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렬의 시시각각] 승자의 저주
기업 세계엔 ‘승자의 저주’란 말이 있다. 인수합병(M&A)이나 경매 같은 공개입찰에서 승자가 되긴 했지만, 너무 과도한 비용을 쏟아붓는 바람에 위험에 빠지는 경우다. 한국 재계에선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대표적 사례로 거론된다. 2000년대 중후반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잇따라 인수하며 재계 7위까지 도약한 금호그룹은 무리한 M&A가 독이 됐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금난을 견디지 못해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되팔아야 했고, 결국 핵심 회사인 아시아나항공까지 매각하며 무너져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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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주당 폭주 속 22대 국회 파행
임대차 2법 실패서 교훈 얻어야
승자독식 정치는 민심 외면받아
」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 강덕수 회장의 STX그룹은 범양상선, 대동조선 등을 성공적으로 인수하며 창립 10여 년 만에 매출 18조원이 넘는 재계 13위로 성장했다. 그러나 금융위기 후 해운·조선업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렸고, 결국 백기를 들고 해체되고 말았다.
‘승자의 저주’를 피하지 못한 기업들엔 승리를 위한 무리한 베팅, 부실한 재무구조, 허약한 펀더멘털 등의 공통점이 있다. 무엇보다 단기 성공은 기업 분위기를 망가뜨렸다. 오만과 나태가 기업을 잠식했다.
눈앞의 승리만을 향한 돌진, 그 승리에 도취해 본분을 잊는 것이 어디 기업 세계뿐일까. 지금 국회를 장악한 170석의 거대 야당 더불어민주당도 꼭 그 꼴이다.
22대 국회 개원 후 민주당의 모습은 그야말로 ‘승자독식’이다. 국회의장과 법사위원장 차지부터 방송통신위원장 탄핵, 검사 탄핵 추진, 법안 단독 강행 처리까지. 그들의 사전에 타협은 없다. 민주당은 방통위원장 탄핵과 방송4법 강행처리에 단일대오로 움직였다. 표면적 명분은 ‘공영방송의 정치적 독립’과 ‘언론 자유’지만 속내는 ‘MBC 사수’다. MBC 최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 이사진 개편으로 MBC가 여권의 영향권으로 넘어가는 것을 어떻게든 차단하려는 의도였다. 공영방송이 집권의 전리품처럼 여겨지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진보, 보수 할 것 없이 역대 정권은 방송 장악의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야당 시절엔 비판하고 여당이 돼선 악습을 버리지 않았다. 그러나 민주당은 놓치고 있는 게 있다. 문재인 정권 시절 KBS와 MBC를 다 장악하고서도 대선에서 패배해 정권을 내줬지 않나. 결국 중요한 것은 방송이 아니라 민심을 얻는 것이다.
민주당은 경제단체들이 파업조장법이라며 한목소리로 반대하는 ‘노란봉투법’도, 현금 살포나 다름없는 ‘전 국민 25만원 지원법’도 단독으로 강행 처리했다. 두 법 모두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가 예상되기에 민주당으로선 무모한 일을 벌인 셈이 됐다. 그와 별개로 짚고 가야 할 논점이 있다. 집권을 추구하는 정당으로서의 책임감, 신뢰성, 유능함 같은 것이다. 어느 정권이든 정부, 여당과 합의되지 않은 법안을 실행하진 않는다. 그것이 민주주의와 삼권분립의 작동 방식이다. 게다가 비판과 문제 제기에 귀를 닫은 입법은 반드시 탈이 난다. 반면교사가 2020년 7월 30일의 ‘임대차 2법’ 처리다. 당시 여당이던 민주당은 단 이틀 만에 법안 상정과 국회 통과를 마쳤다. 전세 시장의 대혼란을 가져올 것이란 야당과 시장의 우려는 전혀 반영되지 않았다. 법은 시행되자마자 전세 품귀→전셋값 급등→집값 폭등의 파국을 초래했고, 결국 민주당의 대선 패배에 핵심 요인이 됐다. ‘승자의 저주’였던 것이다.
22대 국회에서 재연되는 민주당의 입법 폭주는 과거에서 교훈을 얻지 못했음을 보여준다. 민심은 싸늘하다. 가장 최근 한국갤럽 여론조사에서 민주당 지지도는 27%, 필리버스터에 의존하는 국민의힘(35%)에 8%포인트나 뒤졌다.
물론 M&A에 성공하고도 ‘승자의 저주’에 넘어지지 않는 기업도 있다. 공통점은 더욱 겸손하게 재무구조와 펀더멘털을 다졌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달라져야 한다. 상대방의 의견, 반대와 비판을 경청하고 수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승자의 저주’에 걸리지 않는다. 그게 세상의 이치다.
이상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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