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스름돈 덜 받았다는 손님에게 CCTV 보여줬더니

김아영 2024. 8. 7.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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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님들에게 배우는 소통의 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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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아영 기자]

계산대는 불특정 다수를 만나는 자리이다. 일하다 보면 좋은 쪽이든 나쁜 쪽이든 세상엔 정말 다양한 사람이 있구나 느끼는 순간이 참 많다. 계산 과정에서 긴 대화를 나누진 않지만 몇 마디 안에서도 적절한 화법이 뭔지 매번 배우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손님은 계산원을 심부름꾼으로 생각하고 당연하게 "락스 어디 있어? 좀 갖다줘 봐"라고 명령하고 어떤 손님은 "죄송한데 락스가 어느 쪽에 있어요?"라고 물어본다. 내가 직접 가져다주려고 하면 "괜찮아요, 그냥 말로 알려주셔도 돼요" 하고 손사래를 친다.

또 어떤 남편은 아내에게 "내가 계산하면 알아서 담아야지. 생각이란 걸 좀 하고 살아" 하고 매섭게 노려보는 반면 어떤 남편은 "여보, 이건 내가 들게. 저것만 좀 들어줄래요?" 하고 사근사근하게 부탁한다.

이렇듯 같은 마트를 이용하는 한 동네 사람들이라도 즉, 경제적 사정이 비슷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삶을 꾸려나가는 모습은 천차만별이다. 일이 분 남짓 계산하는 시간 안에 한 사람의 단면을 꽤 투명하게 엿볼 수 있다는 점, 그것이 계산원으로 일하면서 누릴 수 있는 장점 중 하나이다.

물론 단면만 보고 그 사람을 다 안다고 할 수는 없지만, 단면이 켜켜이 쌓여 삶의 입체감을 이룬다는 점을 고려하면 의미 없는 찰나의 인상이라고만은 볼 수 없다.
나는 손님의 모습에 나를 투영해 보면서 좋은 점은 닮으려고 노력하고 안 좋은 점은 반면 교사로 삼곤 했다. 그중 내게 가장 도움이 되었던 것은 바로 의견 차이를 받아들이는 자세이다.

내 입장에서만 보면
 한 마트에서 계산 중인 모습
ⓒ elements.envato
계산이야 기계가 하는 거니까 계산 과정에서 무슨 의견 차이가 생길까 싶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에도 손님과 직원이 팽팽히 맞서 사무실이 한바탕 시끄러웠다. 어떤 손님이 전날 오만 원짜리 지폐를 내고 잔돈을 받아가셨는데 삼만 얼마를 받아야 할 것을 이만 얼마밖에 못 받았다고 하셨다. 하지만 직원은 분명히 세 장을 다 드렸다고 강변했다. 전날 정산했을 때도 별다른 문제가 없었으니 잔돈을 제대로 드린 게 맞다고까지 설명했다.

입장 차이가 좁혀지지 않자 결국 점장님이 CCTV를 확인해 봤는데 직원의 말이 맞았다. 얼핏 보기에는 두 장을 꺼낸 것처럼 보였지만 돈통을 닫기 직전 한 손으로 한 번 더 만 원짜리를 꺼내는 모습이 영상에 잡혔다. CCTV를 확인했는데도 손님은 인정하지 않았고 결국 사무실로 와서 함께 영상을 확인했다. 명확한 증거가 있으니 금방 굴복하시겠지 생각했지만 오산이었다.

"거 봐요! 두 장만 준 게 맞잖아요!"

예상 외로 손님은 더욱 목소리에 힘을 주며 자신이 맞다고 주장했다. 직원이 워낙 빨리 지폐를 꺼내 하나로 겹치는 바람에 손님의 눈에는 두 장으로 보였던 모양이다. 점장님이나 다른 직원이 아무리 설명해도 막무가내였다.

"집에 가서 세어 봤을 때 분명 두 장이었다고요! 제가 겨우 만 원 때문에 이러겠어요?"

손님은 격양된 목소리로 항변했고 결국 점장님이 잘 무마해서 손님의 말이 맞는 것으로 사건이 마무리되었다. 직원이 잔돈을 건네기 직전 지폐를 펼쳐서 한 번 더 확인했다면 명확한 증거가 되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것이 아쉬운 점이라고 하셨다.

내가 봤을 때도 손님이 악의를 품고 만 원을 더 받아간 것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만약 그렇다면 거짓말쟁이로 몰리는 상황이 억울해서 큰소리를 낼 만했다. 하지만 그 손님의 태도가 아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흥분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차분히 설명을 들었다면 그 손님도 영상 속 자신이 받은 돈이 세 장이란 걸 정확히 보지 않았을까? 하지만 그 손님은 자신이 맞고 상대가 틀렸다는 확고한 태도 때문에 주변에서 하는 말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다른 사람 입장도 생각하면

사람이면 분명히 착각할 수 있고 오해할 수도 있다. 중요한 건 그 다음이다. 잠시 자신의 관점에서 벗어나 다른 사람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시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그런 면에서 기억에 남는 손님이 있다. 7~8여 년 전 편의점 야간 알바를 한 적이 있는데 매장이 번화가 중심지에 있어서 쉴 틈 없이 매장을 관리해야 하는 곳이었다.

하루는 새벽 세 시쯤 어떤 손님이 담배를 사러 오셨다. 담배를 꺼내 드리고 현금을 받고 잔돈을 드리려는데 순간 삼 초 전에 받은 돈이 오 만 원 권인지 만 원 권인 생각이 나지 않았다. 워낙 많은 손님을 상대하다 보니 습관적으로 손이 움직였는데 미처 뇌가 금액을 인식하지 못한 것이다.

아무리 정신이 일한다지만 그것조차 기억 못하는 자신이 너무 한심해서 그대로 얼어버렸다. 고민 끝에 손님에게 여쭤봤는데 손님은 오만 원 권을 줬다고 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방금 전 내가 넣은 돈이 만 원 권인 것 같았다.

혹시 손님이 착각하신 건 아닐까 의심이 들었고 나는 손님에게 cctv를 확인하고 나중에 잔돈을 드려도 되는지 조심스럽게 물었다. 새벽이라 당장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 수도 없는 상황이라 손님이 다음 날 다시 매장에 와야 하는 번거로운 요청이었다. 하지만 손님은 허허 웃으며 "그렇게 하세요, 그럼" 하고 담배만 챙기셨다.

"죄송해요, 제가 갑자기 기억이 안 나서...."
"괜찮아요. 이런 건 정확히 해야죠."

다음 날 사장님이 확인한 결과 손님이 낸 돈은 오만 원 권이었다. 그 말을 듣고 나서 얼마나 손님에게 죄송하면서도 감사하던지. 손님 입장에서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었지만 오만 원을 냈다고 몰아붙이지 않고 내가 올바른 사실을 확인하고 받아들일 때까지 시간을 주신 것이 얼마나 큰 배려인지 나이를 먹을수록 깨닫는다.

아마 그 손님은 그때의 계산원이 이토록 오래 자신을 기억할지 까맣게 모르고 살아갈 것이다. 사실 지금도 내가 만나는 손님 중 누가 내 가치관에 영향을 미칠지 모를 일이다. 그래서 계산대에 서는 일이 아직도 설레는 걸까. 앞으로 계산대에서 얼마나 더 많은 소통의 지혜를 배우게 될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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