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정부 국정 반전카드…국민 삶 걸린 연금개혁 나서라" [집권 후반기 윤석열표 정책]
역대 대통령에게 여름 휴가는 단순한 쉼이 아닌 정국 구상을 위한 시간이었다. 지난 5일 취임 후 세 번째 여름 휴가를 떠난 윤석열 대통령에게도 마찬가지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7일 통화에서 “윤 대통령의 고심이 생각보다 깊은 것 같다”며 “언론에 공개된 일정은 휴가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라고 귀띔했다. 윤 대통령은 휴가 첫날 경남 통영 중앙시장을 찾은 데 이어 6일과 7일엔 경남 진해 해군기지에 머물며 군 장병을 격려했는데, 언론에 공개되지 않은 시간의 대부분은 하반기 국정운영 구상에 쓰이고 있다고 한다.
4·10 총선 이후 대통령실 개편과 순차 개각을 어느 정도 마무리한 윤 대통령은 휴가 복귀 후 대국민 직접 정치에 나설 전망이다. 대통령실은 교육·노동·연금·의료 개혁 등 기존의 4대 개혁에 더해 저출생 개혁까지 포함한 ‘4+1 개혁’ 과제를 윤 대통령이 8월 말 국민에게 직접 설명하는 ‘국정 브리핑’을 검토하고 있다. 취임 이후 개혁의 중요성을 일관되게 강조해온 윤 대통령은 TV로 생중계되는 기자회견을 통해 남은 임기 동안 개혁 완수에 매진하겠다는 의지를 강조할 것으로 보인다. 이에 앞서 8·15 경축사를 통해선 정부의 공식 통일 방안인 민족공동체통일방안 제시 30주년을 맞아 새로운 통일 구상을 밝히고, 최근 압록강 홍수로 ‘특급재해비상지역’이 선포될 정도로 큰 수해를 입은 북한에 인도적 지원 의사를 밝히며 남북적십자 창구를 통한 협의 의지를 내비칠 가능성도 거론된다.
이처럼 휴가 복귀 뒤 국정에 매진할 윤 대통령에게 전문가들은 대통령의 어젠다, 즉 ‘윤석열표 정책’을 발굴하고 추진해 성과를 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은 “집권 3년 차를 맞았지만 윤석열 정부의 대표 상품, 캐치프레이즈가 무엇인지 잘 떠오르지 않는 건 심각한 문제”라고 진단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 연구소장도 “온통 정치적인 이슈만 난무하고, 대표적인 윤석열표 정책 성과가 떠오르지 않는 게 큰 문제”라며 “정책·민생 이슈 부각에 더 많은 힘을 쏟아야 한다”고 말했다.
실제 역대 대통령은 여름 휴가 뒤 대형 정책 어젠다를 던져 국정운영의 반전 카드로 쓰곤 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임기 첫 해인 1993년 휴가에서 돌아와 금융실명제를 전격 시행했고, 이명박(MB) 전 대통령은 임기 2년차인 2009년 광복절 경축사를 통해 ‘친서민 중도실용’으로의 국정기조 전환을 천명하고 과감한 정책 승부수를 던졌다.
전문가들은 윤석열 정부가 당장 실천할 수 있고, 잘 해낼 수 있는 대표적 정책 어젠다로 연금 개혁을 꼽는다. 최진 소장은 “연금 개혁은 전 국민의 삶과 밀접한 민생 이슈”라며 “윤 대통령이 먼저 안을 던지고 이슈를 적극적으로 주도해야 야당의 탄핵 공세와 특검 추진 등 네거티브 이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엄경영 시대정신연구소장도 “4+1 개혁과 같이 두루뭉술한 비전을 제시할 때는 이미 한참 지났다”며 “임기 내에 마무리할 수 있는 구체적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21대 국회 임기 종료 직전인 지난 5월 말 이재명 당시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윤 대통령과 영수회담을 제안하며 국민연금 보험료율(9%→13%)과 소득대체율(40%→44%)을 인상하는 모수 개혁부터 먼저 하자고 기습 제안했다. 하지만 대통령실과 국민의힘은 “정략적 꼼수”라고 비판하며 협상에 응하지 않았었다. 당시 여권은 “다른 공적 연금과의 통합 등 국민연금 구조 개혁까지 포함한 제대로된 개혁안을 총선 이후 내놓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실제 여권에선 정부가 조만간 정부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하면 윤 대통령이 국민 앞에 서서 국민연금 개혁의 당위성을 직접 설명하는 시나리오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총선 이후 국정수행 지지율 30%선이 뚫린 윤 대통령에게 ‘윤석열표 정책’은 지지율 회복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 대표적인 대통령의 어젠다 성공 사례가 MB다. 취임 초 광우병 파동으로 직격탄을 맞은 MB는 취임 6개월도 안 돼 지지율이 20% 초반대로 떨어지는 위기를 겪었다. 하지만 친서민 중도실용 노선을 발판으로 동반 성장과 공정사회 등을 대표 브랜드로 내세우며 50%대까지 지지율을 반등시키는 역주행에 성공했다. 최병천 소장은 “재벌의 일감 몰아주기 제재와 서민 금융, 보금자리 주택 정책을 처음 제안한 정부가 바로 MB 정부”라며 “끊임없는 정부 입법으로 정부의 정책을 국민에 각인시키고 이슈를 주도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총선 대패로 임기 초반과 마찬가지로 거대 야당 민주당을 상대해야 하는 윤 대통령에겐 과거 대통령에 비해 국회의 협조를 얻는 게 더욱 절실하다. 게다가 이른바 ‘윤·한 갈등’을 겪었던 한동훈 대표가 국민의힘을 이끌고 있는 만큼 여당 또한 ‘적극 관리해야 할 대상’으로 꼽힌다. 그런 만큼 여·야·정 협의체 상설화 등을 통해 대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여론조사업체 에스티아이의 이준호 대표는 “윤 대통령이 지지율을 회복하려면 결국 국회를 통한 입법으로 성과를 내야 한다”며 “이재명 전 대표, 한동훈 대표와 함께 머리를 맞대는 게 필수”라고 말했다.
허진·박태인 기자 park.tae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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