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시각] “해파리 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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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10분 더 나간 작은 섬에서 보낸 여름 휴가.
전국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폭염 속에 걱정하며 도착한 섬 바다는 뭍에서 멀어서인지 수심이 얕은데도 계곡처럼 차갑고 맑았다.
그 순간 바닷속에서 헤드랜턴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해파리가 포착됐다.
'높아진 수온에 한반도 해역 가까이 독성 해파리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수년째 봐서 '다 아는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직접 무더위와 해파리를 동시에 눈으로 보고 겪고 나서야 제대로 현실감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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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도에서 배를 타고 10분 더 나간 작은 섬에서 보낸 여름 휴가. 전국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폭염 속에 걱정하며 도착한 섬 바다는 뭍에서 멀어서인지 수심이 얕은데도 계곡처럼 차갑고 맑았다. 간간이 부는 살랑바람도 꽤나 선선해 햇볕 아래 해변에 앉아 있는 것도 할 만했다. 그런데 이틀째 오후가 되자 그곳에서도 선선한 바람이 사라졌다. 바닷물의 찬 기운도 확연히 덜해졌다. 수영하기는 더 좋아졌다며 아이들은 물속에 뛰어들었다.
뜨겁지만 평화롭던 순간을 깬 건 튜브 위에 엎드려 스노클링 마스크를 끼고 물속 풍경을 들여다보던 초등학생 아들의 외침이었다. “해파리야, 해파리.” 소리치는 아이의 목소리는 다급했다. 해변에서 몇 걸음이면 닿을 가까운 얕은 물에서 왜 스스로 나오지 못하고 구해 달라 하느냐고 되레 외쳤다가 주변을 둘러보고서야 황급히 달려가 튜브를 끌고 나왔다. 조금 전까지도 투명하던 바닷물 곳곳에 둥실둥실 비닐봉지 같은 해파리가 무수히 떠 있었다. 섬 해변 주위를 해파리 떼가 에워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다행히 해파리들은 난류를 타고 일본 쪽 먼바다로 빠져나갔는지 순식간에 사라졌다.
다시금 해파리의 실체를 확인한 건 그날 밤이었다. 한밤중 선착장에 낚싯대를 드리우고 있자니 선선한 바람 속에 ‘훅’ 하는 뜨끈한 바람이 느껴졌다. 오묘한 느낌이었다. 그 순간 바닷속에서 헤드랜턴 불빛을 받아 반짝이는 해파리가 포착됐다. 까만 밤바다에 아들 몸집보다 더 큰 듯한 투명 핑크빛 생명체가 수많은 촉수를 흔들어대며 헤엄치는 모습은 홀릴 듯 신비로워 한참을 촬영하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저게 바로 그 독성 강하고 최대 200㎏까지 커진다는 ‘노무라입깃해파리’라는 사실이 인지돼서다. ‘높아진 수온에 한반도 해역 가까이 독성 해파리가 기승을 부린다’는 뉴스를 수년째 봐서 ‘다 아는 이야기’로 생각했는데, 직접 무더위와 해파리를 동시에 눈으로 보고 겪고 나서야 제대로 현실감이 생겼다.
업무에 복귀해 찾아보니 남해부터 동해까지, 예년과 차원이 다른 해파리 목격담들이 즐비했다. 동남아 등 더운 바다에서만 발견되던 바다물벼룩 피해마저 등장했다. 연일 이어지는 불볕더위도 역대급 기록을 계속 경신하고 있다. 지난 7월은 국내 기상 관측 사상 가장 긴 열대야가 나타났다. 강릉과 속초 등에서는 밤 최저 기온이 30.4도에 이르러 최고 수준을 기록하기도 했다.
문제는 이런 기록들에 경각심을 갖지 못하는 안일함이 생기고 있다는 것이다. 매일같이 날아오는 폭염특보·호우특보조차 경보가 아닌 일상적인 예보처럼 여겨진다. 이런 안일함엔 격차가 있다. 냉방기기를 작동하는 실내에 안온하게 있는 이들은 전기료를 걱정할지언정 “바깥은 위험하다”며 기록적인 폭염을 피할 수 있다. 기상 이변을 수치와 기록으로 바라보며 ‘인식하는’ 쪽에선 시뻘겋게 달아오른 수온계 사진을 한편으론 ‘당연해진 풍경’ 정도로 여긴다. 37도의 날씨에 야구 경기를 강행했다가 관중이 쓰러지는 사고가 나서야 취소한 데도 그런 안일함이 작동했을 것이다.
반면 뜨거운 아스팔트 위 공사에 투입되고, 논밭에서 일을 하고, 도로 청소를 하고, 쓰레기를 치우고, 배달을 하고, 냉방기기 하나 없는 쪽방서 몸을 뉘어야 하는 이들에게 날씨는 숫자나 뉴스가 아닌 ‘위기 현실’이다. 기후변화를 늦추거나 되돌리기 위한 노력과 함께 ‘기후 적응’이 시급하다는 건 이런 현실 때문이다. 기후가 달라지고 있는 상황에 익숙해지는 적응은 일부 여력이 있는 이들의 ‘기후 위기 회피’에 불과하다.
“강원도에 해파리가 늘고 있대”라는 남 이야기는 누구에게나 어느 순간 “해파리 떼가 나타났다”는 내 일이 될 수 있다.
조민영 온라인뉴스부장 my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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