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즘보다 무서운 전기차 포비아에 주목받는 배터리 실명제

강희종 2024. 8. 7.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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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가, "완속 충전기 충전 제한 기능 필요
소비자 선택권 위해 배터리 실명제 도입해야"
차량 이상시 경고 보낼 수 있게 BMS 고도화
열폭주 지연 위한 배터리 기술도 개발해야
정부, 12일 전기차 배터리 관계 부처 회의

전기차 화재 사고가 잇달으면서 차량 배터리 실명제 도입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일시적 수요 정체를 뜻하는 캐즘에 이어 ‘전기차 포비아(공포)’ 현상까지 나타날 경우 대형 악재로 확산될 수 있는 만큼 우려 차단에 온 힘을 집중하는 모양새다.

5일 오후 인천 서구 청라동 아파트 지하 주차장 화재 현장에서 합동 감식을 마친 경찰이 화재가 발생한 전기차를 옮기고 있다. [이미지출처=연합뉴스]

정부 ‘전기차 화재 안전 종합 대책’ 수립 중

8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조만간 전기차 화재 안전 종합 대책을 발표한다. 정부 관계자는 "환경부를 주축으로 국토교통부, 산업통상자원부, 소방청 등 관련 관계 부처가 공동으로 전기차 화재 안전 관련 대책을 수립 중"이라고 밝혔다.

가장 가능성이 높은 대책은 전기차 배터리 실명제 도입이다. 당초 이번 사고 차량에는 중국 CATL이 제작한 니켈·코발트·망간(NCM)811 배터리를 탑재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실제로는 중국 파라시스의 배터리가 들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일반적으로 중국 NCM 배터리 기술은 한국에 비해 뒤처진 것으로 파악된다. 특히 파라시스는 전 세계 배터리 기업 순위에서도 10위권 밖에 있는 기업으로 중국 내에서도 후발 주자다.

그동안 자동차 제조사들은 전기차에 어떤 배터리를 탑재하는지 공식적으로 표기하지 않았다. 이는 소비자의 알권리와 선택권을 제한한다는 지적이 있었다. 내연기관차를 구매할 때 어떤 엔진이 있는지가 중요한 고려 요소인 것처럼 전기차에서도 배터리는 매우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이번 사고를 계기로 제조사들이 배터리 등록증에 어떤 종류의 배터리를 탑재했는지를 명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더해 배터리 업계에서는 배터리 분리 등록제도 도입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배터리산업협회 김승태 정책지원실장은 "자동차와 배터리의 소유권을 분리할 수 있는 배터리 분리 등록제도를 시행해 다양한 비즈니스 모델이 등장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이외에 전기차 충전 시설 안전, 배터리 안전 기준, 공동주택 소방 시설, 배터리 기술 연구개발(R&D) 등의 내용을 포함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아파트 등 공동 주택의 전기차 충전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기차는 배터리가 과충전 상태일 경우 화재에 취약하다. 급속 충전기의 경우 차량과 충전 기간 통신으로 연결해 80~90% 이상 충전할 경우 더이상 충전하지 않고 차단하는 장치를 내장하고 있다. 현대차의 경우에도 80% 이상 충전 시 충전 속도가 느려지면서 과충전을 예방한다.

하지만 아파트 등 주거 시설에 설치된 대부분의 완속 충전기에는 이 같은 장치가 없어 차량이 충전기에 연결돼 있으면 계속 전류가 흐르게 된다. 이호근 대덕대 교수는 "80% 이하로 충전하면 덴드라이트(리튬이 음극에 쌓여 만들어진 결정체) 등으로 인한 배터리 화재를 99% 이상 방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현재 과충전 방지 장비 탑재 시 완속 충전기 1대당 40만원의 보조금을 추가 지급하고 있다. 하지만 이전 보급된 31만대의 완속 충전기는 이런 장치가 미비한 상태다. 김필수 대림대 교수는 "기존의 완속 충전기에 대해서도 과충전을 방지할 수 있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환경부 관계자는 "전기차 충전기 안전을 강화하기 위한 보조금 개선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정성 인증제’ 도입

국토교통부는 내년 2월 ‘전기차 배터리 안전성 인증제’를 도입할 예정이다. 제작사들이 전기차 배터리가 안전기준에 적합한지 여부를 국토부 장관의 인증을 받고 제작·판매하는 것이다.

전기차 화재를 예방하기 위한 기술도 보완해야 한다. 대표적인 것이 차량에 탑재된 배터리매니지먼트시스템(BMS)이다. BMS는 배터리의 전류 전압, 온도 등을 센서를 통해 측정하고 관리하는 장치를 말한다. 배터리가 과충전했을 경우 자동으로 전기를 차단하는 역할도 한다. 전문가들은 BMS의 기능을 개선해 차량의 시동이 꺼져 있을 때도 이상 징후가 있을 경우 차주나 소방 당국 등에 경고 메시지를 보내 대응할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을 고도화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터리 제조사들은 열폭주 지연 기술을 선제적으로 개발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열폭주 지연이란 특정 배터리셀에서 폭발이 발생한 이후 다른 배터리셀로 화재가 번지기까지 걸리는 시간을 늦추는 것을 말한다. 현재 자동차 업계는 2018년에 제정된 UN-GTR(Global Technology Regulation·세계기술기준) 권고안에 따라 열폭주 이후 열전이까지 5분의 지연 시간을 적용하고 있다. UN-GTR은 앞으로 발표할 2단계 권고안에서 15~30분의 강화된 지연 시간을 요구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맞춰 국내 전기차 및 배터리 기업들도 전기차 열폭주를 늦출 수 있는 기술의 도입이 시급한 상황이다.

전기차 화재는 해외에서도 종종 발생하지만, 지하 주차장이 많은 국내 주거 특성상 유독 위험성이 불거지고 있다. 이에 따라 일부에서는 지상에 전기차 충전기나 주차장을 따로 마련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지만 당장 도입은 쉽지 않아 보인다. 환경부 관계자는 "충전기 자체가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강희종 기자 mindle@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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