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업계 뒤흔든 ‘디디비 스캔들’…또 폰지?

나건웅 매경이코노미 기자(wasabi@mk.co.kr) 2024. 8. 8. 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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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급 액수만 수백억

큐텐 정산 지연 사태로 전국이 떠들썩한 가운데 국내 광고업계에도 대규모 미지급 사태가 터지며 큰 파문이 일고 있다.

중심에 광고사 ‘디디비코리아’가 있다. 전 세계 2위 광고 대기업 옴니콤그룹 계열사인 ‘디디비월드와이드’의 한국 지사다. 지난해 중순 이후 디디비코리아가 외주 광고 업체에 지금껏 미납한 돈이 수백억원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많게는 수십억원까지, 돈을 물린 외주 업체가 100개에 달한다. 견디다 못해 이미 파산한 업체도 더러 있다.

수상한 점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미지급 사태가 수면 위로 드러나기 직전인 지난해 12월, 디디비 글로벌 본사는 인수대금을 안 받다시피 하며 헐값에 지분 100%를 팔아치웠다. 이후 디디비코리아는 디디비 글로벌 본사와 무관한 기업이 됐지만 여전히 ‘디디비’ 이름을 달고 영업을 계속해왔다. 피해 규모가 더 불어난 이유다.

피해 업체 얘기를 들어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단순 유동성 위기에 따른 미지급을 넘어, 있지도 않은 광고 계약을 만들어내 돈을 받는 등 ‘사기’ ‘횡령’ 의혹도 받는다. 모기업인 옴니콤그룹이 이런 문제를 다 알고 재빨리 모든 지분을 매각한 게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배경이다.

대규모 지급 불능 사태를 맞은 광고 회사 ‘디디비코리아’가 올해 7월 자사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입장문. ‘신규 법인 설립 후 이전 법인 채무에 대한 변제 계획을 발표하겠다’는 내용이 담겼다. 8월 1일 현재까지 신규 법인 설립은 지지부진 중이다. (디디비코리아 홈페이지 갈무리)
세계 2위 광고 기업 ‘옴니콤’ 계열사

제작사·미디어랩·매체 등 피해 확산

디디비코리아는 국내 업력 30년이 넘는 중견 광고사다. 국내 1년 광고 취급액이 2000억원에 달하는 기업으로, 연결 기준 연간 매출은 700억원이 넘는다. 일반인에게는 생소할 수 있지만 광고 쪽에 종사한다면 모르는 이가 없다. 글로벌 본사 ‘디디비’와 모기업 ‘옴니콤그룹’ 명성이 워낙 대단하기 때문이다. 옴니콤그룹은 시가총액이 200억달러에 육박하는 세계적인 광고·마케팅 기업이다. 전 세계에서 두 번째로 큰 광고사기도 하다. 국내 연 취급액이 4000억원이 넘는 TBWA코리아, 비비디오코리아 역시 옴니콤 계열 광고사다.

디디비코리아 지급 불능 사태가 불거진 건 올해 3월쯤이다. 디디비코리아로부터 대금을 못 받았다는 여러 광고 업체가 저마다 문제를 제기하면서다. 디디비코리아를 비롯한 광고사는 광고주인 기업으로부터 돈을 받고 여타 광고 업체에 외주를 주는 방식으로 일을 진행한다. 일단 광고주로부터 돈을 다 받고, 자기 수수료를 뗀 나머지를 외주 업체에 정산하는 방식이다. 광고 콘텐츠를 만드는 ‘제작사’, 포털·신문·방송·소셜미디어 등에 광고 공간을 구입해 광고를 송출·판매하는 ‘미디어랩’ 등이 대표적이다.

디디비코리아로부터 돈을 받지 못한 광고 업체는 100여개, 피해 액수는 4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디디비코리아 피해자 모임’도 구성됐다. 한국디지털광고협회 주축으로 피해사 20여개가 모였다. 이들이 파악한 피해 기업 사례만 40여개. 많게는 60억원에 달하는 돈이 물려 있는 제작사도 있다.

전 국민이 다 아는 공중파·종편·케이블 방송 매체를 비롯해 광고주 기업 피해 사례도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목영도 한국디지털광고협회장은 “대기업을 제외한 광고 업체 95%는 영세 기업이다. 수억원만 못 받아도 당장 존폐 기로에 놓인다”며 “유동성 위기를 겪고 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 현재 진행·논의 중인 광고 계약에도 영향을 미칠까 두려워 피해 사실을 밝히기 꺼리는 기업이 대부분”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글로벌 본사 핑계 대며 미납

있지도 않은 ‘사기 계약’ 의혹도

피해 사례는 각양각색이다. 광고 제작을 다 마쳤는데도 돈을 못 받은 제작사 A, “일단 먼저 돈을 내달라”는 디디비코리아 측 요구를 받고 매체에 돈을 선지급했지만 여전히 정산을 못 받은 미디어랩 B, 심지어 모델비를 광고주와 디디비코리아 대신 내고 돈을 돌려받지 못한 영세 대행사 C도 있다.

의도적으로 조직된 사기 행각이 의심되는 사례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제작사 D 대표는 지난해 디디비코리아와 한 게임사로부터 광고 제작을 의뢰받았다. 디디비코리아 측에서는 D사가 향후 제대로 광고 제작을 할지에 대한 ‘용역이행 보증금’을 요구했고 D사는 이를 전달했다. D사는 이후 함께 콘텐츠 제작을 맡기로 한 다른 여러 외주 업체에도 선수금을 지급했다.

이후 밝혀진 사실은 충격적이다. 디디비코리아가 제안한 광고 캠페인은 애초에 없었다. D사는 디디비코리아에 용역이행 보증금 반납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했고 글로벌 본사 문의 결과 “모르는 일”이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선수금을 지급한 다른 외주 업체 역시 모르쇠로 일관했다. D사 대표는 “함께 일을 하기로 했던 외주 제작사는 모두 디디비코리아가 지정한 업체였다. 알고 보니 이들 역시 그간 디디비코리아로부터 못 받은 돈이 있던 업체들이었다”며 “그들에게 돈 대신 가짜 일감을 줘서 타사로부터 돈을 받게 했다. 전형적인 폰지 사기”라고 분개했다. 현재 이와 관련한 민·형사소송과 경찰 수사가 진행 중이다.

“세계 2위 옴니콤 믿었는데”

글로벌 대기업 ‘도덕적 해이’ 도마 위

피해 기업 관계자들은 “디디비로부터 돈을 못 받을 것이라는 의심 자체를 해본 적 없었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곳도 아니고 세계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디디비’와 ‘옴니콤그룹’이 뒤통수를 칠까라는 생각에서다.

하지만 디디비코리아는 현재 디디비 본사와 옴니콤그룹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는 회사다. 이름만 ‘디디비’일 뿐이다. 지난해 12월 29일 디디비 본사는 35억원에 지분 전량을 매각했다. 현재 계약금 3억원가량만 받고 도망치듯 정리했다는 풍문이 업계에 파다하다. 이와 관련 감사에 나선 글로벌 본사가 디디비코리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채고 빠르게 지분을 정리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나온다. 지난해 디디비코리아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후 감사보고서를 여전히 공개하지 않고 있다.

디디비코리아 스캔들이 글로벌 이슈로 번져 나갈 가능성도 있다. 옴니콤그룹이 모든 정황을 다 알고도 지분을 매각하고 디디비코리아에 계속 이름을 쓸 수 있는 권리를 줬다면 배임과 분식회계 의혹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진단이다.

디디비코리아 피해자 모임을 중심으로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 제소 움직임도 나온다. 한 광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연말 결산을 코앞에 둔 12월 29일, 지분을 급하게 팔아치운 건 본사의 ‘꼬리 자르기’ 밖에 안 된다”며 “디디비코리아에 본사 지분이 없다는 걸 여전히 모르는 광고주나 광고 업체도 많다. 지금 이 순간에도 돌려막기 피해자가 나오고 있을 수 있다”고 한숨 쉬었다.

한편 디디비코리아 측은 채무 변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입장이다. 올해 4월 취임한 이원재 디디비코리아 신임 대표는 “글로벌 본사가 매각 전 지급보증을 차단하고 사내 유보금을 다 가져가면서 유동성에 어려움을 겪게 됐다”며 “회사 파산이나 부도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신설 법인을 세운 후 벌어들이는 수익으로 채무 변제에 끝까지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밝혔다.

다만 구체적인 새 사업 계획, 또 타 법인 채무를 신설 법인 수익으로 변제하는 과정에서 불거질 배임·횡령 이슈에 대해선 명확한 답을 주지 않았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1호 (2024.08.07~2024.08.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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