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 한가운데 남겨진 사람들, 무더위 생존법
[김성호 기자]
망망대해에서 길을 찾는 일은 지극히 어렵다. 별자리와 해, 바람과 물살을 읽는 법과 그를 계산해 제 위치를 내는 법, 또 해도 상의 물표를 읽어내는 법을 알아야 한다. 지난 시대, 그러니까 대항해시대가 열리고 위성을 이용한 전파항해가 시작되기 전까지 큰 바다로 나가는 이에게 가장 중요한 지식이 바로 이런 것이었다.
사방을 둘러봐도 보이는 건 오로지 물뿐인 커다란 바다에서, 그것도 모선을 잃고 작은 보트에 올라 떠도는 신세가 된 사람들이 있다. 명색이 '씨네만세'니 영화로 보자면 <라이프 오브 파이>가 가장 먼저 떠오르고, 너새니얼 필브릭의 잘 쓴 논픽션을 영화화한 <하트 오브 더 씨>도 생각난다.
▲ 스틸컷 |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
영화는 이런 류의 작품이 자주 그러하듯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1942년, 그러니까 2차대전이 한창 진행되던 시절 벌어진 이야기다. 미국 해군 어뢰 폭격기를 몰던 3인의 탑승자가 태평양 한가운데 비상 착륙한 뒤 34일간 표류 끝에 생환한 이야기다.
조종사인 상사 해롤드 딕슨(가렛 딜라이트 분)와 항법사 토니 패스툴라(톰 펠튼 분), 통신사 진 엘드리치(제이크 아벨 분)가 그들로, 출격해 비행 도중 귀환할 지점을 잃어버린 급박한 상황으로부터 영화는 시작된다. 엘드리치가 거듭 통신을 시도하지만 주파수가 거듭 끊기는 상황, 항법사인 토니가 현재 침로를 확인해 보고하지만 현재 맴도는 곳이 어디인지를 정확히 알 길이 묘연하다. 둘이 앞에 탄 조종사를 호출하고, 해롤드는 부랴부랴 방향을 바꾼다.
▲ 스틸컷 |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
34일간 표류 실화를 영화로
그로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 망망대해, 가진 것이라곤 항해판과 잡다한 도구뿐. 워낙 경황이 없어 물과 비상식량조차 챙기지 못하였다. 뿐인가. 손전등은 물속에 가라앉고 조명탄도 없다. 서로가 가진 물건들을 보트 바닥에 꺼내놓아 보지만 쓸 만한 것은 몇 되지 않는다. 그래도 기지에서 구조하러 오리라 기대를 품고 표류 첫날을 맞이한다.
영화는 여느 표류 영화가 그러하듯 추락해 맞이하는 어려움을 이들이 하나하나 대항하는 과정을 담는다. 말이 대항이지 맨주먹으로 자연과 맞서는 일이 만만찮다. 다행히 떨어진 곳이 날씨 좋은 태평양 한가운데라 폭풍으로 보트가 뒤집어질 위험은 없다. 바람도 순풍이어서 예상 추락지점으로부터 태평양 한가운데 있는 열도로 잘만 떠밀리면 살아날 가망이 있다.
▲ 스틸컷 |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
비좁은 보트 위 심리적 갈등도 재난이 된다
<생존자들> 속 구성원들은 군인이다. 조종사인 해롤드만 부사관인 상사 계급 간부이고, 나머지는 병사인 것이다. 그렇기에 권력관계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해롤드는 표류 직후 제가 보트의 선장임을 확실히 한다. 표류 이후 절차에 따른 것으로, 뒤바뀐 환경에서도 명령체계를 확실히 해 생존율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그러나 보트에선 차츰 불만과 짜증이 솟아나기 시작한다. 세 명이 간신히 자리할 수 있는 비좁은 보트라는 공간과 불평등한 상황이 은근한 긴장을 자아내는 것이다. 심지어 표류 직후 무기를 죄다 내버리고 토니가 유일한 권총을 차고 있는 데다, 이들이 이런 상황에 내몰린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지를 두고 이유를 찾는 과정이 또 다른 긴장을 불어넣는다.
재난 상황은 그 자체로 흥미롭다. 다른 재난, 특히 같은 류의 표류 영화가 매번 같은 방식의 연출과 구성을 선보이지만 먹히지 않는 경우를 찾기 어렵다. 물과 식량이 없어 고생하고, 빗물을 받아 마시고, 겨우 낚시에 성공하고, 표류 가운데서 목적지를 찾아나가고, 마침내 생명을 구하는 것이다. 이 영화 또한 그와 같은 안정된 길을 그대로 따르고, 이는 클리셰이자 답습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 포스터 |
ⓒ 액티버스엔터테인먼트 |
무더운 여름, 영화 한 편의 피서로 제격
그럼에도 수입사는 이 제목을 선택해 국내 배급을 결정했다. 이는 재난영화의 성격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이란 것 말고는 다른 설명이 불가할 정도로 노골적이다. 그 자체로 약점을 드러내지만 장르성은 선명히 보여준다는 것, 바로 이것이다. 2차대전 실화에다 재난을 극복하는 표류 영화란 설정이 더 많은 관객을 기대하게 하리란 믿음이 OTT 등 2차 시장에서 만큼은 그럭저럭 먹혀들고 있는 듯 보인다.
재난영화는 OTT 서비스에선 스릴러와 공포, 액션 등과 함께 비교적 인기 있는 장르로 꼽힌다. 아마도 일상 가운데서 맛보기 어려운 긴장을 재난영화가 빠르게 가져다주기 때문일 테다. 이것이 비교적 저예산으로 OTT 서비스 배급을 두드리는 많은 작품이 재난에 집중하는 이유가 된다.
특히 여름철을 맞아 <생존자들>과 같은 작품이 선택을 받는 데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무더운 가운데 푸른 바다가 화면 가득 펼쳐진다는 점, 그로부터 보는 이의 안락함과 정반대의 재난이 영화 가운데 닥쳐온다는 점이 그러할 테다.
망망대해 가운데 살아남기 위한 길을 찾으려 분투하는 세 명의 사내의 이야기다. 일생을 살면서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할, 또 겪어서는 안 될 이와 같은 이야기를 영화로 만나는 건 즐거운 오락이 된다. 간접경험과 오락, 영화가 가진 분명한 미덕이 또한 이것일 테다.
덧붙이는 글 |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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