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 AI 시대, 대학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거대 자본이 기술 발전 주도해 교수 연구환경도 급격히 변화
경직된 정책과 규제 버리고 스스로 결정토록 유연성 갖춰야
인공지능을 포함한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은 산업 전반에 큰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기업뿐만 아니라 대학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대학을 둘러싼 환경 변화는 전 세계적인 현상이지만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를 맞이할 우리나라에서는 더 주의깊게 바라볼 필요가 있다. 향후 우리나라의 대학들이 어떠한 환경 변화를 맞이하게 될지, 그리고 그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를 생각해 봤다.
첫번째 변화는 이공계 분야로 인식되던 컴퓨터 활용 역량이 모든 대학생이 익혀야 할 필수교양 분야로 전환되고 있다는 점이다. 마이크로소프트사가 윈도를 개발하기 전까지 컴퓨터 활용 능력은 전산 분야 전공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이후 개인용컴퓨터(PC) 보급, 인터넷 사용 인구 증가, 휴대전화를 통한 초연결사회 도래, 노코드 툴의 확산, 인공지능(AI)을 통한 인간과 기계의 교류 등의 변화가 일어났다.
이러한 변화의 핵심은 디지털 기술 습득에 대한 진입장벽은 낮아지고 있는 반면 그 기술을 익혀 얻을 수 있는 혜택, 즉 수행할 수 있는 과업의 양과 범위는 지속적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모든 희망 학생들이 전공 불문하고 일정 수준 이상의 컴퓨터 활용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학이 지원할 필요가 있다.
둘째, 생성형 AI 발달로 대학의 지식전달자로서의 기능이 위협받고 있다. 학생들은 원하는 지식을 생성형 AI를 활용해 더욱 쉽고 빠르게 얻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대학의 역할은 단순한 지식 전달자에서 벗어나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학습하고, 동료들과 협력해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키워주는 방향으로 변화해야 한다.
플립드 러닝 같은 교육 방식이 주목받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플립드 러닝은 학생들이 수업 전에 학습 자료를 먼저 공부하고, 수업시간에는 그 지식을 바탕으로 토론이나 문제 해결 활동을 진행하는 방식이다. 물론 모든 과목의 수업이 새로운 방식으로 변화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전통적인 강의식 수업의 필요성을 지지한다. 다만 지식의 변화 속도가 빨라지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는 지식 그 자체보다 새로운 지식을 주도적으로 찾아내며 변화하는 시대에 적응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임은 분명하다. 이러한 능력은 전통적인 강의식 교육을 통해 길러지기 어렵다.
셋째, 앞으로는 평생교육과 재교육의 중요성이 부각될 것이다. AI의 발전으로 기존의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으로 예상된다. 많은 근로자가 새로운 역할에 적응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인구 고령화로 경제활동 기간이 늘어나며 은퇴 시점이 늦춰지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대학은 이러한 변화에 대응해 중장년 학습자들을 위한 재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평생교육의 중심 기관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넷째, 대학의 연구 환경도 변화하고 있다. 알파고, 챗GPT, 자연어 처리에 활용되는 트랜스포머스, AI 훈련에 사용되는 텐서플로와 파이토치. 최근 AI 발전에 획기적인 변화를 몰고온 기술들인데 대학이 아닌 기업에서 만들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AI를 포함한 일부 분야에서는 대학이 아닌 산업계가 기술 발전을 주도하고 있는데, 그 경쟁력의 원천은 바로 대규모 자본이다. 구글이 개발한 알파고, 오픈AI가 제작한 챗GPT 등 모두 대학이 감당할 수 없는 대규모 투자의 결과물이다. 앞으로는 이러한 추세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우수한 연구를 생산하기 위해 필요한 자본의 역할은 많은 분야에서 증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인문사회계도 예외가 아니다. 지금까지 인문사회 분야에서는 교수들에게 컴퓨터 하나씩 사주면 우수한 연구를 생산할 수 있다고 믿어 왔다. 최근 빠르게 변화하는 환경에서는 인문사회계와 이공계의 구분이 점차 희미해지고 있으며, 세계적 수준의 연구 성과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고성능 컴퓨팅 자원, 대규모 데이터, 그리고 이를 분석할 기술 인력 등이 필요한 형태로 진화해 가고 있다.
대학이 새로운 시대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진화해야 하지만 대학을 둘러싼 정책환경 역시 변화해야 한다. 현재의 경직적인 정부 정책과 규제가 보다 유연해질 필요가 있다. 대학이 교육 프로그램을 개설하며 스스로 적정 가격을 결정할 수 없는 환경에서 혁신적인 변화를 기대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홍순만 연세대 행정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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