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구글 독점 수술 나선 미국, 아직은 혁신이 더 필요한 한국

2024. 8. 8. 0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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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글의 최고경영자 순다르 피차이가 지난해 10월30일 재판에 참석한 뒤 워싱턴의 연방법원을 떠나고 있다. AP=연합뉴스


빅테크에 ‘독점 기업’ 판결…언론사 저작권 침해 소송도


소비자·산업 발전 위해 한국 플랫폼 규제 아직 신중해야


미국 연방지방법원이 ‘검색의 제왕’ 구글을 독점기업으로 판결했다. 구글이 자사 검색엔진을 아이폰의 기본 검색엔진으로 탑재하기 위해 2022년에만 애플에 200억 달러를 지급하는 등 독점 지위를 유지하려고 연간 수천억 달러를 썼다는 법무부 주장을 법원이 인정했다. 아직 1심이지만 빅테크를 겨냥한 유사 소송에 큰 영향을 미칠 ‘기념비적 판결’이라고 미국 언론들은 평가했다. 판결이 최종 확정되면 구글이 쪼개지거나 일부 사업이 매각될 수 있다.

미국은 134년 전 세계 최초의 독점규제법인 셔먼법을 만든 나라다. 자유방임을 기본 이념으로 삼은 나라가 민간 기업 활동에 개입하는 법을 만든 것은 독점 대기업의 폐해가 그만큼 컸기 때문이다. 록펠러의 석유회사 스탠더드오일과 미국 전역에 서비스를 제공하던 AT&T를 분할한 것도 셔먼법이다. 미국 법무부가 PC 회사였던 IBM에 반독점 소송을 벌인 끝에 IBM은 소프트웨어를 외주사에 맡겼고, 그 덕분에 마이크로소프트(MS)가 성장했다. 법무부가 25년 전 윈도 독점으로 MS를 겨냥하자 MS는 윈도 호환성을 높였고, 그 기회를 잘 살려 성장한 기업이 구글과 애플이다. 셔먼법의 역사는 역설적으로 반독점법이 새로운 혁신의 촉진자임을 잘 보여준다.

한때 혁신의 상징이던 빅테크가 이제는 경쟁을 저해하는 혁신의 걸림돌이 될 위기에 처했다. 빅테크는 언론사의 저작물을 무단으로 사용해 저작권을 침해했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뉴욕타임스가 지난 연말 자사 기사를 AI 훈련에 사용했다며 챗GPT 개발사인 오픈AI와 MS에 소송을 내기도 했다.

혁신을 가로막는 빅테크는 규제해야 하겠지만 나라마다 사정이 다르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세계 100대 플랫폼 기업의 80%가 미국 기업이다. 반면에 유럽 기업은 2%에 불과하다. 미국이 빅테크의 독과점에 메스를 댄 건 여유가 있어서고, 유럽이 디지털 시장법까지 만들어 사전 규제에 나선 건 미국 빅테크를 겨냥한 것이다.

한국의 빅테크에 대한 불만은 주로 빅테크와 이용 사업자 간의 갑을관계다. 유난히 자영업자가 많은 데다 플랫폼 간의 경쟁이 그만큼 치열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빅테크 플랫폼 간의 활발한 경쟁은 소비자에겐 선택지를 넓혀 좋고, 산업 발전에도 도움이 될 수는 있다. 구글 판결로 우리도 즉각 규제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은 다소 섣부르다. 유럽연합(EU)처럼 사전 규제에 나서면 토종 플랫폼이 잘 버티고 있는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손흥민이 뛰어나다고 심판이 손 선수만 쫓아다니며 규칙 위반을 감시하면 제대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겠나. 빅테크 규제 논의는 우리 사정에 맞게 신중하게 접근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빅테크 플랫폼에는 아직도 더 많은 혁신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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