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렌지 말고 어륀지” 수능 영어 30년 변천사 [변별력 덫에 갇힌 영어시험]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영어는 사교육비 절감과 변별력 강화의 두 축을 오가며 난이도가 널뛰었다. 한때는 성문종합영어로 대표되는 암기식 학습이 대세일 정도로 어려운 기조가 유지됐다. 이후 수능-EBS 연계 정책이 도입되고 연계율이 70%로 상승하며 ‘물수능’이란 별명까지 얻었다. 2018학년도에는 사교육비 절감을 목표로 절대평가가 도입됐지만, 여전히 난이도 논란은 계속되고 있다.
물→불→물…94년 이후 난이도 널뛴 수능 영어
객관식 위주의 수능이 도입된 1994년 이후 영어 시험 난이도 변화가 본격화 한 건 2000년도 들어서다. 정부 정책에 따라 교육방송(EBS) 연계 출제가 시작됐다. 초창기에는 수험생들이 체감하는 연계율이 낮은 편이었지만 2011학년도 대입부터는 사교육 절감을 이유로 ‘EBS 연계 70%’ 이상이 유지되면서 EBS 교재가 가장 중요한 수능 교재로 부상했다.
2012학년도에도 ‘쉬운 수능’ 기조가 이어지면서 영어시험에서 만점자 비중이 1%를 넘어서는 일이 생기기도 했다. 이 때문에 ‘물수능’이란 비판이 일자 교육부는 영어 만점자 비율을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후 2015학년도에는 만점자 비율이 3.37%로 다시 늘었다.
이처럼 수능 난이도가 온탕과 냉탕을 오가는 동안 영어 시험 체제를 바꾸려는 시도도 이어졌다. 이명박 정부는 2008년에 수능 영어와 취업에 쓰이는 토익(TOEIC)·토플(TOEFL) 등의 대안으로 NEAT(국가영어능력평가) 체제를 구축하겠다고 밝혔다. 이른바 이경숙 당시 인수위원장의 “미국 가니 오렌지가 아니라 ‘어륀지’로 말하니 알아듣더라”는 발언으로 대표되는 ‘영어 몰입교육’ 정책의 일환이었다. 당시 교육과학기술부는 NEAT 개발 후 수능 대체 여부를 검토하겠다고도 했지만, 사교육이 증가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면서 결국 무산됐다.
2018학년도 절대평가 도입했지만…사교육은 여전
가장 큰 수술은 박근혜 정부에서 이뤄졌다. 2014년 박 전 대통령이 “사교육비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영어 사교육 부담을 경감해야 한다”고 지적한 이후 정부는 2018학년도부터 수능 영어를 상대평가에서 절대평가로 전환했다. 하지만 시험 때마다 난이도가 크게 달라 수험생 혼란이 이어졌다.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수능 영어 1등급 비율은 최소 4.7%에서 최대 12.7%로 3배 차이가 났다. 올해 6월 모의평가에서는 1%대까지 떨어졌다.
영어 사교육 연령도 도입 취지와 반대로 점차 빨라지는 추세다. 전국 영어 유치원은 2019년 615곳에서 지난해 842곳으로 늘었다. 4년 만에 37%가량 증가했다. 반면 일반 유치원은 2019년 8837곳에서 지난해 8441곳으로 4.48% 줄었다.
최민지 기자 choi.minji3@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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