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출신 생물학자, 육상 금메달 땄다…거짓말 같은 '투잡'

배영은 2024. 8. 7. 16: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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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우승한 뒤 미국 국기를 흔들며 기뻐하는 개브리얼 토머스. AP=연합뉴스


올림픽 육상 금메달리스트와 하버드대 출신 생물학자. 개브리엘 토머스(27·미국)의 '투잡' 이력서다. 둘 중 하나만 해내기도 어려운데, 토머스는 거짓말처럼 둘 다 해냈다.

토머스는 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21초83의 기록으로 가장 먼저 결승선을 통과했다. 미국 선수가 이 종목 금메달을 딴 건 2012년 런던 올림픽의 앨리슨 펠릭스 이후 12년 만이다. 토머스는 경기 후 "정신을 잃을 만큼 레이스에 몰입했고,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는 결과가 나왔다"며 "올림픽 금메달은 꿈만 같은 일이지만, 내가 이 순간을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쏟아부었는지도 잘 알고 있다"고 뿌듯해했다.

토머스는 미국 아이비리그의 명문 하버드대 출신이다. 신경생물학과 국제보건학을 전공했고, 2019년 졸업했다.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를 앓은 쌍둥이 오빠와 자폐스펙트럼장애(ASD) 치료를 받은 6살 아래 남동생을 보면서 "의료계 종사자가 되겠다"는 꿈을 품었다.

동시에 운동도 꾸준히 했다. 어린 시절부터 축구·농구·소프트볼·크로스컨트리를 두루 섭렵했다. 매사추세츠 주립대 교수인 어머니를 따라 2007년 하버드대 근처로 이주한 뒤엔 본격적으로 육상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고교 시절 내내 주 대회 1위를 휩쓸며 재능을 보였다.

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우승한 뒤 감격하는 개브리얼 토머스. AP=연합뉴스


토머스는 하버드대 진학 후에도 육상을 포기하지 않았다. 100m와 200m를 포함해 육상 6개 종목을 오가면서 각종 대학 대회에 걸린 금메달 22개를 쓸어 담았다. 졸업 후엔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인 톤야 뷰포드-베일리 코치와 손잡고 더 큰 무대에 도전했다. 그 결과 2021년 열린 도쿄올림픽 200m에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타임지는 "하버드대 출신에게 올림픽 육상 메달리스트란 미국 대통령보다 더 오르기 힘든 자리"라고 경탄했다.

'올림픽 메달'은 토머스에게도 새로운 자극이 됐다. 그는 "올림픽 시상대에 선 뒤 '달리는 사람'으로서 육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전엔 국가대표를 경험해보는 게 꿈이었다면, 이제는 (금메달이라는) 새 가능성이 생겼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업에 대한 열정도 놓지 않았다. 도쿄올림픽 후 텍사스 주립대에서 공중보건학 석사 과정을 밟았고, 2023년 학위를 취득했다. 논문 주제는 '수면 장애의 인종적 불평등과 흑인 미국인의 수면 역학 평가'였다.

또 하나의 목표를 이룬 토머스는 다시 본격적으로 파리올림픽 출전을 준비했다. 훈련 틈틈이 텍사스주 오스틴에 있는 비 보험자 전용 고혈압 클리닉에서 일주일에 10시간씩 파트타임 자원봉사도 했다. 그렇게 두 마리 토끼를 향해 쉬지 않고 달린 결과가 파리올림픽 금메달로 돌아왔다.

7일(한국시간) 프랑스 파리 스타드 드 프랑스에서 열린 2024 파리올림픽 육상 여자 200m 결선에서 가장 먼저 결승선으로 향하는 개브리얼 토머스(오른쪽). AP=연합뉴스


파리올림픽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하버드 졸업생 중 올림픽 육상에서 금메달을 딴 선수는 토머스가 사상 처음이다. 재학생 중에선 128년 전인 1896년 아테네 올림픽 육상 남자 세단뛰기 우승자인 제임스 코널리가 유일했다. 당시 미국 선수단은 12명이었는데 모두 아이비리그(하버드대 7명, 프린스턴대 4명, 컬럼비아대 1명) 학생으로 구성됐다. 무단결석을 하고 자비로 올림픽에 참가한 코널리는 높이뛰기 은메달과 멀리뛰기 동메달까지 따내 가장 좋은 성적을 냈지만, 끝내 하버드대를 졸업하진 못했다.

올림픽 육상의 새 역사를 쓴 토머스는 "이 금메달은 지난 수년간 정말 열심히 달리고 나 자신을 극한까지 밀어붙이면서 만들어낸 성취다.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할 수 있다"며 "선수 은퇴 후엔 의료계의 불평등을 개선하고 접근성을 높이는 데 기여하는 비영리 기구나 재단을 운영하는 게 꿈"이라고 했다.

배영은 기자 bae.younge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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