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기침에 내릴 땐 폭삭, 오를 땐 찔끔…또 드러난 'K증시 디스카운트'

김경진 2024. 8. 7. 1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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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이 기침하면 한국은 감기에 걸린다.” " 외부 변수에 지나치게 취약한 한국 증시를 가리키는 말이다. 정부가 연초부터 국내 주식시장 활성화 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달 들어 코스피·코스닥 시장이 급등락을 반복하면서 한국 증시의 근본적인 체질 강화가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7일 오후 서울 중구 하나은행 본점 딜링룸 전광판에 코스피와 코스닥 지수의 종가가 표시돼 있다.뉴스1

7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이날 코스피는 전일 대비 1.83% 상승한 2568.41에 장을 마쳤다. 코스피는 ‘블랙먼데이’였던 지난 5일 8.77% 급락했지만, 6일 3.3% 상승에 이어 이날도 1%대 상승에 그쳤다. 코스닥 지수 역시 2.14%(748.54) 올라 지난 5일 무려 11.3% 떨어진 지수를 회복하는 데는 역부족이었다. 일본 닛케이지수가 12.4%(5일) 폭락한 뒤 10%(6일) 넘게 뛰고 이날도 상승세를 이어간 것과 대조적이다. ‘오를 때는 찔끔, 내릴 때는 폭삭’이란 국내 증시의 꼬리표가 다시 확인된 셈이다.

실제 코스피의 연초대비 수익률은 8월7일 종가 기준 -3.8%다. 일본 닛케이지수(5.41%), 대만 가권(자취안) 지수(19.28%)가 연초대비 플러스 수익률을 기록한 것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표다.

정근영 디자이너

대장주인 삼성전자만 봐도 이런 경향은 두드러진다. 지난해 초 챗GPT가 쏘아 올린 생성 인공지능(AI) 열풍으로 엔비디아를 필두로 반도체 공급망 전반이 수혜를 입는 상황에서도 삼성전자의 주가는 지지부진한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 엔비디아는 6일(현지시간) 기준 올해 들어 116.4% 오르고, 엔비디아 공급망에 편입된 SK하이닉스도 같은 기간 18.89% 올랐지만, 삼성전자는 오히려 6.16% 하락했다.

삼성전자는 미국발 경기침체 공포가 국내 증시를 강타한 5일 하루에만 10.3% 하락했다. 이는 글로벌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24일(-13.8%) 이후 16년 만의 최대 하락률이다. 하지만 반등 폭은 미미했다. 삼성전자 주가는 이날 오전 로이터의 ‘엔비디아 5세대 고대역폭메모리(HBM) 납품 테스트 통과’ 보도와 삼성전자의 정정보도 등을 거치며 3.03% 오르는 데 그쳤다.

김영옥 기자

전문가들 사이에선 며칠 사이 요동치는 국내 증시가 ‘코리아 디스카운트(저평가)’의 현실을 보여주는 단면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낮은 영업이익률 ▶‘밸류업(기업가치 제고)’ 기대감 하락 ▶탄탄하지 못한 수급 환경 등이 복합적으로 맞물린 결과라는 지적이다.

이남우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 회장은 이날 중앙일보와의 통화에서 “시장이 일본·대만·미국이 오를 때 충분히 오르지 못하다가 빠질 때는 또 같이 빠지는데 회복은 더디면서 (주요국 증시와) 상승률이나 밸류에이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며 “‘이익의 질’이 좋지 않고 더 근본적으로는 거버넌스(지배구조)가 좋지 않은 기업을 중심으로 더 빨리 (주가가) 빠지는 경향을 보였다”고 진단했다.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2023년 말 기준, 국내 기업의 영업이익률은 지난 10년간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의 경우 5.56%→5.39%로, 코스닥 상장사의 경우 4.48%→3.36%로 쪼그라들었다. 이마저도 연도별로 보면 영업이익률에 큰 편차가 있다. 한 펀드 매니저는 “같은 반도체 수출 중심의 산업 구조를 가졌다고 해도,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중심인 대만과 달리 한국은 메모리 반도체 중심이라 경기에 따라 이익 변동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차준홍 기자

여기에 올 초부터 이어진 밸류업 기대감이 실망감으로 바뀐 점도 외국인의 ‘셀 코리아’를 부추기는 요소다. 이찬형 페트라자산운용 부사장은 “최근 증시 급락 사태는 정부의 밸류업 정책 기대감으로 인해 들어왔던 외국인 투자자들의 실망 매물이 쏟아진 결과”라며 “무엇보다 기업들이 밸류업에 역행하는 행태를 보이면서 글로벌 증시가 다 같이 빠지는 시기에 주저없이 주식 처분에 나선 것”이라고 말했다. 두산에너빌리티에서 두산밥캣을 인적 분할한 뒤 두산로보틱스의 완전 자회사로 편입하겠다고 밝힌 두산그룹이 대표적인 사례다. 외국인들은 두산그룹이 계열사 재편안을 발표한 직후인 12일부터 이달 7일까지 두산밥캣 주식 약 2390억원 어치를 순매도했다.

국내 증시의 취약한 수급 환경도 장애물이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금융산업실장은 “국민연금은 국내 주식 비중을 줄이고 있고, 퇴직연금은 안전 자산으로만 쏠리는 데다, 개인들도 단타 위주로만 국내 주식 시장에 접근하고 있다”며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저렴한 엔화로 산 해외자산을 되파는 현상)의 여파가 언제까지 시장에 충격을 줄지 모르는 상황에서 이에 대응할 수 있는 장기적인 투자 기반이 부족한 것이 국내 증시의 한계”라고 지적했다. 박소연 신영증권 연구원은 “일본과 비교했을 때 한국의 주가 반등이 더딘 이유는 장기 자금 유입이 부족한 신흥국 증시의 한계 때문”이라며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서는 중기적으로 MSCI 선진국 지수 편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경진 기자 kjin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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