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퀴즈' 섭외 거절했다 출연한 배우, 어머니 부탁 때문이었다

이준목 2024. 8. 8.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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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

[이준목 기자]

"<밀정>을 하기 전에는 이 직업을 계속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다. 송강호 선배님과 대립하는 장면이 첫 촬영이라 긴장을 많이 했는데, 선배님이 더 잘할 수 있게 배려를 많이 해주셨다. 쉬는 시간에 옆자리에 있던 선배님과 눈이 마주치자 '힘들지?'하고 격려해 주시는데 현장에서 그렇게 위로를 받은 게 이 일을 하면서 처음이라 감동했다. 이 영화를 하면서 '배우라는 직업을 앞으로도 더 해볼 수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아르의 탈을 뒤집어쓴 수줍은 청년, 엄태구가 담담하게 전하는 자신의 연기와 인생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자아냈다. 지난 7일 방송된 tvN <유 퀴즈 온 더 블럭>(이하 '유퀴즈')에 배우 엄태구가 게스트로 출연했다.

극도로 수줍고 내성적인 성격의 배우
 방송 갈무리
ⓒ tvN
엄태구는 강렬한 인상으로 선 굵은 악역이나 마초 캐릭터를 자주 연기했지만, 실제 성격은 극도로 수줍고 내성적인 성향을 지닌 것으로 유명하다. 엄태구는 영화 기자들이 선정한 '가장 인터뷰하기 어려운 배우'로 꼽히기도 했다. 내향형으로 유명한 선배 배우 강동원조차 "진짜 말이 없다"고 인증하는가 하면, 조인성은 "엄태구는 심신이 약하다. 예능에 섭외하려면 앰뷸런스를 불러야 한다"는 평가까지 했다.

특유의 긴장한 모습으로 등장한 엄태구는 이미 3년 전에도 <유퀴즈> 섭외를 받았지만 부담감 때문에 하루 만에 출연을 번복했던 일화를 회고하며 쑥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당시 드라마 출연 중에도 <유퀴즈> 출연을 생각하느라 연기에 제대로 몰입이 안 됐다는 속사정을 털어놓으며 웃음을 자아냈다.

엄태구는 최근 출연한 드라마 <놀아주는 여자>에서 전직 보스 출신의 모태 솔로 '서지환'을 열연하여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생애 첫 로맨틱 코미디의 주인공에 도전한 엄태구는 일각의 의구심을 불식시키며 자신만의 멜로 연기 스타일을 확립했다. '7월 배우 브랜드 평판 1위 5주 연속 출연자 화제성 1위'를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의 성공을 거두며 "태구가 로코"라는 팬들의 극찬을 끌어냈다.

엄태구는 <유퀴즈> 출연을 결심한 이유에 대해 "시청자 여러분에게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고 싶었는데, 마침 <유퀴즈>에서 또다시 섭외가 와주셨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 다른 한편으로는 아들이 <유퀴즈>에 출연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어머니의 부탁에 망설이지 않고 곧바로 출연을 결정했다고.

처음 경험해 본 로맨틱 코미디 연기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연기한 장르와 너무 달라서 겁이 났지만, 그래도 도전해 보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이어 "8개월을 촬영했는데 단 하루도 쉬운 날이 없었다. 감정을 업(UP)시키는게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 순간에 잘 해내지 못하면 나중에 더 괴롭다. 몇 번 저지르다 보니까 현장 공기에 취해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고 자평했다.

배우 고민하던 시절
 방송 갈무리
ⓒ tvN
엄태구는 배우의 길을 처음 결심한 계기에 대해 "멋있어 보여서 연기를 시작했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공군 기술학교에 재학하며 부사관으로 한때 직업군인의 꿈을 키우던 엄태구는, 우연히 친구의 제안으로 등록하게 된 연기학원을 통하여 연기자라는 새로운 진로에 눈을 뜨게 됐다. 엄태구는 군사학교를 자퇴하고 검정고시를 거쳐 건국대 영화과 1기에 합격하며 본격적인 배우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엄태구의 친형은 <콘크리트 유토피아>로 청룡영화상 감독상을 수상한 엄태화 감독이다. 류승완-류승범을 잇는 충무로의 '형제 감독-배우' 콤비로 꼽히는 두 사람도 벌써 <가려진 시간> 등 여섯 작품에서 호흡을 함께 맞춘 바 있다.

엄태구는 한때 엄태화 감독과 함께 독립영화를 촬영하던 도중 피로에 지쳐 조는 형의 모습을 보고 '짠한 감정'을 느꼈던 순간을 떠올렸다. "촬영 중 비가 오기라도 하면 형의 제작비 걱정까지 같이 됐다. 형은 수입도 없고 영화 하나에 다 걸어야 하는 상황이 불쌍해 보였다"라고 웃음을 터뜨리며 친형제다운 솔직함을 드러냈다.

<놀아주는 여자>를 촬영하면서도 <콘크리트 유토피아>에 우정 출연한 엄태구는, 형의 영화가 성공한 모습을 보면서 "형이 잘되니까 덩달아 저한테도 힘이 되더라"며 진심으로 기뻐하기도 했다.

엄태화 감독 역시 "동생은 연기를 잘하는 배우이고 어떤 배역을 맡아도 잘하니까. 앞으로도 계속해야 할 동료"라고 정의하며 친동생이기 이전에 배우로서 엄태구를 진심으로 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은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배우가 된 엄태구에게도 한때는 배우를 그만둬야 할 까라는 고민한 시절이 있었다. 엄태구는 "연기에 재능이 없는 것 같았다. 현장에서도 잘 어울리지 못했다"고 신인 시절에 겪었던 어려움을 털어놓았다.

당시 엄태화 감독이 연출부로 함께 작업했던 작품에서 일본군 단역으로 출연했던 엄태구가 딱 한 마디에 불과한 대사를 제대로 소화하지 못해 촬영이 지연되면서 한동안 트라우마를 겪기도 했다.

엄태구는 "준비를 아무리 열심히 해도 긴장감은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 계속해서 그러니까 이 일이 나와 안 맞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어느 날은 촬영 현장에 가느라 터널을 지나는데 마치 무덤에 들어가는 느낌이 들기도 했다"며 막막했던 순간을 회고했다.

한편으로 배우 생활을 하면서 작품이 들어오지 않아 수입이 없었던 탓에 방세가 무려 24개월이나 밀렸던 순간도 있었다. 마음씨 따뜻했던 집주인은, 엄태구가 열심히 산다고 격려하며 오히려 비타민을 챙겨주기도 했다.

엄태구는 "(월세 연체가) 24개월까지 갈 거라고는 생각을 못 했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계속 괜찮다고 해주시니까. 고마운 마음에 눈이 오면 미리 계단을 쓸어놓거나 택배가 오면 문 앞에 올려드리곤 했다. 당시에는 그게 제가 할 수 있는 보답이었다. 그래서 그때는 빨리 잘되고 싶었다"고 회상하며 미소를 지었다.

대선배 송강호의 배려
 방송 갈무리
ⓒ tvN
대선배 송강호와 공연한 영화 <밀정>은 엄태구의 커리어에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이다. 엄태구는 비열하고 잔인한 일본 경찰 하시모토역을 열연하며 쟁쟁한 선배 배우들에게도 밀리지 않는 '신스틸러'로 강렬한 존재감을 드러냈다.

당시 엄태구는 극 중 날카로운 캐릭터에 몰입하기 위해 매 사진을 계속 보기도 했다. "최대한 잘하려고 발악을 했던 것 같다. 매 사진을 보고 있으면 그렇게 닮아갈 것 같았다"며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고 싶어 최선을 다했던 순간을 떠올렸다.

<밀정>에 출연하기 전까지만 해도 배우라는 직업을 계속해야 할지를 놓고 고민이 많았다는 엄태구는, 이후로 연기와 배우에 대한 생각이 달라지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당연히 안될 줄 알았는데 <밀정> 오디션에 합격한 것부터 기적이었다. 송강호 선배님과 첫 촬영을 하면서 막 들이대는 연기를 하느라 언짢으실까 걱정했는지, 더 잘할 수 있게 격려해 주셔서 많은 힘이 됐다"고 털어놓았다.

당시 송강호는 부담감에 힘들어하는 후배를 위하여 현장에서 따뜻한 격려를 아끼지 않았고, 술을 못 마시는 엄태구를 회식 자리에 초대하며 다른 배우들과도 가까워질 수 있게 배려하는 등 많은 도움을 줬다. 엄태구는 "송강호 선배님의 존재 자체가 큰 힘이 됐다"며 고마움을 전했다.

또한 <밀정>에 이어 다시 한번 송강호와 호흡을 맞추게 된 <택시운전사>에서는 짧은 출연에도 영화 최고의 명장면을 함께 만들어냈다. 광주의 상황을 취재한 기자를 태우고 서울로 올라가던 택시 운전사(송강호)를 검문하는 군인 역할로 특별 출연한 엄태구는 악역을 연상시킨 것과 달리 수상함을 감지하고도 두 사람을 그냥 보내주며 진실을 알리는데 기여해 깊은 인상을 남겼다.

엄태구는 영화 속 검문 장면을 회고하면서 "연기라는 걸 알고 하는데도 그 순간 제 몸에 소름이 돋았다. 그 장면을 찍고 '이거는 됐다'는 생각이 들더라. 진짜로 한 것처럼 몰입하게 되는 순간들이 있다"며 뿌듯함을 드러냈다.

이제는 어느덧 성공한 배우로서 자리 잡은 엄태구지만, 아직도 특유의 내성적인 성격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엄태구는 초등학교 때 웅변학원에 갔다가 부끄러움에 울면서 내려갔다는 이야기에서, 팬들이 보내준 커피차를 받고 쑥스러워 매니저를 대신 내보내는가 하면, 짝사랑하던 여자친구와의 카페 데이트에서 긴장해 말을 못 해 지친 상대가 잠이 들었다는 실화 등이 모두 사실이라고 인정하며 폭소를 자아냈다.

엄태구는 작품 속에서의 강렬한 캐릭터와는 달리, 연기를 쉬는 날에는 또래 청년처럼 매일 운동을 마치고 좋아하는 추어탕을 먹으러 다닌다는 소소한 일상의 낙을 전했다. 촬영을 마친 엄태구는 <유퀴즈> MC들에게 보내는 영상 메시지에서 "잘해주셔서 감사드리다. 긴장을 너무 많이해서 다시 한번 하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아쉬워하며 특유의 수줍은 미소로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한편, 예고편에서는 다음 주 <유퀴즈>게스트이자 영화 <낙원의 밤>에서 함께 호흡을 맞춘 차승원과 엄태구의 깜짝 재회를 예고하며 기대감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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