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혁명군 승전보보다 미얀마에 더 필요한 것

복건우 2024. 8. 8.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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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 8888 민주화항쟁 36주년 좌담회 "지금도 싸우는 미얀마 청년들... 한국과 비슷한 민주화 역사에 관심을"

[복건우 기자]

 지난 5일 '8888 항쟁 36주년 기념 좌담회'가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회는 성공회대 학생모임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가 기획하고 이용선 의원실 주도로 개최됐다. 이 의원을 비롯해 송채영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대표,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KOCO) 대표, 웨노에흐닌쏘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YAM) 활동가, 묘헤인 전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공보관이 참석했다.
ⓒ 이용선 의원실
"결코 좌절하지 않을 것"이란 말이 반복됐다. 그 말은 군사독재에 맞서 민주화를 외쳤던 36년 전 미얀마 시민들의 분노였고, 3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민주화를 외치는 미얀마 시민들의 염원이었다. 36년 전 '8888 민주화 항쟁(1988년 8월 8일)'과 3년 전 '군부 쿠데타(2021년 2월 1일)'는 그렇게 겹쳐졌다.

지난 5일 '8888 항쟁 36주년 기념 좌담회'가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열렸다. 국내 미얀마 청년과 활동가들이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의 관심과 지지를 호소하는 자리였다. 이날 좌담회는 성공회대 학생모임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가 기획하고 이용선 의원실 주도로 개최됐다.

이 의원을 비롯해 송채영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대표,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KOCO) 대표, 웨노에흐닌쏘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YAM) 활동가, 묘헤인 전 미얀마 국민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공보관이 참석했다.

1988년 8월 8일 미얀마 전역에서 일어난 8888 항쟁은 대학생들을 중심으로 네 윈 독재정권에 반대하며 민주주의를 요구했던 시위다. 이후 네 윈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났지만 군부는 민간 과도정부가 들어선 2011년까지 정권을 이어갔다. 10년 뒤인 2021년 2월 1일 민 아웅 흘라잉 최고사령관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시민불복종운동(CDM)이 이어졌다. 8888 항쟁 기념일마다 시민들은 시위를 벌였다. '봄의 혁명'이라고 불리는 미얀마 민주화 운동은 그렇게 시작됐다.

주목해야 할 미얀마의 현실
 한국미얀마연대 등이 지난 7월 28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미얀마 무관부 앞까지 걸어가는 도보 행진 '미얀마 군사독재 타도와 연방 민주주의 승리 걷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성공회대 학생모임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구성원들이 미얀마 청년들에게 직접 만든 책자를 전달하고 있다.
ⓒ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3년 넘게 군부 쿠데타가 장기화되는 과정에서 미얀마 전역은 식량 부족은 물론 전쟁 공포와 불안 등 복합적인 위기에 놓여 있는 상황이다. 미얀마 변방에 사는 난민들과 피란민에 대한 지원 필요성도 커지고 있다. 미얀마의 봄을 꿈꾸는 청년과 활동가들은 3년이 지난 지금 시점에서 미얀마 민주화에 연대하는 새 길을 모색해야 한다고 하나같이 강조했다.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 대표는 미얀마 쿠데타에 저항해 온 한국 시민사회 운동의 3년을 떠올렸다. 강 대표는 "2021년 2월 군부 쿠데타 반대 집회를 열고 시민사회단체모임을 결성했을 때만 해도 이 사태가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이고 석 달 뒤면 끝나겠다 싶었다"며 "그러나 해가 바뀌고 싸움이 길어지면서 구호 중심이 아닌 일상적이고 지속적인 연대의 방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강 대표는 좌담회 양 옆자리에 앉은 미얀마 청년들(웨노에흐닌쏘·묘헤인)을 번갈아 바라보고는 "이들처럼 미얀마 사람들이 한국에 3만 명 넘게 살고 있다. 어느 지역이든 마을이든 사업체든 미얀마인이 없는 데가 없다"며 "특별한 날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도 자연스럽게 함께 어울리는 일상에서 미얀마를 얘기하다 보면 그 힘이 모여 미얀마의 새로운 삶들이 만들어지는 게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얀마 지역사회를 복원하기 위한 두 가지 고민이 있었는데, 하나는 미얀마의 포스트 리더십이 정치적 리더십이 아닌 커뮤니티를 운영하는 새로운 리더십이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또 하나는 천만 명 넘는 미얀마 시민들의 생존 문제를 고민한 끝에 비스킷이라는 식량을 만들어낸 것"이라며 "차기 리더십과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 당사자들이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구심점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청년들에게 '쿠데타 이후 3년'은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을까. 이날 좌담회 발제에서는 미얀마 시민방위군과 소수민족 무장세력으로 구성된 시민혁명군이 최근 상당한 군사적 성과를 내면서 군부 정권이 국토 절반에서 행정력을 상실하는 등 향후 전쟁 구도에 변화가 생길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다. 하지만 한국에 있는 미얀마 청년들은 최근 이어지는 혁명군의 전투 상황과 승전보보다는 한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미얀마에 전할 수 있는 연대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웨노에흐닌쏘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 활동가는 "미얀마 군사위원회(쿠데타 세력)와 혁명군이 3년 넘게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상황에서 혁명군이 어느 도시를 차지했고 국토를 얼마나 차지했다는 등의 희망고문식 이야기가 자제됐으면 좋겠다"며 "전쟁이 만성질환처럼 길어지고 있다. 지금은 시민저항군의 힘이 세더라도 언제든 상황은 달라질 수 있다. 8888 항쟁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난민이 발생했고 집은 모두 전소됐고 인재들의 두뇌 유출도 심각해졌다. 점점 악화하는 이런 미얀마 상황에 주목해 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청년들은 봄의 혁명과 이전 민주화운동의 차별점을 '지속성'에서 찾았다. 서울대 국제대학원에서 석사를 수료한 묘헤인 전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NUG한국대표부 공보관은 "8888 항쟁은 경제적 불만이 원인이었고 군부 탄압 이후 빠르게 끝난 반면 봄의 혁명은 쿠데타 이후에도 국민들이 포기하지 않고 지금껏 싸우고 있다"며 "국경 너머 반군들이 있는 카렌주에 가보니 시민방위군(PDF) 대부분이 대학생들과 젊은 친구들이었다. 해외에서 공부하고 싶어도 통제된 상황에서 아무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이분들에 대한 관심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미얀마 임시정부, 합법 정부로 승인해야"
 지난 5일 '8888 항쟁 36주년 기념 좌담회'가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서 열렸다. 이날 좌담회는 성공회대 학생모임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가 기획하고 이용선 의원실 주도로 개최됐다. 이 의원을 비롯해 송채영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대표, 강인남 해외주민운동연대(KOCO) 대표, 웨노에흐닌쏘 행동하는미얀마청년연대(YAM) 활동가, 묘헤인 전 미얀마 국민통합정부 민족통합정부(NUG) 한국대표부 공보관이 참석했다.
ⓒ 이용선 의원실
군부 쿠데타가 길어지며 미얀마 시민들의 싸움이 국제사회에서 잊히는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송채영 국경없는민주주의학교 대표는 "쿠데타 초기부터 토론회와 세미나를 공동 주최하고 책자를 발간하는 등 연대 활동을 이어왔는데 미얀마를 향한 관심의 목소리가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 안타까운 마음"이라며 "한국도 비슷한 민주화 역사를 겪어 온 만큼 이웃 나라 미얀마의 폭압적인 군사 권력과 시민들의 고통을 청년 단위에서 알릴 수 있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송 대표는 또 "희생을 감수하며 싸우는 미얀마 청년들과 연대하는 한 청년으로서 한국 정부와 시민단체의 지속적인 관심과 인도주의적 지원이 중요하다고 본다"며 "태국 국경을 넘는 피란민과 미얀마 내 난민들이 지금도 많이 발생하고 있다. 이들이 최소한의 일상을 영위할 수 있도록 물자를 전달하고 지원할 필요가 있다. 또 한국 시민단체들이 대한민국 정부에 미얀마 임시정부 격인 NUG를 승인하라고 적극 요구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강인남 대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이스라엘 팔레스타인 분쟁을 언급하며 "미얀마에 대한 관심이 느슨해지는 것이 다른 전쟁들 때문이라고 말하면 안 된다. 더 많은 세계적 전쟁에 연대하지 못하는 것을 아파하고 미안해 해야 한다"며 "3년 넘게 전쟁이 이어지는 미얀마에 누구라도 무심해지고 멀어질 수밖에 없다. 다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전쟁과 아시아와 인류를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웨노에흐닌쏘 활동가는 국제연대라는 정신을 구체적으로 구현하기 위한 한국 정부 차원의 '세계시민교육'을 제안했다. 그는 "쿠데타 초창기엔 초중고 역사 수업 때 CDM에 참여하는 미얀마 청년들을 초청해 세계시민으로서 어떻게 미얀마에 연대할 수 있는지 얘기를 나누곤 했는데 지금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미얀마와 한국이 뉴스가 아닌 실제 교실에서 시민 대 시민으로 만날 수 있도록 교육부 지원이 있었으면 한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에서 '미얀마의 평화와 민주주의 회복을 위한 국회의원 모임'을 주도한 이용선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목소리를 보탰다. 이 의원은 "소수민족과 연대와 협력을 강화하는 반군부 투쟁을 보며 이번 미얀마 민주화는 결코 좌절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공적개발원조(ODA)가 실제 피해를 겪는 미얀마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 있도록 정부와 상의할 것이고 NUG를 (합법 정부로) 인정할 수 있도록 22대 국회도 외교적으로 협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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