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편의점보다 인기…SSM ‘반전 매력’
기업형 슈퍼마켓(SSM·Super Super Market)이 전성기를 맞이했다. SSM은 대형 유통 기업이 체인점 형태로 운영하는 슈퍼마켓으로, GS더프레시·롯데슈퍼·이마트 에브리데이·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등이 대표적이다.
과거에는 대형마트와 편의점 사이에 낀 ‘애매한’ 업태라는 평가를 받으며 고전을 면치 못했다. ‘대형마트보다는 비싸고 편의점보다는 멀다’는 인식으로 소비자 발길이 뜸했다.
최근에는 달라졌다. ‘대형마트보다 가깝고, 편의점보다는 상품이 다양하고 저렴하다’로 평가가 바뀌었다. 신선식품과 가성비 카테고리를 집중적으로 키운 노력이, 팬데믹 이후 급증한 1·2인 가구 ‘근거리 장보기’ 수요와 맞물리면서 고성장을 이어가는 중이다. SSM 가맹점 개업을 희망하는 이가 줄을 설 정도로 창업 시장에서도 ‘핫’한 아이템으로 떠올랐다.
마트·편의점보다 높은 성장률
SSM 급성장은 통계에서 그대로 나타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 SSM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8% 증가했다. 같은 기간 대형마트(6.2%), 편의점(6%), 백화점(5.5%) 등 다른 오프라인 유통 채널과 비교해도 가장 높다. 지난 8년 동안 최고 매출 증가율이다. 2021년 -9.1%, 2022년 -2.5%로 역성장을 이어가다 지난해 3.7%로 반전에 성공한 후 좋은 분위기를 올해 초까지 이어가고 있는 추세다. 올해 상반기 매출 증가율 역시 5.6%를 기록하며 대형마트(0.7%), 백화점(3.1%), 편의점(5.2%) 등을 앞질렀다. 지난해 2분기부터 5분기 연속 오름세다.
SSM을 운영하는 개별 기업도 호실적을 이어가고 있다.
국내 SSM 시장은 ‘빅4’로 요약된다. 점포 수 기준으로 GS리테일이 운영하는 ‘GS더프레시’, 롯데쇼핑 산하의 ‘롯데슈퍼’, 근래 매각설이 나오는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최근 이마트와 통합한 ‘이마트 에브리데이’ 순이다.
업계 1위 GS더프레시는 최근 성장세가 가장 두드러지는 SSM이다. 점포 수가 올해 7월 기준 500개를 돌파했다. 2위 롯데슈퍼(약 356개)와 비교하면 150개가량 많다. 올해에만 매장 62개를 늘리며 공격적인 영업에 나서고 있다. 실적도 개선되는 분위기다. 2021년 1분기 기준 2985억원이었던 매출은 2022년(3170억원)과 2023년(3413억원)에 이어 올해 1분기(3809억원)까지 가파른 상승 곡선을 그린다.
여타 SSM도 상황이 좋다. 롯데마트·슈퍼는 올해 1분기 매출 1조3831억원, 영업이익은 374억원을 기록했다. 전년 동기 대비 매출은 0.8% 줄었지만 영업이익은 37.9% 늘어나며 수익 개선에 성공했다. 같은 기간 이마트에브리데이 매출과 영업이익 역시 각각 3.9%, 60% 늘어났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대비 점포 수가 줄어든 브랜드가 많은데도 매출은 방어하면서 영업이익이 크게 늘어났다”며 “공격적인 가맹 사업과 동시에 점포 리뉴얼 등 알짜 매장 효율화에 나서면서 좋은 흐름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SSM, 왜 이렇게 잘될까
‘식품’ ‘1인 가구’에 집중 덕분
SSM이 최근 호조를 이어가고 있는 키워드는 크게 3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식품’이다. SSM업계는 대형마트·편의점과 차별화를 위해 오랜 기간 골몰해왔다. 찾은 해법은 식품이다. 신선식품과 즉석식품(델리) 위주로 매대를 꾸리면서 외형이 커졌다. 과일·채소 등 신선식품은 편의점 취급이 어렵고 대형마트는 접근성이 상대적으로 떨어진다. “그래도 먹거리는 직접 보고 결정한다”는 소비자 심리 덕에 쿠팡 등 이커머스 광풍에서도 다소 자유롭다. 가격이 저렴한 공산품은 온라인으로 구입하더라도 비싸고 신선도가 중요한 식품은 슈퍼마켓에서 구매하는 행태다. 최근 고물가 장기화로 집밥과 홈술 수요가 크게 늘면서 SSM 식품 집중 전략이 더 빛을 발하는 중이다.
SSM 경쟁 채널인 대형마트·편의점과 비교해보면 식품이 SSM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절대적이라는 점을 알 수 있다. 올해 6월 기준 SSM 전체 매출에서 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91.2%, 비식품이 8.8%다. 사실상 식품이 전체 매출을 견인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같은 기간 편의점(56.7%)과 대형마트(66.7%) 식품 비중보다 훨씬 크다. 홈플러스 익스프레스는 올해 5월 목동점을 리뉴얼하며 치킨·초밥 등 인기 델리를 매장 전면에 내세운 ‘그랩 앤 고’로 업계 이목을 집중시키기도 했다.
롯데슈퍼 관계자는 “식품 진열 면적을 전체 70% 이상 차지하게끔 리뉴얼 작업을 진행 중이다.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기 때문에 식품 진열 매대 높이를 낮춰 편의성을 높이려는 노력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관계자 역시 “세제·휴지 같은 기존 생활용품 대신 신선식품 비중을 높이며 매출이 크게 늘었다”며 “수입 과일과 간편식 샐러드 등 판매가 급증했다”고 말했다.
둘째, ‘근거리 장보기’다. 1·2인 가구가 증가하면서 대용량 구매 수요가 줄었다. 한 번에 많이 사놓기보다는 필요할 때마다 근처 슈퍼마켓이나 편의점에서 그때그때 구입하고자 하는 소비자가 늘었다. 특히 식품은 한 번에 다 먹지 못하고 버리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이때 편의점이나 대형마트보다는 SSM이 매력적이다. 편의점보다 상품 구색이 다양하고 대형마트보다 소포장 상품이 많기 때문이다. GS더프레시 관계자는 “2019년부터 수산·정육 등 대면 판매 코너를 최소화하고, 1차 전처리 공장에서 포장 작업이 완료된 식품 매대 비중을 크게 늘렸다”며 “1차 상품 매대도 낱개를 가득 쌓아 진열하는 벌크형 매대가 아닌 1~2인 가구 소비자를 위한 소포장 중심 상품 매대로 바꾸면서 영업력이 크게 나아졌다”고 말했다.
셋째 ‘퀵커머스’다. 당일에 구입 상품을 문 앞까지 배달해주는 ‘즉시배송’ 서비스를 너 나 할 것 없이 도입하며 외형과 실질 상권이 확장됐다. 배달 주문에 익숙한 요즘 소비자를 겨냥한 전략이다.
GS더프레시는 GS리테일 통합 앱인 ‘우리동네GS’를 비롯해 최근 배달의민족, 요기요, 네이버 장보기 등 다양한 온라인 채널을 퀵커머스와 연계해 장보기 배송을 강화했다.
요기요 지분을 보유한 GS리테일 입장에서 경쟁사인 배달의민족과 손잡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열성적이다. 이마트 에브리데이 역시 2022년 10월 선보인 1시간 배송 퀵커머스 서비스 ‘이마일’을 통해 근거리 쇼핑 수요를 공략한다. 올해부터는 배송 지역을 각 점포 반경 1㎞에서 2㎞로 확대하고 6월에는 배달의민족에 입점하는 등 서비스를 계속 확장하고 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소용량 포장이 대세가 된 덕분에 배송이 수월해졌고 대형마트와 이커머스를 찾던 1인 가구 고객 수요도 끌어올 수 있게 됐다”며 “사회 구조 변화가 전체 SSM 시장 성장을 이끄는 모습”이라고 평가했다.
편의점 등 골목상권 침해는 여전
SSM 시장은 한동안 계속 커질 것이라는 게 전문가와 업계 관계자 중론이다. 1인 가구·퀵커머스·신선식품 등 최근 소비 시장을 관통하는 여러 트렌드와 가장 부합하는 유통 채널이기 때문이다. 고물가가 장기화되고 있다는 점도 SSM에는 호재다.
유통 기업도 성장성이 높은 SSM 투자에 열을 올린다.
GS더프레시는 가맹 사업으로 덩치를 키우는 중이다. GS리테일에 따르면 올해 7월 기준 GS더프레시 전체 501개 점포 중 직영점이 111개, 가맹점이 390개다. 가맹·직영 비율이 비슷했던 2021년(직영 162점, 가맹 179점)과 비교하면 눈에 띄게 달라졌다. 올해 늘어난 62개 점포는 모두 가맹점이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또 다른 한 축인 편의점 사업과 비교하면 출점 거리 제한 등 규제에서 자유롭고 본사가 가져가는 수익도 더 낫다”며 “성장 한계에 다다랐다는 편의점에 비해 덩치를 키우기 더 수월하다”고 평가했다.
롯데와 이마트는 ‘통합’ 작업으로 운영 효율에 속도를 내고 있다. 롯데슈퍼는 올해 롯데마트와 조직을 통합하며 사업 재편에 집중하고 있다. 강성현 롯데마트 대표가 슈퍼사업부 대표를 겸직하면서 롯데슈퍼 상품·지원 조직을 마트 사업부로 흡수 통합했다. 이마트 에브리데이도 비슷하다. 지난 4월 이마트와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이사회를 열어 합병을 결정했고 올해 7월 본격 ‘통합 이마트’ 출범을 알렸다.
양 사 모두 통합 이후 ‘가격 경쟁력’ 제고가 기대된다. 마트와 SSM 통합 소싱으로 구입 단가를 낮출 수 있고 물류 비용 절감도 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이마트 ‘후레쉬센터’가 직접 생산·가공한 조각 과일을 SSM에서도 팔고, 이마트 직영 축산가공센터인 ‘미트센터’에서 나오는 삼겹살도 취급하는 방식이다. 마케팅·영업에서도 시너지를 낼 수 있다는 평가다.
SSM이 전성기를 맞이한 건 맞지만 풀어야 할 이슈도 적잖다.
SSM이라는 업태가 태동할 때부터 제기된 ‘골목상권 침해’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오히려 최근 들어 논란이 더 격화됐다. SSM이 가맹점을 늘리는 가운데 기존 편의점 사업주로부터 불만이 들끓는다. 편의점과 판매 품목이 겹치는 데다 가격이 더 저렴해, 주변 편의점 고객을 SSM이 전부 흡수하는 양상이 나타나면서다.
편의점업계에선 “SSM이 새로 하나 입점하면 인근 편의점 매출이 반 토막 난다”는 인식이 지배적이다.
문제는 주요 SSM 모기업 모두 편의점 사업도 함께한다는 점이다. ‘GS25-GS더프레시’ ‘롯데슈퍼-세븐일레븐’ ‘이마트24-이마트 에브리데이’다. SSM이 겨냥하는 고객이 기존 전업주부에서 ‘1인 가구’와 ‘2030세대’로 바뀌면서 편의점과 충돌 문제가 더 불거졌다.
한 편의점업계 관계자는 “SSM은 편의점과 달리 출점 제한도 없다시피 하다. 기존 슈퍼마켓을 운영하던 자리라면, 지근거리에 GS25가 있어도 GS더프레시가 입점할 수 있는 구조”라며 “과거에는 편의점 사업주 눈치를 보며 가맹 사업을 중단했던 SSM도 있지만 최근에는 편의점 브랜드를 보유한 3사 모두 가맹업에 힘을 주는 모습”이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한 점주 역시 “요새는 30평형대 SSM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배후가 큰 아파트 단지뿐 아니라 오피스텔이 위치한 상권에도 SSM이 침투하는 중”이라며 “여기저기 들어서다 보니 편의점뿐 아니라 과일·채소 가게, 소규모 정육점 등 다른 업종도 매출 하락이 불가피하다”고 한숨 쉬었다.
지금이 고점 아니냐는 ‘피크아웃’ 의문도 제기된다. GS더프레시를 제외하면 드라마틱한 점포 수 증가를 보이는 SSM이 없다. 전년 대비 올해 롯데슈퍼 점포 수는 2개, 이마트 에브리데이는 15개 감소했다. 한 유통업계 관계자는 “직영점 비중이 줄어들고 있다는 점에서 우려를 표하는 이도 많다. 돈이 되면 직접 하면 될 텐데 굳이 가맹점을 빠르게 늘리는 데서 나오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매물로 나온 홈플러스 익스프레스 매각 작업이 지지부진하다는 점도 ‘SSM 고점론’에 힘을 싣는다. 새 주인 찾기가 본격화된 지 두 달 가까이 지났지만 소문만 무성할 뿐 적극 나서는 곳이 없다. 그동안 인수 후보자로 거론됐던 알리익스프레스, 쿠팡, 농협 모두 “검토 없음”을 표명하며 선을 그었다. 사실상 흥행에 실패한 모습이다.
[나건웅 기자 na.kunwoong@mk.co.kr]
[본 기사는 매경이코노미 제2271호 (2024.08.07~2024.08.13일자)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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