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성 단연 최고” 해외 전용 상품 출시…금융권, 영리치 모시기 혈안
장면 1. 신한금융그룹은 올해 4월부터 이색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일명 ‘신한 Next Leaders Program(차세대 리더 프로그램)’이다. 경영 전략, 승계, 세무, 리더십 등 전문가 초청 강연뿐 아니라 리더의 품격과 교양을 높이기 위한 아트, 와인, 이미지 메이킹 등 다양한 체험 활동을 제공한다. 참여 대상은 10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중 49세 이하 1세대(당대 창업 혹은 자산 형성)와 고액 자산가 가족 그룹 중 2세(자녀 세대) 영리치 고객이다.
신한금융그룹 관계자는 “배경은 다르지만 비슷한 연배의 자산가, 일명 영리치 그룹을 조성해 이들끼리 또 다른 사업 기회를 모색케 하고 친분을 도모할 수 있는 장을 마련했다”고 소개했다. 신한금융은 2022년부터 영리치 전담 자산관리 전문가인 ‘영(Young) PB’ 제도도 운영하고 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충성고객을 늘리며 투자, 상속, 증여 등 WM(자산관리) 부문 수익 극대화를 노린다는 복안이다.
장면 2. 2010년은 삼성증권이 30억원 이상 초고액 자산가 서비스인 SNI(Success & Investment)를 출범시킨 해다. 이후 14년 만인 최근 삼성증권은 초고액 자산가 고객이 4000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삼성증권 관계자는 “30억원 이상 자산가 고객은 지난해 연말 대비 500여명이 증가하며 6월 말 기준 4041명이 됐고, 고객당 평균 자산은 254억3000만원에 달한다”고 밝혔다. 삼성증권이 이 같은 성과를 낸 배경에는 초고액 자산가 중 대부분인 경영자를 위한 토탈 솔루션이 있다. CEO 포럼, CFO 포럼 등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2013년부터 패밀리오피스(대를 이은 자산관리 그룹)의 2세 즉 영리치를 대상으로 한 ‘Next CEO 포럼’ 제도를 운영, 최근까지 17기, 약 700여명을 배출하기도 했다.
영리치가 증가하며 이들을 잡으려는 금융사 행보도 분주하다. 각 업체는 일단 영리치 유형을 최대한 수집한다. 스타트업 창업 후 수백억원 혹은 수천억원에 매각한 3040세대 CEO 출신은 물론 인기 웹툰 작가, 유튜버, 인플루언서, 스포츠 스타, 프로게이머, 코인 부자 등이 이들 타깃이다. 이런 신흥 부자에게 글로벌 체험, 종전 전통 자산가와 교류 등 생각지 못한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하며 장기 고객이 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여기에 더해 ‘어장관리(?)’에도 열심이다. 각 금융사는 최근 패밀리오피스 부서를 강화, 종전 부자 고객 가문의 차세대 자산가, 즉 2세 영리치를 밀착 관리하고 있다. 이들의 새로운 니즈에 부응하는 해외 전시 관람, 명품 트렁크쇼 등 다양한 체험을 제공, 충성도를 높이는 전략이다.
WM 수익이 차세대 성장동력
최근 금융권 화두는 점포 줄이기다. 비용 절감을 위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 4대 은행의 국내 영업 점포(출장소 포함)는 총 2826개다. 2018년 말 기준 3563개 대비 20%나 감소했다(금융감독원 정보통계시스템 자료). 이런 가운데 특정 점포는 오히려 증가세를 보이기도 한다. 고액 자산가 전문 프라이빗뱅커(PB)센터다. 4대 시중은행(KB국민·신한·하나·우리)의 이들 고급 PB센터는 올해 5월 기준 89개로 2018년 말(75개) 대비 16% 늘어났다.
왜 이런 현상이 빚어질까. 핵심 키워드는 ‘비이자이익’에 있다. 비이자이익이란 펀드·보험 등 판매로 거둔 수수료나 유가증권·외환·파생에 대한 투자수익 등을 뜻한다. 그간 각 은행은 예대마진, 즉 예금은 이자를 짜게, 대출은 비싸게 내주며 이 차익으로 성장해왔다는 비판이 많았다. 증권사도 증권 거래에서 발생하는 브로커리지(위탁 거래) 등 수익원이 단순하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그러다 보니 대통령은 물론 정치권에서 ‘손쉽게 이자 장사하며 서민을 힘들게 한다’ ‘선진국 수준 IB(투자은행)는 요원하다’는 비판이 빗발쳤다.
이런 가운데 각 금융사는 고액 자산가 유치에서 기회를 엿봤다. 이들의 예치금 규모가 일반 고객의 수십 배인 데다 투자상품 가입 금액 역시 ‘클래스’가 다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는 수수료 수익이 일반 고객에게 들이는 품 대비 훨씬 크다 보니 슈퍼리치를 우대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현장 목소리다. 여기에 더해 고액 자산가에게 단순히 펀드 가입시키는 수준을 넘어 상속·증여, 세무·부동산, 회계 관리 등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올리는 부가수익 역시 짭짤하다. 참고로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2684억원이던 증권사 WM 수수료 수익은 올해 1분기 3022억원으로 증가했다.
삼성證 SNI, 미래에셋 세이지 각축
고액 자산가 관리는 크게 금융지주 계열 복합 서비스와 독립계 증권사의 차별화 전략으로 나뉜다. 특히 금융지주 계열은 한 고객에게 은행, 증권, 카드, 보험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원스톱’으로 제공한다는 점을 장점으로 내세운다.
이 분야 선도 기업은 하나금융그룹이다. 2017년 서울 삼성동에 고액 자산가 대상 WM 복합점포인 ‘클럽원(Club1)’을 선보인 후 2호점(한남)을 잇따라 열며 ‘PB 명가’ 이름값을 했다. 클럽원은 단순 상품 가입 외에도 연금, 신탁은 물론 국내외 비상장주식 투자, 사모펀드 출자 등 다양한 투자상품을 제시, 고액 자산가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특히 하나금융은 영리치 관리에도 오랜 노하우를 자랑한다. VIP 가문의 영리치 2세끼리 단체 맞선, 공통 관심사가 있는 영리치끼리 커뮤니티 조성 등이 대표적이다. 커플 매칭 행사는 현재까지 1700여명이 참가, 이들 중 상당수가 결혼에 골인하기도 했다는 후문이다.
KB금융그룹 역시 2022년 서울 압구정에 금융자산 30억원 이상을 보유한 자산가를 대상으로 한 ‘KB 골드앤와이즈 더 퍼스트(이하 더 퍼스트)’를 오픈, 이 시장에 맞불을 놨다. 최근에는 ‘반포센터’도 추가로 열어 ‘규모의 경제’를 구축 중이다.
더 퍼스트 관계자는 “영리치는 미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경우가 많아 해외 부동산 투자에도 열려 있다”고 소개했다.
신한금융그룹은 맞춤형 서비스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초고액 자산가 고객에게 전담 투자·사후관리를 해주는 ICC(Investment Consulting & Counseling) 조직을 운영하는 건 기본. 최근 오건영 신한은행 팀장(단장)을 앞세워 88명의 전문가가 자문하는 ‘신한 프리미어 패스파인더’와 같은 은행·증권 융복합 서비스를 내세웠다. 우리금융그룹도 지난해 말 고액 자산가를 위한 ‘TCW(TWO CHAIRS W)’ 조직을 신설, 오는 2026년까지 반포, 강북 등 주요 거점에 20개 지점으로 내겠다고 밝혔다. NH농협금융지주는 NH투자증권의 PWM사업부를 주축으로 패밀리오피스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100개 가문을 넘긴 가운데 2세 영리치 관리에 특히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독립계 증권사 중에서는 삼성증권, 미래에셋증권, 한국투자증권 등이 각축전을 벌인다. 삼성증권은 SNI 조직을 필두로 다양한 영리치를 유치해왔다. 미래에셋은 2010년부터 고액 자산가를 위한 VIP 서비스인 ‘세이지클럽’ 멤버십을, 한투증권은 프리미엄 종합자산관리 서비스 전담 조직인 GWM(Global Wealth Management)을 운영한다. 미래에셋세이지클럽은 최근 영리치 포함 100억원 이상 자산가만 7000명을 넘겼는데 영리치끼리 어울릴 수 있는 문화예술 분야 전문가 강좌 프로그램 ‘살롱아카데미’, 기업인 2세를 위한 ‘차세대 최고경영자(CEO)’ 프로그램 등이 인기다. 한투증권은 해외 투자로 차별화했다. 영리치가 해외 관심이 많다는 점에 착안, 크레디트스위스와 협업해 이들 전용 상품을 출시했다. 또한 글로벌 운용사 누버거버먼의 글로벌 비상장 기업 투자 펀드를 만들어 조기에 완판시키기도 했다.
[박수호 기자 park.suho@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1호 (2024.08.07~2024.08.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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