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해망상'에 고교 교사 찾아가 흉기 휘두른 20대…대법, 징역 13년 확정

최석진 2024. 8. 7.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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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해망상에 빠져 고등학교 시절 교사를 찾아가 흉기로 살해하려 한 20대에게 징역 13년이 확정됐다.

우울장애 치료를 받다가 조현병 진단을 받은 이 20대 남성은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들이 자신과 자신의 누나를 추행하고 괴롭혔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이 같은 범행을 저지른 것으로 조사됐다.

서울 서초동 대법원.

7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권영준 대법관)는 살인미수 혐의로 기소된 유모씨(29)에게 징역 13년을 선고한 원심판결을 확정했다.

재판부는 "피고인의 연령·성행·환경, 피해자와의 관계, 이 사건 범행의 동기·수단과 결과, 범행 후의 정황 등 기록에 나타난 양형의 조건이 되는 여러 가지 사정들을 살펴보면, 상고이유로 주장하는 정상을 참작하더라도 원심이 피고인에 대해 징역 13년 등을 선고한 것이 심히 부당하다고 할 수 없다"고 유씨의 상고를 기각한 이유를 밝혔다.

유씨는 지난해 8월 4일 오전 10시께 대전 대덕구 한 고등학교에 침입해 40대 교사를 흉기로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혐의로 기소됐다.

그는 학교에 침입해 약 30분간 기다리다 피해자를 만나자 흉기를 휘두른 뒤 도주했으나 3시간여 만에 붙잡혔다. 다행히 피해자는 병원 응급실로 옮겨져 목숨을 건졌다.

2021년 6월부터 우울장애 치료를 받던 유씨는 2022년 8월 '고등학교 재학 시절 교사들이 뺨을 때리거나, 발목을 잡아 끌고, 단체로 집을 찾아와 자신과 누나를 성추행하는 등 괴롭혔다’는 등의 피해망상 증세를 보여 담당의사로부터 조현병 진단을 받았다. 의사는 유씨에게 입원치료를 권유했지만 유씨는 응하지 않았고, 같은 해 12월에는 '그런 일을 당하고도 복수하지 않는 것은 내가 비겁하거나 진짜 멍청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는 등의 내용으로 면담 치료를 하다가 이후 치료를 중단했다.

2022년 여름부터 자신이 졸업한 고교 교사들에 대한 피해망상에 시달리던 유씨는 자신이 생각하는 가해 교사들을 처벌받게 하거나 복수해야겠다고 마음먹고 같은 해 9월부터 교육청 홈페이지의 '스승찾기' 서비스를 이용해 해당 교사들을 찾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피해망상이 사실인지 여부를 가족들과 교사들, 동급생들을 통해 확인하려고 했지만, 모두가 '그런 사실이 없다'거나 '기억나지 않는다' 등 부정적인 답변을 내놨다. 유씨는 경찰서에 교사들에 대한 고소장을 접수하려고 했지만 증거가 없다는 이유로 반려받기도 했다.

그러자 유씨는 가해 교사들을 법적으로 처벌할 방법이 없다면 다른 방법으로 복수하겠다고 마음먹었고, 피해 교사가 '자신을 괴롭힌 무리들의 주동자'라는 망상에 빠져 피해자가 근무하는 학교를 알아낸 뒤 직접 찾아가 범행을 저질렀다.

1심 법원은 유씨에게 징역 18년을 선고하고, 10년간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을 명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은 피고인이 조현병으로 인해 피해자가 학창시절 자신을 괴롭혔다는 피해망상에 빠져 흉기를 미리 준비하고 피고인이 근무하던 학교까지 찾아가서 피해자를 살해하려다 미수에 그친 것으로, 범행 동기, 경위, 방법 및 결과에 비춰 죄질이 매우 나쁘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유씨가 대낮에 학생들을 포함해 다수의 사람들이 있는 학교에서 범행을 저지르고도 수사기관에서 범행을 저지른 것을 후회하지 않는 것 같은 태도를 보인 점, 피해 회복을 위해 노력하지 않은 점 등을 유씨에게 불리한 양형사유로 참작했다.

다만 재판부는 유씨가 범행을 저지른 사실 자체는 인정하고 있는 점과 사건 당시 조현병 증상인 피해망상에 빠져 있었던 점, 동종 처벌 전력이 없는 점 등을 유리한 정상으로 참작해 형을 정했다고 밝혔다.

2심 법원은 유씨의 형을 징역 13년으로 감형했다.

재판부는 "이 사건 범행의 주된 동기는 피고인이 고등학교 재학 중 선생님인 피해자로부터 신체적 괴롭힘이나 성적 학대를 당했다는 피해망상이고, 이는 조현병의 증상 중 하나이다"라고 전제했다.

이어 재판부는 "피고인은 자필 항소이유서 및 반성문을 통해 '피고인은 수감 중 계속해 약물 치료를 받고 있고, 피해자에 대한 증오나 복수심을 갖고 있던 것은 피해망상이었으며, 사실 피해자는 자신을 따뜻하게 대해주셨던 분이다. 은혜를 원수로 갚았다'라고 진술했다"라며 "피고인은 자신의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있다. 피고인에 대한 비난가능성이 정신질환이 없는 사람보다 높다고 할 수 없다"고 밝혔다.

또 재판부는 이 사건 범죄의 살인 유형은 특정범죄가중법상의 보복살인이나 불특정 다수를 향한 무차별 살인 등 '비난 동기 살인'에 해당하지 않는 한편, 피해자에게 귀책사유가 있거나, 정상적인 판단력이 현저히 결여된 상태에서의 가족 살인 등 '참작 동기 살인'도 아닌 '보통 동기 살인' 유형에 해당한다고 지적했다.

재판부는 "무엇보다도 이 사건 범행은 피해자가 다행히 목숨을 건져 살인미수에 그쳤으므로, 피고인의 죄책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아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오는 살인기수죄에 비하기 어렵다"라며 "양형기준도 살인미수죄의 경우에는 살인기수죄의 권고 형량범위 하한을 3분의 1로, 상한을 3분의 2로 각 감경해서 적용하도록 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1심이 선고한 징역 18년의 형량이 비록 양형기준상 유씨에게 적용되는 살인미수죄의 권고영역 범위 내에 있지만 지나치게 과해 부당하다고 봤다.

재판부는 "살인미수죄의 양형기준상 권고영역은 다른 범죄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범위가 넓고, 하급심의 실무례에 나타나는 살인기수죄와 살인미수죄 사이의 양형 편차가 엄연히 존재하는 사정을 고려하면, 이 사건 범행을 인정하고 반성하는 피고인의 죄책이 살인기수죄의 양형기준상 '보통 동기 살인' 유형의 가중영역 하한을 초과하고 '비난 동기 살인' 유형의 가중영역 하한에 달하는 수준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위와 같은 사정들을 비롯해 피고인의 나이, 직업, 성행과 환경, 범행의 수단과 결과, 범행의 동기, 범행 후의 정황 등 이 사건 변론에서 드러난 여러 양형조건들을 참작하면, 원심의 형은 너무 무거워서 부당하다"고 결론 내렸다.

유씨는 다시 상고했지만 대법원도 이 같은 2심 법원의 판단에 문제가 없다고 봤다.

최석진 법조전문기자 csj0404@asia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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