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호의 시선] 금리 인하의 두 얼굴

김동호 2024. 8. 8. 00:26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글로벌 경제를 짓눌렀던 고금리 체제가 막을 내리는 모양새다. 기준금리 인하의 관건이었던 인플레이션이 이윽고 잦아들면서다. 지난 6월 미국 소비자물가지수(CPI)는 3.0%를 기록해 9.1%까지 치솟았던 2022년 6월과 비교하면 현저한 안정세다. 이에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Fed) 의장도 CPI 2%대 진입에 “더 큰 확신을 가졌다”고 했다.

미국의 금리 인하가 더욱 시급하게 된 건 요 며칠 세계 증시를 흔든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 때문이기도 하다. 물가를 확실히 잡겠다면서 금리 인하 시기를 너무 늦추는 바람에 미국이 경기침체에 직면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서 7월 실업률이 4.3%까지 오른 것이 그 방증이다. 미국 실업률의 최근 3개월 평균치가 지난 1년 최저치보다 0.5%포인트 이상 높으면 경기침체에 접어든 것으로 판단하는 ‘샴의 법칙’까지 발동됐다. 이에 Fed가 다음달 중 빅컷(0.5% 포인트 인하)에 나설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 고금리 끝에 임박한 피벗의 시간
금리 내려 좋지만 대출 유혹 커져
부동산 투기 기회로 생각 말아야

제롬 파월 미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이 7월 31일(현지시각)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7월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기자회견에서 답변하고 있다. AP=연합뉴스


미국에 이어 한국에서도 빠르면 10월 중 기준금리 인하가 예상되고 있다. 이창용 한국은행 총재도 “차선을 바꾸고 방향을 전환할 준비를 할 상황이 됐다”고 밝혔다. 한국의 기준금리는 3.5%여서 미국의 5.25~5.5%보다 최대 2.0%포인트 낮다. 이 금리차로 그간 미 달러당 1400원에 근접한 고환율 체제가 지속된 것은 한국 경제에 상당한 불안 요인이 됐다.

이제는 조류가 확연히 바뀌고 있다. 다만 9월부터 미국의 피벗(pivot, 금리의 방향 전환)이 본격화해도 Fed의 금리 인상이 시작됐던 2022년 3월 이전처럼 장기 초저금리 시대가 다시 오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기억해야 할 필요가 있다. 세계 주요 중앙은행이 초저금리 체제의 부작용을 뼈저리게 확인했기 때문이다.

초저금리 체제는 2015년 스웨덴에서 마이너스 금리라는 극단적 형태로 발전했다. 경기부양을 위해서였는데 인플레이션과 함께 부채가 폭증했다. 부동산 시장에 기름을 부었으니 경제불안과 함께 빈부격차까지 초래했다. 초저금리의 원조 일본도 2016년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지만 완전 실패로 끝났다. 수퍼엔저로 몸살을 앓자 지난 3월 마이너스 금리 도입 8년 만에 플러스 금리로 정상화하고 지난달엔 기준금리를 0.25%로 올렸다.

7월 26일 오전 서울 중구 하나은행 위변조대응센터에서 직원이 엔화와 달러를 정리하고 있다. 일본은행은 7월 31일 열린 금융정책결정회의에서 기준금리를 연 0~0.1%에서 0.25%로 인상했다. 기준금리 인상 후 엔화는 강세를 보이기 시작했고, 지난 5일 오전 엔/달러 환율이 약 7개월 만에 144엔대를 기록하기도 했다. 연합뉴스


금리가 다시 내려가는 이 시점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은 금리 인하의 두 얼굴이다. 금리가 내리면 당장 고금리의 고통이 덜어지는 건 긍정적이다. 그러나 2022년 3월 이전처럼 다시 많은 사람들이 돈부터 빌리고 보자는 유혹에 빠져들 수 있다. 금리 인하가 약이 될 수도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의미다. 특히 금리 인하는 시중에 유동성이 풀리면서 물가를 자극할 여지가 크다는 점도 문제다. 이미 한국의 가계부채는 경제 규모(GDP 기준) 대비 세계 최상위권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공화당 후보가 오는 11월 대선 전에는 Fed가 금리를 낮춰서는 안 된다는 견해를 나타내기도 했지만, 실제로 피벗의 열쇠로 꼽히는 CPI가 2%대로 진입할지도 여전히 미지수다. 2023년 6월에도 CPI가 3.0%까지 내려간 적이 있지만 이후 미국 물가는 끈적거리는 상태를 지속했다.

R의 공포를 제거하기 위해 금리 인하가 시급해졌지만, CPI가 2%대로 내려가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피벗이 시작돼도 금리가 시원하게 내려가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금리가 내려간다는 기대감이 앞서면서 돈 빌리는 분위기는 벌써부터 달아오르고 있다. 특히 부동산 시장의 반응이 빠르다. 피벗 가능성이 커지자 주택담보대출이 급격히 늘고 있다. 두 손 놓고 있던 정부는 부랴부랴 부동산종합대책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이같이 금리가 부동산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저금리는 곧 부동산 투자 기회라는 인식이 크다.

주요 시중은행 주택담보대출 잔액이 5조원 넘게 증가하며 가계대출 증가세가 이어지고 있다. 은행들이 가계대출 금리를 수차례 높였지만, 부동산 경기 회복 등으로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대출 수요를 가라앉히지는 못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사진은 7월 28일 오전 서울 시내 한 은행에 붙은 주택담보대출 관련 홍보물. 연합뉴스

이런 유혹을 느낀다면 2022~2023년의 고금리 체제를 잊지 말아야겠다. 이번에 피벗이 시작돼도 초저금리로 가기는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집값이 불안해지면 언제든 금리가 다시 오를 수 있다. 특히 부동산 불패의 신화가 흔들리고 있다는 현실도 봐야 한다. 1, 2차 베이비부머가 은퇴할수록 부동산은 매물이 계속 쌓일 수 있다.

집값이 올라도 세계 최고 수준의 증여·상속세율 때문에 세금을 내면 남는 게 많지 않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2024년 세법개정안에서 자녀공제를 10배 늘려 상속공제한도를 대폭 확대했지만 국회 통과는 미지수다. 금리가 내리더라도 내 집 한 채 마련을 위한 기회로는 좋지만 그 이상은 아니다. 저금리의 두 얼굴을 잊지 말아야 한다.

김동호 경제에디터

Copyright © 중앙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