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별·지역·계급 격차 딛고 일어선 '욕망'의 소녀
[김성호 기자]
흔히 이야기, 또 소설의 3요소를 가리켜 인물과 사건, 그리고 배경이라 한다. 여기서 인물이란 그저 살아있는 인간이란 뜻이 아니다. 욕망하는 인간이다. 욕망하지 않는 인간도 이야기의 주인공일 수가 있겠으나 그런 캐릭터가 치열한 콘텐츠의 시장에서 성공한 사례는 극히 드물다. 사람들은 욕망하는 인간, 그 욕망을 관철하려 세상의 장벽과 부딪치고 싸우는 이야기를 즐기는 법이니 말이다.
욕망은 인간을 추동한다. 욕망은 인간을 멈춰있지 못하도록 한다. 몸을 일으켜 움직인다. 도전하고 좌절하며 부딪치고 이뤄낸다. 그 과정에서 이야기가 탄생한다. 볼 만한 이야기와 그저 그런 이야기, 아름다운 것과 추잡한 것이 모두 있겠으나 무튼 이야기가 그로부터 일어난다.
▲ 디베르티멘토 포스터 |
ⓒ 찬란 |
마리-카스티유 망시옹-샤르의 <디베르티멘토>도 그와 같은 영화다. 1995년 파리 교외 서아시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난 자히아 지우아니(울라야 아마라 분)가 파리 명문 음악학교에 입학해 지휘자를 꿈꾸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으로, 실화를 배경으로 한다.
감독은 영화 가운데 자히아의 욕망을 선명히 드러낸다. 자히아는 지휘자를 꿈꾼다. 음악을 좋아하는 아버지 아래서 자라 자연히 음악을 하게 된 그녀는 쌍둥이 동생처럼 악기를 연주하는 것으로 만족하지 않는다. 비올라는 그녀에겐 하나의 악기일 뿐, 그를 넘어 악단 전체를 지휘해 음악을 만들어가는 지휘자가 되길 꿈꾼다.
현실의 장벽은 자히아에겐 극복해야만 할 것이다. 지휘자가 되고 싶다는 욕망이 너무나도 강렬하기 때문에 포기는 고려할 사항이 되지 못한다. 클래식 음악 자체가 많은 돈이 드는 상류층의 일이란 것, 또 최상급 지휘자가 전부 남자란 이유로 지휘가 마치 남자의 전유물처럼 여겨져 왔다는 것 등이 모두 그렇다. 편견과 실체가 있는 차이가 혼란하게 뒤엉킨 가운데서 자히아는 온 힘을 다해 장벽을 부수는 망치질을 시작한다.
영화는 수차례에 걸쳐 자히아의 욕망을 스스로 말하게 한다. 학교 악단 지휘자 자리는 좀처럼 자히아에게 돌아오지 않는다. 제 실력이 모자라다 여기지 않는 자히아지만 그렇다고 상대보다 우월한 것도 아니다. 고만고만한 실력 가운데서 교장은 자히아가 여자란 이유로 그녀에게 기회를 허락하지 않는다.
▲ 디베르티멘토 스틸컷 |
ⓒ 찬란 |
"내 오케스트라를 갖고 싶어."
그 단순한 문장이 보는 관객들을 격동케 한다. 선명한 욕망을 제 입으로 꺼내는 캐릭터에겐 특별함이 있다. 욕망을 남 앞에 거침없이 말하고도 위화감이며 거부감이 들지 않는 캐릭터는 그리 흔치 않다. 가장 정순한 꿈의 형태로 자히아의 욕망이 관객 앞에 보여지는 순간이다.
영화는 여러모로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명작 <밀리언 달러 베이비>를 떠올리게 한다. 30살이 넘은 여자 매기(힐러리 스웽크 분)가 나이든 트레이너 프랭키(클린트 이스트우드 분)를 찾아와 글러브를 낀다. 저를 선수로 키워달라는 매기의 요청에도 프랭키는 좀처럼 그녀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유야 분명하다. 선수로는 이미 퇴물 소리를 들을 나이, 그것도 한 수 아래로 여겨지는 여자 복서를 키우는 일이 프랭키의 성에 차지 않는 탓이다.
"난 트레이너를 원해요. 동정이나 호의 따윈 싫다고요."
▲ 디베르티멘토 스틸컷 |
ⓒ 찬란 |
죽어라 열심히 하는 건 기본, 어떤 의문이 있어도 군말 없이 '네'라고 말하고, 스스로가 여자란 사실도 잊겠다고 매기는 약속한다. 그렇게 그녀는 제게 더없이 간절했던 트레이너를 얻는다.
물론 이 영화는 너무나 훌륭한 나머지 그저 어느 캐릭터의 순수한 욕망과 그것이 이뤄지는 모습만을 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 전반부, 그러니까 매기가 제 성취를 향해 내달리는 과정만큼은 <디베르티멘토>와 제법 닮아있다. <디베르티멘토>가 훌륭한 이야기의 전형을 얼마간 품고 있다는 뜻이겠다.
매기가 그러했듯 자히아도 제게 더없이 간절했던 스승 세르주 첼리비다케(닐스 아르스트럽 분)을 얻는다. 루마니아 출신의 세계적 지휘자 세르주의 눈에 들다니 천군만마를 얻은 꼴이다. 그러나 세르주 또한 프랭키가 그랬듯 자히아에게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복싱이나 지휘나 여성에게 우호적인 분야는 아닌 탓이다.
그나마 복싱은 남성복서들과 달리 여성 복서가 나설 무대가 나뉘어 있다. 그러나 지휘는 다르다. 지휘봉 하나를 두고 남녀가 함께 쟁탈전을 벌여야 한다. 이미 세상의 탁월한 지휘자는 거의 전부가 남자다. 세계적 수준에 그래도 근접한 여자 지휘자가 있다고는 하지만 어디까지나 예외로 치부된다.
▲ 디베르티멘토 스틸컷 |
ⓒ 찬란 |
영화는 그저 성별에 갇히지 않는다. 파리와 근교 도시 스탱을 오가며 지역격차와 인종, 빈부의 계급차를 현실적으로 내보인다. 좀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두 세계가 자히아를 통해 교류하는 모습을, 그로부터 예술적 영감을 얻는 과정을 비춘다. 클래식음악이 고여 있는 상류층의 고상한 취미활동으로 고립되지 않도록 자히아와 친구들이 애쓰는 과정이 영화에 자연스레 스며든다.
<디베르티멘토>를 서사적으로 보자면 <밀리언 달러 베이비>의 전반부 정도에 해당한다. 자히아가 대단한 지휘자가 되거나 세상의 장벽을 다 깨부수는 이야기까지 나아가진 못한다. 그렇다고 <밀리언 달러 베이비>가 그러하듯 극적 전환을 이루고, 관객의 세계를 뒤흔드는 펀치를 날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이 영화엔 남다른 힘이 있다. 바로 음악이다. 자히아가 음악에 반하고, 음악으로 고통 받고, 음악으로 추동되는 과정을 관객이 옆에서 함께 지켜본다. 그 과정의 연출이 하나하나 꽤나 인상적이어서 관객은 자히아의 세계와 그녀가 이루려는 음악적 세계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대하게 된다. 무엇보다 삽입된 생상스와 모차르트의 음악이 관객의 감성에 자연스레 젖어든다. 그저 앨범 하나를 듣는 것보다는 더한 감동을 전한다. 곡을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만큼의 지식 또한 더해지니 영화를 보고 남는 것이 그리 적지는 않을 듯하다.
세상엔 응원하게 되는 열망이 있다. 오케스트라를 갖고 싶어 하는 교외에 사는 이민자 가정의 딸 자히아 앞에서 나의 꿈이 마주한 장벽이 높다고만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자히아는 마침내 제 욕망을 이루었다. 디베르티멘토는 오케스트라를 넘어 문화사업을 하는 사업체이자 음악학교로 성공적으로 자리 잡았다. 다른 이의 욕망이 이뤄지길 바라는 마음, 영화를 본다는 건 그와 같은 마음을 갖는 일이기도 하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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