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남훈의 퍼스펙티브] ‘을’ 위해 플랫폼 규제하면 소비자와 산업 발전은 어떡하나
플랫폼 규제, 외국의 길 한국의 길
플랫폼의 본질은 인터넷 중개업
플랫폼과 관련한 문제가 자꾸 생기는 이유는 간단하다. 그만큼 플랫폼이 생활에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우리는 플랫폼을 통해 정보를 검색하고, 뉴스와 영상, SNS를 보며, 택시를 부르고, 배달 음식을 주문하고, 물건을 산다. 많이 이용하는 만큼 문제도 많이 일어나는 게 당연하다. 이는 플랫폼 규제가 필요한 이유도 되지만 함부로 규제해서 안 되는 이유도 된다. 뿔을 바로 잡으려다 자칫 소가 죽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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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을 문제’는 자영업자 많고 플랫폼 간의 경쟁 치열해서 생긴 현상
활발한 플랫폼 간 경쟁은 소비자 후생과 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
사전규제하면 사업 기회 놓치고 경쟁력 잃어…해외업체만 웃을 것
」
온라인 플랫폼의 본질은 인터넷을 이용한 중개업이다. 2010년대 후반, GAFAM이라 불린 구글·애플·페이스북·아마존·MS 등 빅테크 플랫폼이 세계 최고의 가치 있는 기업들이 되면서 플랫폼에 관심이 집중됐다. 경제학자들은 ‘네트워크 효과’라고 부르는 특성에 주목했다. SNS로 예를 들면, 더 많은 이용자가 콘텐트를 올릴수록 보는 사람이 늘고, 그럴수록 수익이 높아져 다시 콘텐트도 느는 식의 피드백 효과다. 여기에 데이터를 축적·분석하는 능력이 결합하면 한 번 주도권을 잡은 플랫폼이 시장을 독식하는 쏠림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걸로 모든 걸 설명할 수는 없다. 콘텐트를 직접 구매해 서비스하는 넷플릭스나 직매입이 90% 이상인 쿠팡처럼 중개모델에 부합하지 않는 사례도 있다. 네트워크 효과나 데이터의 중요성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최근에는 생성형 AI의 대두로 판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플랫폼 규제는 제각각
플랫폼 규제 논의는 2010년대를 전후로 큰 변화를 겪었다. 그전에는 플랫폼에 기존 규제를 함부로 적용하면 안 된다는 규제 완화론이 더 우세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 GAFAM의 글로벌 영향력이 커지면서 견제론이 우세해졌다.
플랫폼 규제 강화를 선도한 것은 유럽연합(EU)이다. EU는 플랫폼 경쟁에서 확실히 뒤처졌다. 2023년 기준 글로벌 100대 플랫폼 중에서 EU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은 2.2%에 불과하다. 미국기업이 80.3%,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가 15.8%인 데 비하면 처참한 수준이다. EU 경쟁 당국은 미국의 빅테크를 겨냥한 제재를 쏟아냈다. 그러나 그걸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고, 대형 플랫폼을 ‘게이트키퍼(gatekeeper)’로 지정해 규제하는 ‘디지털 시장법’을 만들었다. 7개 게이트키퍼 중에서 EU 기업은 지난 5월 추가된 부킹(Booking.com)이 유일한데, 본사를 유럽 밖으로 옮길지 모른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미국은 과거에도 EU 경쟁 당국과는 다른 행보를 보였다. 그러다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며 리나 칸(Lina Kahn)이 연방거래위원회(FTC) 의장이 되는 등 반(反)대기업 인사들이 등용되고, 디지털 시장법과 비슷한 6개 법안이 상정되었다. 당초 플랫폼 기업의 좌편향을 비난했던 공화당도 지지할 것으로 알려졌으나, 결국 폐기됐다. 뚜렷한 명분 없이 자국 기업을 발목 잡는다는 비판이 원인으로 보인다.
국내 규제 논의는 여론 따라 갈팡질팡
다른 국가들의 움직임은 엇갈린다. 브렉시트로 EU와 분리된 영국은 지난 5월 디지털 시장법과 유사한 법을 통과시켰다. 일본은 세분화된 접근법을 취했는데, 온라인 쇼핑 등 일부 분야에 약한 규제를 도입한 데 이어 애플·구글 등이 장악한 스마트폰 운영체제(OS) 등에는 강한 규제를 도입했다. 대만은 검토 끝에 추가로 규제를 도입하지 않기로 했다. 공통점은 자국의 시장 상황을 자세히 검토하고 그에 부합하는 결정을 내렸다는 점이다.
국내에서 플랫폼 규제 논의가 전면적으로 부상한 것은 2020년의 일이다. 공정위는 플랫폼과 이용사업자 간을 규율하는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률(온플법)’ 제정에 착수했는데, 방송통신위원회와의 주무 부처 논란이 일었다. 논란은 국회의 관련 상임위 의원들까지 참전하며 계속됐는데, 규제 필요성이나 수준에 대한 진지한 토론보다는 규제권 확대 경쟁이 핵심이었다.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자 흐름이 바뀌어 민간 중심 경제 원칙에 따라 온플법 입법을 중단하고 자율규제 기조를 채택했다. 하지만 2022년 말 카카오 화재 사건을 계기로 흐름은 또다시 바뀌었다. 공정위는 이번에는 EU의 디지털 시장법과 유사하게 대형 사업자를 지정해 독과점 행위를 규제하는 가칭 ‘플랫폼 경쟁촉진법’ 추진에 나섰는데, 업계의 큰 반발에 부딪혔다. 논란은 총선 기간 수면 밑으로 내려갔지만, 국회가 개원하자 야당 주도로 유사 법안은 물론 과거 온플법의 재추진 움직임도 되살아나고 있다.
드물게 토종 플랫폼이 힘쓰는 한국
플랫폼을 규제한다면 주된 대상은 플랫폼과 소비자와의 관계, 이용사업자와의 관계, 그리고 플랫폼 간의 관계, 이렇게 세 방향일 것이다. 이 중 국내에서 가장 이슈가 많았던 부분은 이용사업자 관계, 즉 갑을 문제다. 플랫폼에 연결된 수많은 소상공인과 자영업자들은 수수료나 배달료, 광고료 등을 놓고 플랫폼과 갈등을 빚어 왔다. 이는 외국과는 다른 양상인데, 자영업자가 워낙 많고 영세한 우리 경제의 특징이 주요 원인일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또 하나의 원인은 플랫폼 간 경쟁이 활발하기 때문이다. 플랫폼 경쟁은 충성 고객을 누가 더 확보하느냐에 달려있다. 이를 위해 플랫폼은 소비자에 혜택을 집중하고 재원의 상당 부분을 이용사업자에 부담시킨다. 경쟁이 치열할수록 이용사업자의 부담도 커지는 셈이다. 배달의 민족이 쿠팡이츠의 도전에 맞서다가 수익성이 압박받자 중개 수수료를 올린 사례나, 티몬과 위메프가 각종 할인 및 이벤트로 소비자를 끌면서 판매사업자에게는 정산을 지연한 것도 이런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플랫폼의 활발한 경쟁은 소비자 후생과 산업 발전을 위해 바람직하다. 한국은 해외 플랫폼에 종속되지 않고 토종 플랫폼이 경쟁력을 발휘하는 드문 경우다. 많은 국가에서 구글 검색 점유율은 90%가 넘지만, 우리는 아직도 네이버 점유율이 더 높다. 아마존의 독주가 일찌감치 굳어진 해외와 달리 우리 이커머스 시장은 최근까지 절대 강자 없는 경쟁이 이어졌다. 숙박 플랫폼이나 배달 플랫폼 역시 치열한 경쟁 중이다. 물론 앱마켓, 클라우드, 모바일 메신저 등 일부 사업자의 독주가 굳어진 사례도 있다.
중요한 점은 국내 플랫폼의 규제 여부를 외국 상황에 준해 판단하거나, 시장별 특성을 고려하지 않고 뭉뚱그려 접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모든 문제를 독과점의 폐해로 단정 짓는 것도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생존경쟁 고려해 규제는 신중하게
선진 시장경제의 거래 질서 확립은 보통 사후적 규제로 접근한다. 자유롭게 거래하고 경쟁하되, 선을 넘는 행위는 판단해 제재하는 것이다. 문제는 플랫폼의 경우 무엇이 선을 넘는 행위인지 판단하기 어렵고, 시간도 걸린다는 것이다. EU의 구글 쇼핑 제재 건은 판단까지 7년 넘게 걸렸고, 그 후 7년이 더 지났지만, 구글이 어떻게 행동했어야 하는지는 지금 봐도 불분명하다. 공정위가 카카오·네이버·쿠팡 등에 대해 집행한 사건들도 법정 공방이 진행 중이며, 학계의 이견도 적지 않다.
플랫폼 경쟁촉진법이나 온플법 같은 사전규제가 이런 상황에 도움이 된다고 믿는 이도 있다. 큰 사업자에게 미리 제약을 두어 애매한 행위는 아예 못 하게 하자는 것이다. 단점은 명확하다. 손발이 묶인 사업자들은 사업 기회를 놓치고 점차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끼는 해외 사업자들에만 좋은 일이 될 수도 있다.
신속하게 문제를 해결하면서 부작용을 줄이는 대안 중 하나는 동의의결 제도다. 정부가 제재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사업자와 협상을 통해 행동을 교정하는 것이다. EU의 아마존 자사 우대 사건이 이 방법으로 종결됐다. 우리도 제도가 있지만 여러 이유로 작동이 되지 않고 있다. 또 다른 대안은 사업자들 스스로 행동 규약을 정하고 정부가 뒷받침하는 자율규제다. 다만 자율규제의 정착에는 인내심과 의지가 필요한데, 이를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규제든 한 가지 방법만 고집해서는 안 되고, 산업과 생태계 전반에 미칠 효과를 충분히 고려해 신중히 접근해야 한다. AI를 둘러싼 생존경쟁이 눈앞에 있다는 사실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권남훈 건국대 경제학과 교수·경제사회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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