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쏟아지는 야유에 당당히 응수' 박태준…"끝까지 최선 다하는 게 예의" [파리 인터뷰]
(엑스포츠뉴스 프랑스 파리, 김지수 기자) 한국 남자 태권도의 새 역사를 쓴 박태준(20·경희대)이 2024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급 결승에서 발생한 일부 관중들의 야유 논란에 대해 자신의 확고한 철학을 밝혔다.
박태준은 8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의 그랑 팔레에서 진행된 2024 파리 올림픽 남자 태권도 58kg급 메달리스트 공식 기자회견에서 "경기 때 상대 선수가 포기(기권)하겠다는 의사를 밝히기 전까지 나도 최선을 다하는 게 예의라고 배웠고 그렇게 경기에 임했다"라고 말했다.
박태준은 이날 파리 올림픽 남자 태권도 58kg급 결승에서 아제르바이젠의 마데고메도프를 이겼다. 스코어 2-0(9-0 13-1)으로 앞서던 가운데 상대 선수의 부상 속에 기권승을 따냈다.
박태준은 올해 6월 세계태권도연맹(WT)이 집계한 올림픽 겨루기 랭킹 5위였다. 26위 마고메도프와 비교하면 객관적인 기량에서는 앞선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올림픽 무대 단판 승부에서 세계랭킹은 큰 의미가 없었다. 박태준은 준결승에서 현재 이 종목 세계랭킹 1위이자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혔던 튀니지의 젠두비를 라운드 점수 2-0(7-4 6-3)으로 격파하는 파란을 일으켰다.
마고메도프도 마찬가지였다. 준결승에서 맞붙은 2020 도쿄 올림픽(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2021년 개최) 남자 58kg급 금메달을 목에 걸었던 세계랭킹 4위 이탈리아의 비토 델라킬라를 꺾었다.
파리 올림픽 태권도 남자 58kg 결승전은 이렇게 이변의 주인공들이 금메달을 놓고 다투는 흥미로운 그림이 연출됐다. 박태준이 경기 내내 한 수 위 실력을 뽐냈고 포디움 가장 높은 곳에 오르는 영예를 누렸다.
박태준은 결승전 1라운드에서 2-0 리드를 잡고 게임을 쉽게 풀어갔다. 하지만 1라운드 종료 1분 7초 전 마고메도프와 동시에 발차기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서로의 다리가 강하게 엉키며 충돌했다.
마고메도프는 왼쪽 정강이에 강한 충격을 느낀 듯 매트에 드러누워 통증을 호소했다. 아제르바이잔 코치가 황급히 벤치에서 뛰어나와 간단한 응급처치를 했지만 마고메도프는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다.
마고메도프는 올림픽 결승전을 부상 때문에 기권하고 싶지 않은 듯했다. 심판에게 경기를 계속 뛰겠다는 신호를 보냈다. 심판도 마고메도프의 상태를 살핀 뒤 경기를 속행시켰다.
박태준은 마고메도프가 발휘한 투혼에 잠시 고전했다. 마고메도프는 2라운드 시작 직후 적극적인 공세를 펼쳤다. 하지만 마고메도프의 움직임은 조금씩 활력을 잃었고 박태준이 다시 주도권을 되찾았다.
박태준은 2라운드 종료 1분 2초 전 마고메도프의 몸통을 겨냥한 발차기 공격이 성공하면서 사실상 승부에 쐐기를 박았다. 이때 마고메도프가 통증을 호소하면서 쓰러졌고 박태준도 지체 없이 공격을 이어갔다.
관중석에서는 넘어진 상대를 공격한 박태준을 향한 야유가 터져나왔다. 마고메도프는 이후 더는 경기를 정상적으로 치를 수 없을 정도로 통증이 커진듯 기권을 결정했다.
박태준은 당시 상황을 돌아보며 "경기에 집중하고 있어 야유가 있었던 건 전혀 몰랐다"며 "마고메도프 선수의 왼발과 나의 오르발이 서로 발차기를 하는 과정에서 부딪쳤다. 원래 부상이 있었던 부위인지 순간적인 충격에 다친 건지는 모르겠다"고 돌아봤다.
정을진 태권도 대표팀 코치도 "유럽 선수들이 경기 중 (작은 충격에도) 엄살을 이푸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조금만 느슨하게 플레이하면 얼굴 쪽을 공격하는 경우가 많다"며 "그런 경우가 생기지 않도록 2라운드 때도 박태준에게 확실하게 플레이를 가져갈 것을 주문했다"고 설명했다.
박태준은 다만 결승전 종료 후 진행된 시상식에서는 다리를 절뚝이며 단상에 오르는 마고메도프를 부축하고 포옹을 나눴다. 마고페도프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은메달을 목에 걸고 박태준과 함께 시상식을 즐겼다.
박태준은 "마고메도프는 원래 국제대회에서 자주 봤던 선수다. 내가 '미안하다'라고 사과를 했더니 '당연히 경기 중에는 (서로 몸이) 부딪칠 수 있다'고 말하면서 내게 축하한다고 했고 서로를 격려했다"고 했다.
일부 관중들의 야유 속에 그랑 팔레의 분위기가 잠시 어색해 지기도 했지만 정작 박태준과 마고메도프 사이에는 아무런 문제도 감정도 없었던 셈이다.
한편 한국은 태권도가 올림픽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2000 시드니 대회 이후 처음으로 남자 58kg급에서 금메달리스트를 배출하게 됐다. 남자 태권도의 금메달은 2008 베이징 대회 이후 16년 만의 쾌거다. 이와 함께 2020 도쿄 대회에서 전 종목 '노골드'로 태권도 종주국의 체면을 구겼던 아쉬움도 씻어냈다.
박태준은 "도쿄 올림픽 때 한국에서 금메달이 나오지 않아 태권도인으로서 마음이 아팠다"며 "내가 파리에서 대한민국에 금메달을 안길 수 있어 감사하고 영광이다"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초등학교 입학 전부터 친구를 따라 도장을 다니며 태권도를 접한 박태준은 5학년 때부터 본격적으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등학교 입학 직후까지도 체격이 작은 편이었지만 이후 키가 180㎝까지 자라면서 성장세도 가팔라졌다. 이대훈 대전시청 코치를 따라 한성고에 입학할 정도로 이 코치를 존경하는 박태준은 "이제 한성고에 올림픽 금메달을 추가할 수 있게 됐다"고 흡족해했다. 한성고 출신의 '태권도 스타'인 이 코치의 올림픽 최고 성적은 은메달이다. 2012 런던 대회 결승에서 '호적수' 호엘 곤살레스 보니야에게 패해 금메달 대신 은메달을 목에 걸었다.
사실 박태준은 파리에 오는 길도 쉽지 않았다.
한국 태권도의 간판으로 꼽혀온 4살 선배 장준과 같은 체급이었기 때문이다. 장준은 180cm대 초반인 키도 박태준보다 2∼3cm 크다. 지난 2월 올림픽 남자 58kg급 선발전 전까지 두 선수의 전적은 6전 6승이다. 장준이 모두 이겼다. 2020 도쿄 올림픽 동메달리스트이자 지난해 열린 항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리스트 장준의 벽은 너무 높았다.
올림픽에는 한 체급에 국가당 1명만 출전할 수 있다. 그런대 파리행 티켓의 주인공을 가르기 위해 치른 선발전이자 7번째 맞대결에서 박태준이 드디어 이겼다. 3판 2승제로 펼쳐진 선발전에서 1, 2경기를 연달아 잡았다.
오른발잡이인 박태준은 평소 왼발을 앞에 위치하고 경기를 치르지만 장준과 선발전에서는 오른발을 앞에 뒀다. 정면 승부로는 겨루기의 달인 장준을 이기기 어렵다는 판단에 모험수를 뒀고, 이 전략이 적중한 셈이다. 박태준은 경기력 못지 않게 영특함이 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태권도가 '경기'인 만큼 점수를 따고 상대를 수세로 몰기 위한 전략이 중요함을 안다.
그런 치밀한 전략이 파리 올림픽에서 적중했고, 매 경기 화려한 경기력으로 태권도의 진수까지 선보이며 금메달을 땄다.
사진=연합뉴스
김지수 기자 jisoo@xports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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