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올인 옛말…절반은 금융자산에 [영리치 투자법]

최창원 매경이코노미 기자(choi.changwon@mk.co.kr) 2024. 8.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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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장·코인 투자…주식은 ‘미장’ 쏠림

“과거에는 자산 전부를 부동산에 투자하는 사례가 많았다. 요즘은 자산 절반 정도를 금융자산으로 운용하는 영리치가 많다.”

영리치 고객을 상대하는 강남 지역 프라이빗뱅커(PB) A씨의 말이다. 통계로 봐도 영리치의 ‘금융자산 선호’ 현상을 확인할 수 있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간한 ‘대한민국 부자보고서’에 따르면, 20~40대로 구분한 영리치의 평균 금융자산 비중은 전체 자산 가운데 52%였다. 반면 50대 이상 ‘올드리치’ 평균 금융자산 비중은 42%로 확인됐다. 10%포인트 차이다. 여기에 대체 상품 성격이 짙은 가상자산과 비상장주식도 영리치의 투자 레이더에 올랐다.

프라이빗뱅커(PB) 중에선 영리치의 복장에 놀랐다는 이들이 많다. 예상과 달리 편안한 차림의 동네 마실룩으로 방문해 고가의 상품을 턱턱 가입한다는 것이다.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비중 가장 큰 건 예금과 주식

‘영머니’도 국장에서 미장으로

영리치 금융자산 포트폴리오 중 비중이 가장 큰 건 예금과 주식이다. 언제든 즉시 현금화 가능하다는 게 특징이다. PB와 증권업계는 “투자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의도”라고 풀이한다. 익명을 요구한 증권사 PB는 “부자는 크게 금수저형과 자수성가형 두 가지로 나뉘고, 영리치도 마찬가지”라며 “영리치 중에선 자수성가형 비중이 꽤 크고 이들은 스스로 부자라고 생각 안 해 자산 증식에 관심이 많다. 현금성자산을 운용하며 새로운 투자처를 노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KB경영연구소가 지난해 말 발표한 ‘2023 한국 부자 보고서’에도 관련 내용이 언급된다. KB경영연구소는 “금수저형은 투자 자체보다 은퇴와 노후 등에 관심이 많았고, 자수성가형은 투자 자체에 대한 관심이 컸다”고 분석했다.

특히 주식 중에선 미국 증시 등 해외 선호 현상이 감지된다. KB 골드앤와이즈(GOLD&WISE)더퍼스트 반포의 박계영 과장은 “영리치의 경우 국내 주식보다 해외 주식에 관심이 크다”고 강조했다. 미래에셋증권 투자센터압구정 WM의 김정진 수석매니저는 구체적 사례도 제시했다.

김 수석매니저는 “국내 자산가 관심도가 해외 주식으로 쏠리는 현상이 있고, 트렌드에 민감한 젊은 자산가도 그 트렌드를 따라가는 모습”이라며 “창업 회사 지분을 매각해 120억원 규모 현금자산을 운용 중인 40대 고객 한 명은 해외 주식에 자산 절반 가까이 투자했다”고 들려줬다. 그러면서 “2022년 연말에 미국 인공지능(AI) 산업을 대표하는 빅테크 기업 위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현재까지 성과가 좋다”고 덧붙였다.

영리치가 미국 증시를 선호하는 건 일반 투자자와 같은 이유다. 미국 증시는 실적이 따라주면 주가가 덩달아 오른다. 주가 방향성을 조금이나마 예측할 수 있다는 의미다. 반면 한국 증시는 기업 실적과 무관하게 주가가 움직이는 사례가 많다. 여기에 외국인·기관을 쫓지 못하는 정보 비대칭, 금융투자소득세 등 각종 규제 우려도 있다. 이미 수익률 차이도 상당하다. JP모건자산운용에 따르면 최근 10년(2014~2023년) 동안 한국 지수는 연평균 3.6% 상승에 그쳤다. 미국(12%)은 물론 일본 증시(5.3%)와 비교해도 차이가 크다.

‘리스크 부담’ 상품도 OK

영리치 21%가 가상자산 보유

증권업계와 PB들은 “영리치는 리스크를 감내한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가상자산과 비상장주식 등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큰 상품에 관심 많다고 설명한다. 기존 올드리치와 차이가 극명한 부분이다. 김정진 수석매니저는 “나이가 어린 만큼 투자 가능한 기간이 길고 더 많은 리스크를 감내할 수 있다고 판단하는 고객이 많다”며 “최근 만나는 젊은 자산가 대부분이 이런 사실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다. 투자 기간이 길고 리스크가 꽤 있는 편인 비상장주식이나 가상자산 투자에 관심이 많다”고 설명했다.

금융 스타트업 업라이즈의 빈센트(김두언) MFO(Multi Family Office) 총괄도 영리치만의 특징으로 ‘리스크’와 ‘트렌디’를 꼽았다. 김두언 총괄은 “부자는 자산을 쌓은 방식에 따라 향후 투자 방식도 결정되는 편인데, 영리치는 일반적으로 올드리치 대비 자산 증식 기간이 짧다”며 “트렌디한 자산으로 부를 이뤘다는 의미고, 이 중 대표적인 게 가상자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미 가상자산에 긍정적 경험을 가진 영리치라면 가상자산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며 “포트폴리오 절반 이상을 가상자산에 투자하는 영리치도 상당수”라고 덧붙였다.

통계로도 확인된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에 따르면 영리치 중 21%가 가상자산을 보유 중이다. 5%를 기록한 올드리치와 극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또 가상자산 투자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① 가격 급등락 과정에서 차익 거래를 통한 수익 창출 가능 ② 장기적으로 가치 상승 전망이라는 답변이 가장 많았다. 가상자산 특징 중 하나인 예측 불가능한 가격 변동성을 ‘리스크’가 아닌 ‘기회 요인’으로 판단하는 셈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는 “여전히 가상자산은 투기나 도박에 가깝다는 인식이 존재하지만, 영리치가 올드리치에 비해 긍정적인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저쿠폰 채권은 여전한 인기

명품 시계 등 ‘신(新)투자’도

영리치도 시간이 지나 올드리치가 되기 마련이다. PB들은 특히 영리치와 올드리치 경계선에 있는 고객의 경우 ‘절세 상품’ 수요가 상당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성주 삼성증권 SNI 패밀리오피스센터 1지점장은 “슈퍼리치는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채권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축한다”며 “삼성증권 SNI 고객의 실질 자산 중 채권 투자 비중은 2020년 8.8%에서 2024년 6월 말 23.6% 수준으로 크게 늘었다. 최근 고객 사례를 보면 비과세인 채권 자본차익을 활용한 절세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저쿠폰 채권’을 포트폴리오 핵심으로 두는 경우가 많다”고 구체적 사례를 제시했다. 채권 이자 세금은 수익률이 아닌 발행 당시 쿠폰 금리에 부과한다. 발행이율(표면금리)이 낮은 채권일수록 절세 효과가 크다.

신(新)투자 상품에도 적극적이다. 영리치의 자기 주도적 성향과 관련 있다. 전통자산 투자를 무작정 따르기보다 자신이 잘 아는 분야에서 ‘돈을 벌 수 있는 일’에 투자하는 사례가 상당수다. 대체불가능토큰(NFT)과 명품 시계 등이 각광받는 이유다. 김두언 총괄은 “영리치는 기본적으로 직접 투자를 지향하는데, 새로운 자산에 대한 거부감이 없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최근 명품 시계를 단순 패션을 넘어 ‘투자자산’으로 인식하는 이들이 늘고 있다. 명품업계도 이 같은 변화를 감지하고 새로운 서비스를 내놓고 있다. 명품 시계 플랫폼 바이버는 보관 서비스를 출시했다. 시계는 금융기관 수준의 특수 금고에 보관되고, 언제든 판매 중으로 전환 가능하다. 문제연 바이버 대표는 “보관 서비스는 시계를 투자자산이라고 생각한 고객들을 겨냥해 내놓은 서비스”라고 설명했다.

[최창원 기자 choi.changwon@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1호 (2024.08.07~2024.08.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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