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실적에도…웃지 못하는 에어부산
저비용항공사(LCC) 중 알짜로 꼽히는 에어부산이 흔들린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고 실적을 기록하고도 웃지 못한다. 회사 존치를 둘러싼 갈등이 과열되는 까닭이다. 에어부산 최대주주인 아시아나항공을 인수하는 대한항공 측은 산하 LCC를 통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통합 LCC 본사 소재지는 인천이 유력하다. 부산시 측은 대한항공의 계획에 극렬히 반발한다. 지역 항공 기업인 에어부산이 사라진다는 이유에서다. 통합 LCC 본사를 부산에 둘 게 아니라면, 에어부산을 아시아나항공으로부터 분리 후 매각하라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부산시는 물론, 지역 기업계 그리고 정치권까지 나서 대한항공과 매각 주체인 산업은행을 압박하는 와중이다. 대한항공 측 역시 물러서지 않고 강하게 맞서는 모양새다.
실적 부각될수록, 싸움은 더 커진다
에어부산은 올해 상반기 매출액 5076억원, 영업이익 890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 매출액(4114억원) 대비 23.4%, 영업이익(817억원) 대비 8.9% 증가했다. 상반기 기준 역대 최대 실적이다. 해당 기간 영업이익률은 17.5%에 달했다. 역대급 성적을 거두며, 아시아나항공의 ‘알짜’ 자회사로서의 면모를 뽐냈다. 고환율·고유가 변수와 인건비·정비비 등 일회성 비용 증가로 2분기 실적이 주춤했지만, 전체 실적에는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상반기 에어부산 실적을 이끈 요인은 ‘수요 증가’다. 올해 상반기 에어부산을 이용한 여객 수는 약 399만명이다. 2019년 상반기 기록인 407만명에 근접했다. 올해 말에는 2019년 수송객 수를 넘어설 전망이다. 상반기 탑승률은 국내선 90%, 국제선 88.6%를 기록했다. 전체 평균 89.2%를 기록, 지난 10년간 최고치를 갈아치웠다. 전년 동기 탑승률 87.1%보다도 2.1%포인트 늘어난 수치다. 수송 화물 물량은 3만t을 넘어섰다. 에어부산의 상반기 화물 수송량이 3만t을 넘어선 것은 2018년 이후 처음이다.
좋은 실적에도 에어부산을 둘러싼 분위기는 밝지 않다. 존치 여부를 둘러싼 부산시와 대한항공의 갈등이 날이 갈수록 심해지는 까닭이다. 오히려 에어부산의 존재감이 높아질수록 양측 대립도 격해지고 있다.
분란의 시작은 아시아나항공 매각이다. 2019년 아시아나항공은 재무제표 분식회계가 적발되고 부채비율이 649% 폭증하는 등 악재가 겹쳤다. 원주인인 금호그룹은 위기를 넘기기 어렵다고 판단, 아시아나항공 매각을 결정했다. 이후 아시아나항공의 운명은 산업은행을 비롯한 채권단 손에 넘어갔다. HDC를 거쳐 최종 인수자가 대한항공으로 낙점되면서 계열사인 에어부산 운명도 요동치기 시작했다. 인수자인 대한항공은 효율적인 운영을 위해 양 사 LCC 브랜드 진에어·에어부산·에어서울을 통합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통합 LCC 본사 소재지는 인천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계획이 전해지자, 부산시와 지역 상공계는 즉각 반발했다. 지역 거점 항공사가 사라진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인수자인 대한항공과 매각을 주관하는 산업은행에 2가지 안을 제시했다. 통합 LCC 본사를 부산에 두거나, 에어부산을 아시아나항공에서 분리해 매각하는 방안이다.
그러나 대한항공과 산업은행 모두 두 가지 방안이 ‘현실적이지 않다’는 입장이다. 통합 LCC 본사는 이미 2022년 조원태 한진 회장이 “인천을 허브로 두겠다”고 발언한 바 있다. 분리 매각 방안도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못을 박았다. 대한항공은 결합심사 통과를 위해 가장 알짜로 꼽히는 화물사업부를 에어인천에 매각했다.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에 남은 유일한 알짜 회사다. 에어부산을 뺀 아시아나항공 인수는 대한항공으로서 받아들이기 힘들다. 강석훈 산업은행 회장 역시 “지금 합병 조건을 바꿔버리면 전체 과정을 다시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어렵다”며 에어부산 분리 매각이 현실적으로 힘들다는 뜻을 내비쳤다.
아시아나항공 인수가 최종 단계에 접어들면서, 지역 여론 반발은 더 커지고 있다. 부산·경남 지역 민심은 ‘알짜 기업인 에어부산을 지켜야 한다’며 격앙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정치권까지 가세, 논란이 더 커지고 있다. 부산 지역구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연일 대한항공과 산업은행 수뇌부를 압박 중이다. 김대식 국민의힘 의원은 7월 1일 우기홍 대한항공 사장을 만나 에어부산 분리 매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앞서 같은 당의 조경태 의원은 강석훈 회장에게 분리 매각을 주문하기도 했다.
시비까지 투입했는데…먹튀 논란도
항공업계와 자본 시장에서는 사실상 ‘분리 매각은 불가능’이라는 시선이 우세하다. 이미 확정된 합병안을 섣불리 고치기 어려운 데다, 설령 독립경영을 진행하더라도 성공 여부를 확신하기 힘들어서다. 에어부산은 수리·기자재 보급 등 상당수 분야에서 아시아나항공 지원을 받는다. 독립하면 온전히 에어부산 비용으로 항공기 정비·보급을 감당해야 한다. 현재 에어부산 상태에서는 한계가 분명하다. 결국 대한항공의 통합안대로 흘러갈 가능성이 상당히 높다. 실제로 다른 LCC였다면 자본 시장 논리대로 무리 없이 진행됐을 것이라는 게 업계 관계자들 의견이다.
유독 에어부산 통·폐합을 두고 지역 사회에서 강력히 반발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원인은 3가지다.
첫째, 에어부산의 특수성 때문이다. 대형 항공사 산하 LCC는 모두 모회사가 100% 출자해 만든 회사다. 진에어는 대한항공, 에어서울은 아시아나항공이 100% 출자해 만들었다. 당연히 모기업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반면, 에어부산은 아시아나항공과 부산 지역 향토 기업이 공동 출자해 만든 기업이다. 애초에 부·울·경 지역 거점 항공사를 만드는 목적으로 만들어진 회사다. 아시아나항공 지분율은 41.9%로 50%를 넘지 않는다. 편의상 자회사라고 부르지만, 엄밀히 말해 상법상 자회사로 보기 힘들다. 상법상 자회사로 분류되려면 보유 지분이 50%를 넘어야 한다. 설립 당시부터 부산 지역 자본이 들어간 덕분에, 타 항공사보다 지역 상공계와 정계의 입김이 강하다. 또 코로나19 유행으로 어려움을 겪은 에어부산이 3차례 유상증자를 실시했을 때, 부산시는 100억원이 넘는 시비를 들여 참여했다. 부산시 입장에서는 혈세까지 투입해 살려낸 기업이다. 분리·매각이 어렵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이유다.
둘째, 가덕도 신공항의 존재다. 현재 부산시는 김해국제공항을 대체할 가덕도 신공항 건설을 추진 중이다. 대형 국제공항이 들어서지만, 허브 항공사가 없다는 점이 치명적이다. 당초 김해공항을 허브로 삼는 에어부산이 들어올 계획이었다. 이번 통합이 이뤄지면 계획은 물거품이 된다. 가덕 신공항 성공을 위해서라도 에어부산을 존치해야 한다는 게 지역사회 입장이다.
셋째, 부·울·경 지역의 대한항공을 향한 반감이다. 부산·경남 소비자 사이에서는 대한항공이 지역을 차별한다는 여론이 우세하다. 노선 배치도 제대로 안 하면서, 외항사가 김해공항에 취항하려면 방해만 한다는 인식이 강하다. 지역 민심 기저에는 ‘대한항공은 수도권과 인천만 신경 쓴다’는 정서가 깔려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항공이 내세운 LCC 통합안은 부산 항공사를 없애고, 인천으로 가져가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졌다. 부산·경남 지역민이 모인 커뮤니티에서는 “부산시 혈세로 키웠는데 인천에 헌납하는 게 말이 되는가” “대한항공의 뿌리 깊은 부·울·경 차별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 같은 반응이 쏟아졌다.
[반진욱 기자 ban.jinuk@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1호 (2024.08.07~2024.08.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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