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 책 도둑질의 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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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통계자료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3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한 종수가 3종 이상인 출판사 293곳을 대상으로 경영 상황을 조사한 것이다.
국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박이정출판사의 대표는 올해까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호전되지 않을 땐 학술교재 출판을 접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소비자들은 무겁고 부피가 큰 학술 교재 대신 전자책을 원하지만 막상 이를 판매하는 출판사는 찾기 힘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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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통계자료 하나가 발표됐다. 지난 3년간 국립중앙도서관에 납본한 종수가 3종 이상인 출판사 293곳을 대상으로 경영 상황을 조사한 것이다. 이들의 평균 매출액은 5억3100만원으로 지난해보다 4.8% 줄었다. 출판의 위기가 운운되는 시대에 어찌 보면 당연해 보인다. 하지만 눈에 띈 것은 단행본(2.6%), 교육(6.5%)에 비해 학술·전문(10.0%)의 감소 폭이 훨씬 크게 나타났다는 점이다. 영업이익 면에서도 학술·전문 출판사는 전년 대비 23.7%나 감소해 다른 부문을 압도했다. 학술·전문 출판사들은 대개 대학을 중심으로 학술 교재를 출판하는 곳이다. 출판계에서는 공공도서관의 구입 예산 감소와 함께 대학가에 횡행하는 불법 복제 스캔 때문이라고 이구동성으로 지적한다.
예전 대학가에도 복사방이라는 곳이 있었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이 비싼 교재의 복사본을 만들어 쓰곤 했다. 하지만 지금처럼 만연하지는 않았다. 요즘 학생들은 종이책이 아니라 패드나 노트북에 불법으로 스캔된 PDF 파일을 넣고 다닌다. 스캔 복제물은 종이책 복사본과 달리 아주 손쉽게 광범위한 공유가 가능하다. 대학가에서 셀프 스캔방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고, 심지어 스마트폰 앱을 이용하면 쉽게 무료로 책을 스캔하고 공유할 수 있다. 엄연한 책 도둑질이다.
이런 현상은 통계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해 한국저작권보호원이 대학생 및 대학원생 2000명을 대상으로 대학교재 불법복제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61.9%가 전자 스캔본 교재를 이용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스캔본 교재 이용 과목 수는 평균 3개였다. 확보 경로는 ‘이메일과 USB’가 44.6%로 가장 많았고, 포털 블로그나 대학가 자료 공유 사이트 등 커뮤니티(12.5%)와 SNS(5.4%) 등이 뒤를 이었다. 특히 거의 모든 수업이 온라인으로 대체됐던 코로나19 이후 불법 스캔 교재의 공유가 더욱 확산된 것으로 보인다. 교재의 불법 복제와 공유로 인해 학술 출판사들은 생존의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최근 20년 사이 학술 관련 서적 출판사의 경우 80~90%가 폐업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국문학 서적을 중심으로 오랜 역사를 가진 박이정출판사의 대표는 올해까지만 상황을 지켜보고 호전되지 않을 땐 학술교재 출판을 접겠다고 밝히기도 했다.
출판사들의 아우성에도 개인이나 사회나 문제의 심각성을 제대로 인식하고 있다는 징후는 보이지 않는다. 소비자인 학생들은 불법 저작물을 이용하면 처벌받을 수 있다는 인식이 부족하다. 딱히 죄책감도 없는 듯하다. 불법 스캔 교재를 텔레그렘 등에서 공유하는 운영자들은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하지 않고 소득, 지역별 교육 격차 해소를 위해서”라고 당당히 말하기도 한다. 정부와 관련 기관들도 대책 마련에 나선다고는 하지만 예산 타령만 할 뿐 이렇다 할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불법 복제물 단속을 위해 ‘저작권 범죄 과학수사대’를 설치하고 저작권 보호를 위해 ‘K-저작권 지킴이’를 출범시켰지만 영상, 음원, 웹툰 등 잘나가는 ‘K-콘텐츠’가 대상일 뿐 출판 분야는 소외된 것이 현실이다. 출판업계의 자구 노력도 필요하다. 소비자들은 무겁고 부피가 큰 학술 교재 대신 전자책을 원하지만 막상 이를 판매하는 출판사는 찾기 힘들다. 불법 스캔 교재의 범람에서 보듯 수요는 넘치지만 공급이 없다는 얘기다. 학술 출판의 위기는 지식 생태계 붕괴로 이어지고 국가경쟁력에도 심각한 영향을 초래한다. 먼 미래의 일처럼 보이지만 어느 순간 닥칠 수 있다.
맹경환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khmae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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