 그 미형의 캐릭터에 대한 제 취향이 그대로 자라온 것 같아요. 지금 돌아보면 주인공 체리의 동그란 단발 느낌이 나리와 닮았네요. 〈앞집나리〉에 등장하는 나리 주변의 수상한 인물이자 외모지상주의자 ‘비비안’이 작가가 투영된 캐릭터가 아니냐는 질문을 받는데요. 정말 노골적으로 섹시한 코스튬들, 그런 코스튬을 여성 캐릭터에 입히고 싶다는 제 욕망이 탄생시킨 캐릭터입니다. 여체를 미적 관점에서 좋아하기도 하지만, 만화가는 캐릭터의 행동양식 또한 계속 생각해야 하는데 저는 여자를 묘사하는 게 좋더라고요. 앞으로도 메인 캐릭터의 성비 비율은 남녀 2:8을 유지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섹스 신의 설정이나 묘사에 있어 고려한 부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주기보다 상상을 자극하자. 일단 전체를 그린 다음 수위를 위해 화이트를 칠하는데, 그게 오히려 더 야하게 느껴질 때가 많아요. 일부러 어둡게 숨겨놓은 연출도 있고요. 주변인으로부터 “남성향처럼 보이지만 실제 스킨십의 진행 과정은 여성 위주다. 엄청 야한데 예쁘다. 감성이 있다”라는 감상평을 들은 적 있는데, 실제로 동물적인 묘사는 좋아하지 않습니다. 잔인하거나 너무 야한 ‘19금 작품’도요. 너무 인간적이어서 음험하고 ‘꿉꿉한’ 감정을 그리는 것 또한 힘들어요. 그리는 당사자인 제가 묘사하고 싶지 않거나 감정적으로 힘들 것 같은 요소는 피합니다. 다만 최근 BL을 보기 시작하면서 왜 사람들이 제 작품을 ‘남성향 같다’고 했는지 깨달았어요. 그리고 BL에서는 수위가 센 것이 거부감이 들지 않더라고요. 등장인물은 남성이고 나는 여자니까 그 비도덕적 상황을 강 건너 불구경할 수 있는 거죠. 그리고 저는 법적으로 그리지 말라는 수위는 그리지 않습니다. 사회적으로 합의된 도덕관념에 무턱대고 반기를 들고 싶지 않아요. 예를 들어 남성 유두는 되면서 여성 유두는 왜 안 되는가에 대해 저 스스로가 남성과 여성의 유두를 동일하게 받아들이는가에 대한 성찰을 한번 거칩니다.
작가로서 갖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은
정말 저의 예쁜 판타지를 그렸고, 그리고 있습니다. 〈이두나!〉도, 〈앞집나리〉도 섹슈얼하지만 학생 때의 순수한 에너지가 모여 있죠. 아직 때 묻기 전의 순수함, 넘쳐나는 그때의 성적 에너지, 그 반짝이고 서툰 시기를 관찰하며 청춘물처럼 잘 포장해 왔다고 생각해요. 내가 예쁘다고 생각한 것을 그리고 내가 좋다고 생각한 장면을 표현했는데, 이토록 많은 사람이 제 만화를 봐주고 있다는 것이 응원과 증명처럼 느껴져 즐겁습니다. 30대 중반 여성으로서 30~40대 여성의 뒤틀린 면이나 욕망에도 이입할 여지는 있겠지만 직접 그릴 예정은 없어요. 왜냐하면 많이 봐주지 않을 것 같거든요. 예쁜 여성들이 등장하는 GL(Girl’s Love: 백합물) 또한 잘 그릴 자신도 있고, 작업도 즐거울 것 같지만 시장이 너무 작아서 아쉽습니다. 제가 즐길 수 있으면서 잘 팔리는 걸 그리고 싶어요. 이게 제가 갖고 있는 가장 큰 욕망일지도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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